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양리풍경

너무나도 지겹고 긴 여름입니다.

史野 2010. 9. 1. 17:17

다들 안녕하신지요?

 

지난 겨울이 제 생애 최악의 겨울이었다면 이번 여름 또한 최악의 여름입니다.

 

그래도 작년엔 집이라도 시원해서 버텼는데 올해는 밤 11시까지도 실내온도가 29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올 여름이 더웠다지만 그래도 산밑인데 한밤중에 그 온도가 말이됩니까. 아무래도 강을 파헤쳐놓은게 영향을 미치지싶어 더 열불이 나더군요.

 

거기다 안그래도 더운데 한동안 인사청문회때문에 더 미친X처럼 방방 뛰었죠.

 

뭐 이러니 저러니해도 워낙 긍정적인 사야라서..ㅎㅎ 아직 미치지는 않았습니다만 사방팔방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살아도 곰팡이 투성이인 이 집엔 정나미가 뚝 떨어졌지요.

 

어찌 이사를 가고싶어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시골땅값은 또 얼마나 거품인지 서울도 오갈 수 있는 거리에 텃밭가꾸며 살 오두막하나도 쉽지가 않네요..ㅜㅜ

 

꽃만 좋아하던 사야가 드디어 수확의 기쁨에 눈을 떴답니다.

 

 

제 평생 첫 수확한 오이입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죠 옆의 놈이 저렇게 커지더라니까요 지금은 끝물이지만 한달가량 매일 오이 따먹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호박도 이리 영글어갑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애호박하나 따서 먹었는데 직접 키운거라 그런지 배는 맛있는듯하고요..ㅎㅎ

 

 

제일 신기한건 이 수박인데요. 수박먹고 버린 곳에 이리 싹들이 잔뜩 났답니다. 어느 곳이건 주먹만한 수박이라도 하나 수확하게된다면 기적같을 거예요.

 

 

그러나 올해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한 건 이 치자꽃입니다. 저는 꽃도 처음보았지만 향기가 그리 좋은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에 보물을 하나 발견한 기분입니다.

 

 

역시 지금은 저버렸지만 제가 씨를 뿌린 해바리기들이 한동안 이리 이쁘게 피었더랍니다. 역시 처음 해바라기를 심어봐서인지 감동이었어요. 더 크는 건데 키는 제가 일부러 해가 덜 드는 곳에 만든거구요. 

 

 

장성에서 제가 그리 신기해하던 부레옥잠꽃도 올해는 맘껏 감상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않는 꽃이예요. 

 

 

신기한 일은 또 있었답니다. 저희 우체통에 이리 새가 집을 지었거든요. 지금은 부화되지 않은 한 알을 남기고 모두 날아가버렸지만

 

 

 

요리 작은 새가 저리 집을 짓고 새끼들을 건사하는 건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하더군요.

 

 

 울 바리는 드디어 중성화수술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지를 위해서나 저를 위해서나 하는게 낫겠다싶더라구요. 어린나이에 새끼를 두번이나 낳은 우리 바리.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완쾌되어 잘 지내는 걸 보니 이제 마음은 편합니다.

 

 

문제는 호르몬변화때문인지 자꾸 살이 찐다는 건데 아직까지는 새끼젖먹이느라 깡말라 안쓰럽던 기억때문인지 보기 좋구요. 저 놈들은 부모자식간이었던 건 싸그리 잊어버리고 씽씽이가 서열 일위 아끼가 이위 바리가 삼위 그렇답니다..ㅎㅎ 울 새끼들도 이제 곧 일년이 되어가네요.

 

단지 저를 놓고는 서열이 없어서 얼마전 저 두 사내놈들은 피를 튀는 싸움을 했더랬죠..-_-;;;

 

세 마리를 제대로 건사하는 건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저 놈들은 제게 온 행복입니다.

 

 

행복한 일은 또 있습니다. 얼마전 저 책을 질렀답니다..흐흐 

 

거금 백만원. 크다면 한없이 큰돈이라 서예에 조예도 없는 제가 산다는게 오버는 아닌가 머리깨며 고민했지만 막상 구입을 하니 너무나 행복합니다. (사실은 고민하는 저를 보고 남친이 비상금을 털어 사준건데 뭐 그게 그거죠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해준게 너무 고마왔지만요..ㅎㅎ)

 

600년간 총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글씨가 담겨있는데 저처럼 역사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의 글씨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참 저희 집에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무진장 귀여운(?) 쥐새끼입니다. 세상에서 제가 뱀보다 싫어하는게 쥐새끼인데 어쩌다 이리 쥐새끼까지 친근한 세상이 되었을까요.

 

처음엔 굶어죽일 작정이었는데 두 달이 되도록 저리 멀쩡히 쥐의 본분을 망각하고 겁대가리 상실한채 대낮에도 저리 데크를 활보하는 그 용기가 가상해서 '미미'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식구로 받아들였습니다...쥐새끼치곤 잘 생겼죠? ㅎㅎ

 

알고보면 저 놈도 그저 불쌍한 한 생명이잖아요.  앞뒤 분간 못하는게 어찌 저 놈 탓이겠습니까.

 

 

한동안 꽃밭가꾸기에 열심이었는데 비며 더위며 그저 놓아두었더니 요즘 저희 집 꼴은 이렇습니다. 오른쪽 계단아래가 저 서선생께서 거주하시는 공간이고 가끔은 저 나팔꽃에 매달려 지가 다람쥐인줄 착각하며 발버둥도 칩니다..(그 동영상을 못 찍어놓은게 한 입니다..ㅎㅎ)

 

 

오랫만에 사야사진도 올립니다. 지난 오월 그 도쿄스모장에도 나타났던 독일친구가 왔을때입니다. 각도때문에 덜 뚱뚱해보이긴 하지만 진짜 이 놈의 살은 왜이리 안 빠지는지 막 운동을 시작했더니 또 팔을 다쳐서 한동안 또 이 무거운 몸을 끌고 다녀야할 듯 합니다..ㅜㅜ

 

우짜든둥 정말 오랫만에 독일친구를 만나니 독일도 그립고 참 좋더군요. 우연하게도 오늘 다음메인에 독일인 어쩌고하는 기사가 떴던데 정말 독일만큼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겹게 돌아온 내 나라에서 사는 게 참 고통스럽거든요. 오늘은 가신 노짱님의 생신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관세음보살님앞에 향하나 피웠지만 저는 아직도 그가 가신게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혹 묘소에라도 다녀오면 그때 실감이 날까요.

 

구월일일, 사야가 돌아왔습니다..ㅎㅎ

 

읽은 책도 많고 요즘은 '동이'와 조선후기에 올인하고 있기도하고 정신과 상담도 잘 받고 있으며 다시(?) 삶에의 열정을 불태우며 이 더운 날 기브스한 손으로 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한국에 돌아온 지도 삼년이 지났습니다. 제겐 참 귀중한 시간들이었죠. 지난 주 제 의사는 뭐에 흥분을 했는 지 '정상인 당신이 병원에 오는건 도를 닦기위해서가 아니냐'고 막말(!)을 하던데 도까진 아니어도 스스로를 알기위한 뼈를 깎는 시간이었던 듯 합니다.

 

저는 그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지 않는 다양함이 존중받는 '사람사는 세상'에 살고 싶은데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라는 걸 이제야 절감하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2010.09.01.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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