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너무나 그리운 당신

史野 2013. 7. 18. 23:11

지금까지는 그저 당신의 부재가 슬프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 허망하게 떠나신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저는 여전히 당신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셨다고 믿지 않습니다만 아니 그래서 더욱더 당신이 그립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은 당신이, 인간을 믿은 당신이 존경스러운 것보다 더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이 어지러운 때에 당신이 계셔서 여전히 상식과 소신과 희망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명철하시면서도 인자한 표정과 소탈한 웃음을 가지신 당신이 정말 그립습니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은 있을 지언정 당신처럼 용기있고 뚝심도 있고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께서 꿈꾸던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며 수많은 우리가 꿈꾸던 그 '사람사는 세상' 은 당신이 가신 지 오년도 안되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난 오년간은 모든 게 개그였는 데 그래서 때론 웃어넘길 수도 있었는 데 알고보니 그 개그는 견고한 벽안에서 어쩌다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였습니다.

 

당신께서도 그 벽앞에서 많이 고독하고 힘드셨겠죠.

 

당신께서 밤잠을 설쳐가며 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 애쓰시고 남기셨던 기록물들, 그것들이 까발려져 난도질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기록실에 대화록 원본조차도 없답니다.

 

어느 막강한 의원께서는 원본도 보셨다는 데 그것 자체도 불법일텐데 원본이 없다니 당신께서 계셨다면 이럴 땐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태어나서 이십오년 넘게 군부정권아래 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당신의 강연을 처음듣고 당신을 가슴에 품게 된 것도 이십년이 넘어갔네요.

 

네 그렇게 제 인생이 흘렀습니다.

 

저런 정치인이 있다면 희망이 있다 생각했었는 데 당신께선 결국 대통령이 되셨더랬죠.

 

오랜 세월을 떠나 있었기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슬프게도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직접적인 국민으로는 살지 못했습니다만 당신때문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참 고맙게도 이 나라는 당신을 잊을 틈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너무 진실하셨기 때문이겠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진실인데 당신께서 그렇게 사랑하던 이 나라에선 엿이나 바꿔먹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신이 그리운데 권여사님께서는 오죽하실까요

 

 아니 권여사님께서는 부부였으니까 당신의 미웠던 점도 생각 나시겠죠. 욱하기고 하고 고집스럽기도 한 당신의 그 인간적인 면들을요

 

권여사님 친정쪽 문제가 붉어졌을 때 당신께선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러셨었죠?

"그래서 내가 지금 내 마누라를 버려야합니까' 라구요.

 

그렇게 늘 당신께선 일관성을 유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살아계셨다면 저같은 인간도 어쩌다 봉하마을을 방문해 어느 구석에선 가 끼어 막걸리 한잔을 마실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전 지금 당신의 부재가 너무 커 뭘 어찌 해야 좋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각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해방후 이십년 가까이 대통령을 해먹은 역사적 인물이란 걸 철저히 분리해야한다는 걸 말씀해 주셨을까요

 

전직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가 아무리 다수결이라해도 겨우 백만표차이로 이겼을 때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해주 실 수 있었을까요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아니요, 라고 외치던 당신이

 

원래 그랬던 나라야 희망? 웃기지 말아, 라고 말하고 싶은 내게 당신께선, 아니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선 별이 되셨고 그 별을 바라보고 있는 민초는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그런데 그 별이 되신 당신께서 민초이셔서, 거기에대한 열등감도 극복하셔서, 아니 그 무엇보다 뭐가 어찌되든 당신이 이 대한민국에 대통령이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게 어떤 방법인 지는 모르겠지만 당신께서 생각하던 ' 사람사는 세상' 에 한몫 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근데 아무리 무슨 말을 하고 해도 당신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치도록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누군가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던데 저는 아닙니다

 

저희를 지켜주지 못하고 떠난 당신이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