4. 아늑한 모래실

젊은 손님들

史野 2013. 8. 17. 19:29

 

 

사야가 매번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ㅎㅎ 조카들이 다녀갔다. 왼쪽이 지난 번 졸업식 사진에도 올린 큰언니 딸내미 그리고 오른쪽이 작은언니 딸내미.

조카 여섯중 여자애들은 딱 둘인데 다행히 저 둘은 십개월정도밖에 차이가 안나 친구같은 사촌이기도 하다.

오른쪽 놈이 하도 좋아해서 오랫만에 퐁듀를 준비했는 데 왼쪽 놈도 프랑스에 있을 때 스위스친구들과 먹었었다며 엄청 좋아해 다행이었다.

 

저 놈들 교환학생갔을 때 독일 시댁식구들 만났던 일이며 연애하는 거며 끝도없이 이어지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특히 어떤 문제에 관해선 오랫만에 영어로 이야기를 했더니 단어가 생각이 안나 답답하긴 했어도 특별하고 좋았다.

왜 한국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영어로 이야길 했냐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야길 할 때 가끔씩은 덜 감정적이고 조금 더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다. 

술좋아하는 이모를 위해 사들고 온 스파클링와인에, 지난 번 작은언니네가 가져온 백포도주에 사야의 적포도주까지 마시며 질펀한(?) 밤을 보냈다.ㅎㅎ

 

 

 

피아노선생님하는 사야친구가 너무 잘 친다고 했을 정도의 실력을 보유한 작은언니 딸. 집에 피아노를 없앴다길래 할부로라도 빨리 사라고 종용했다..ㅎㅎ

사야는 잘 치던 피아노가 아니어서였는 지 오랫만에 선생님도 없이 해볼려니까 잘 안되던데 어찌나 부럽던 지.

 

 

 

요리하는 걸 싫어하는 엄마들을 둔 걸 너무나 잘 알기에..ㅎㅎ 술은 덜 깼지만 국은 생략했어도 나름 정성스레 차린 밥상.

아시다시피 사야네 집에서 자고 매생이 떡국이나마 얻어먹으면 다행인데..^^

저 밥이 사야집의 특별식인 톳밥인데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특히 상해손님들이 얼마나 감탄을 하며 먹던 지..

저 놈들도 저거 먹고 밥을 더 먹더라.

두 놈 다 정말 오랫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집밥이라며 딸 셋중 이모만 다른 것 같다나..하하하

저 중 깻잎과 열무김치는 남친에게서 얻어온거다. 혼자산다고 주변에서 뭘 자꾸 주는데 잘 안 먹으니 사야가 들고오곤 한다..^^

 

 

 

사실 저 놈들이 워낙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났던 지라  그리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산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모라고 가끔씩 안부전화도 하고 이리 연휴라며 찾아와 주니 고맙다.

작은언니 딸은 이년 전인가 혼자와 거의 밤을 새가며 이야기한 적도 있다만 셋이 이렇게 일박이일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다.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닌데다 요즘은 가족모임에도 전혀 나가지 않으니 많이 미안할 따름.

 

 

 

한 놈은 돈을 번다만 그래도 버스시간에 맞춰 내보내놓고 걸어가는 걸 바라보고 있는 데 왜 갑자기 쓸쓸하단 생각이 들던 지.

손님이 오면 반갑고 가면 홀가분한 사야로선 조금은 당황스런 감정이었다. 이게 내리사랑 뭐 이런걸까.

 

 

 

 

한놈은 또 이모가 책 좋아하니 책을 사왔다고 해서 감동할렸더만 저리 영한대역 성경책과 역시 기독교 서적. 징한 놈, 참 포기 못한다...ㅎㅎ

큰조카놈은 '고모는 어찌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냐' 며 완전 '수렁에서 건진 내딸' 수준이고 큰언니딸에겐 영원히 '잃어버린 어린 양'인가보다.

저 놈이 중학교때 교회 다시 나가라며 하도 절절한 메일을 보내서 진짜 홍콩에서 한인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니까..^^;;

이걸 진짜 이모가 읽을 거라 생각해서 사온거냐고 구박은 했다만 성경은 아니더라도 한 권은 읽어야겠다.

하도 입에 붙어서 가끔씩 찬송가나 복음송 같은 걸 흥얼거리기도 한다만 기독교는 이제 사야에게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아련한 그 무엇이다.

 

책속에 편지도 있다며 나중에 읽으라길래 교회 열심히 다니란 내용인가보다 했더니 빼곡히 두 장에 몇 년간 시험공부를 하며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또 얼마전 전화로 사야가 해준 이야기에 대해 적었더라.  '이모가 제 이모라서 참 다행이예요' 를 읽는 데 코끝이 찡.

 

형제자매는 아니다만 조카들은 무섭다.

사야 스스로에게 진실된 삶을 살면 된다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카들 보기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그들에게 이모나 고모로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한 괜찮은 인간이 있다', 란 말을 듣게 나이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야가 해줄 수 있는 건 얼마전에 큰조카놈에게도 이야기했다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것.

 

 

 

 

2013. 08. 17.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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