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힘든 밤

史野 2013. 7. 31. 01:46

방금 전남편에게 오랫만에 긴 메일을 보냈다

요즘은 메일을 쓰는 사람도 거의 없고 분류를 해둬서 정해진 폴더로 들어오는 데 갑자기 사야야말로 생뚱맞게 나타난 이상한 메일에 놀랬고 내용엔 더 놀랬다.

 

맘이 복잡해서인가 쓰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구구절절히 썼는데 문제없이 도착하기만을, 그리고 넘 걱정하지 말고 그 진심을 알아주기만을 바랄뿐이다.

자다깨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던 게 독일어였는 데 이젠 메일을 쓰는 것도 벅차다.

 

매일 독일어만 쓰고 산 시간을 따지면 십삼년 정도 될까. 그 시간동안은 아무리 술이 취해도 슬슬 흘러나오고 심지어 더블린에서조차 독일어로 생각하다가 택시기사에게 얼결에 저기 세워달라고 독일어를 했던 그런 언어였는데

그 세월비교 돌아온 지 다음달이 육년인데 이제 사야에겐 그 언어조차도 낯설다.

 

아무리 미친듯이 공부했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면 중국어를 버벅대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 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왠지모를 억울함같은 건 뭘까

영어야 뭐 그렇다고 쳐도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를 하느라 사야가 투자한 돈과 시간과 땀이 얼마인데 이렇게 역시나 그 시간과 함께 추억속에 묻혀 버려야 한다니..

 

그 노력으로 한우물을 팠다면 사야도 지금쯤은 최소한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먹여살려야하는 지 걱정같은 건 안해도 되지 않았을까

아니 이건 아니구나.

그냥 남편과 결혼해 독일로 가지 않았다면 계속 초등학교 선생님을 해 연금까지 받으며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겠구나.

 

어쨌든 사야는 요즘 그게 자랑스런 자식이건 아니건 자식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번에 보니 소라님도 첫사랑놈도 아니 승호엄마나 짱가놈이나 어쨌든 대부분 자식있는 사람들은 그 자식들로 인해 이 힘겹고 벅찬 인생을 나름은 잘 버텨가더라는 거다.

물론 그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야 이게 얼마나 힘든 지 아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다만, 그리고 자식이 있어도 인생이 외롭고 힘들다고 실제로 항변들도 한다만 그래도 새삼 또 부럽다.

 

사야에게도 개자식들이 있고 그 자식들때문에 행복하기도 힘들기도 하다만, 오늘도 남친이 호박이가 화장실을 안가는 것 같다고 걱정하길래 당장 내려가 병원에 데려가야하는 건 지는 아닌 지 고민한다만 개자식이 사람자식하고는 절대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거기다 개자식은 슬프게도 사야보다 먼저 죽지만 사람자식은 어쨌든 더 오래 살거라는 걸 전제하기도 하니까.

 

이야기가 샌다만 그런 의미에서 솔로인 박근혜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왜 굳이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말 엄마 아버지의 억울함(?)이나 한을 풀고 싶었던 걸까

사야입장에서야 돈도 많겠다 대대로 권력을 물려줄 자식도 없고 그 아버지가 세웠던 나라를 위해 누릴 것 누리며 조용히 살았을 거 같은데 말이다.

 

또 각설하고 대한민국처럼 보수적인 나라에서 결혼도 안한 처녀가,  그것도 동생과 소송도 걸리고 그런 마당에서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는 건 너무나 신기하다.

요즘 책한줄 안 읽는 사야가 날이면 날마다 앉아서 밖만 바라보는 건 아니고 나름은 이런 저런 분석을 해보는 중인데 한국사회를 이해하려 엄청난 책을 읽고 분석도 하고 고민하는 사야에게도 아직은 미스테리다.

 

사야가 박통을 무조건 미워하는 건 아니다. 박통의 치적(?)을 인정하고 박통의 행적도 이해하려고 무지 애쓰고 있다.

사야 심중으로야 박통과 노통을 비교할 수는 없다만 노통이 대통령으로 뭘 실수한건 지를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저렇게 상황을 보다보니 그게 독립운동가였건 박정희였건 본인의 이해관계 혹은 의협심이나 영웅심리를 떠나 행동하는 인물은 정말 극소수라는 거더라.

 

아무리 정의를 외치거나 나름 잘난 인간들도 본인의 자식들 문제에선 무너지더라.

본인의 자식들을 위해 온갖 행동을 하고 그건 내 자식을 위한 거였다고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부모도 많은 세상에서 자식을 위해 자존심은 물론이고 대의나 신념이나 스스로 가장 중요했다는 걸 버리는 부모가 어쩌면 당연한 건 지도 모르겠다.

경험해보지 못했다만 부모에게 자식은 대신 죽어줄 수도 있는 뭐 그런 존재인가보더라.

 

누구나 어떤 식으로던 인생을 산다

사야처럼 머리는 안 깍았지만 이 삶을 이해하기 위해 피터지는 인간도 있을 것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 뭐 당근 낳건 말았건 울 엄마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만

 

보편 혹은 우리가 부르는 민주주의조차도 다수결의 선택. 그 다수가 만들어가는 이 세상이 어쨌든 사야는 여전히 서럽다.

피터지게 노력했는데도 엄마가 아니란 이유로 왠지 반쪽밖에는 이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사야가

앞으로도 쿨하긴 보단 더 피터져야한다는 걸 아는 사야가 가끔은 가엾고 또 서럽다.

 

무소유를 주장했으면서도 무소유는 커녕 모든 걸 누리고 간 법정스님처럼, 누리고 간 것도 모자라 죽는 순간까지 그 아상을 버리지 못해 내 저작물은 다 없애라던 그 법정스님처럼 그렇게 될까봐 사야는 두렵다.

 

참 웃기지 사야가 존경하고 아니고를 떠나 대통령이나 법정스님같은 인간들을 비교하며 왠 설레발은 치고 난리냐고

그런데 말이다

왜 태어났는 지도 모르고 왜 죽어야하는 지도 모르는 이 인생에서

사야가 하나는 알겠다.

어떤 식으로 인생을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만 내가 왜 살아있는 지를 한번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이기도 아빠이기도 한 당신들을 이제야 존경한다

그 세월을 살아오지 못한 생각의 부재가 뭔지도 이제 인정한다.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걸 이해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 지 아직은 명확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만

 

그 끔찍한 식민지 세대를 겪은 그대들에게

거기에 합해 더 끔찍한 전쟁을 겪은 그대들에게

면죄부까지는 아니어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많이도 힘들었었는데 이제야 알겠다

사야포함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이유가 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미스테리 사회도 왜이리 돌아가는 지를 이젠 정말 알겠다

아이를 안 낳아봐서 지킬 아이가 없어서 삶이 뭔 지를 다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알겠다.

 

 

 

 

 

 

2013. 07.31.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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