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내일은 아빠의 기일이다.
물론 사야는 그 추도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아빠가 여전히 살아계셨다면의 가정을 해봤다.
가정하의 결론이 다 맞을 수는 없겠다만 어쨌든 사야도 사야의 언니들이나 오빠처럼은 살고 있을 것 같더라.
부부관계 좋고 자식들 똑똑하고 거기다 언니들은 바람직한(?) 신앙생활까지들 하고 있고 사야가 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가정들이다만
그리고 사야에겐 그저 주변 아는 사람들 통틀어 신기할 정도로 보기좋은 가정들이다만 사야가 부러운 삶은 아니다.
막내 주제에 이런 말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 당신들 참 대단하다 정말 잘 살고 있어 좋다' 뭐 이런 기분이랄까.
사야가 지금 마흔 여섯이니 정확히 삼십 이년 전인 열 네살에 아빠을 잃었고 그 때부터 내 엄마는 사야를 양육하는 걸 포기했다.
그걸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사야 인생에서 아빠랑 엄마를 동시에 잃었다.
왜 좀 고등학교까지는, 아니 중학교라도 자신의 힘으로 마쳐주지 못했던 걸까.
그만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만 매년 기일이 다가 올 때마다 사야는 괴롭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제 사야는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가 아닌,
이젠 심지어 아빠가 없었기에 사야 인생에 생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차라리 감사하고 버텨내고 있긴 하다만,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이 세상과 하직하며 굳어져가던 아빠의 다리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던 그 때의 시간은 절대 잊혀질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것도 알겠다.
지금까지도 겨의 완벽체라고 믿고 있는 그 인간의 몸이 서서히 굳어지며 결국은 정신만 남아있던 그 절절한 기억을 말이다.
자식을 넷이나 세상에 내어놓고 인생을 하직하던 아빠는 그때 겨우 사야보다 한 살이 많았다.
어쨌든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당신과도 끊임없이 싸웠겠구나
자식들보다 마누라를 좋아했던 당신은 역시나 어떤 경우에도 마누라편을 들었겠지
그래도 당신이 그립다;
딸바보가 아니라 마누라 바보였던 당신이 말이다.
2013. 08.18. 여주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