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곳으로 이사왔을때 사야가 겪었던 산사태를 아마 기억하실거다.
정말 그 이후로 일년이 넘은 얼마전까지 단한번도 집문제로 고민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집주인도 시공사도 그냥 방치해둔 상태로 그런 집에서 어찌사냐는 동정인지 아유인지 모를 소리도 들어가며 지난 가을을 겨울을 그리고 봄을 버텼다.
이사도 엄두가 나지않았지만 도저히 그 상태로는 아무도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없을거란 너무나 확고한 소리들에 감히 집을 뺄 생각도 못했다.
아 정말 우리 집에 다녀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쓰레기통수준의 뒷마당으로 버틴게 얼마던가.
저리 비닐을 치고 살았는데 지난 5월 9일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가장 위험해보이는 소나무를 잘라대기시작했다.
공사해주긴 글렀구나 그래 나무쓰러질 걱정없는게 어디냐
뒷마당까진 엄두를 못내고 데크에서 보이는 저 황량한 곳에 꽃씨 잔뜩 뿌리고 이것 저것 옮겨심느라 허리부러지는 줄 알았다.
비맞아가면서까지 일을 하니 앞집 여잔 내가 비 맞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나? ㅜㅜ
그렇게 이십여일이 지난 5월 29일 토요일아침 .늦잠에 깨어 아직 아침도 못먹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저리 포크레인이 나타나 공사를 하겠다는거다.
아무리 대한민국에 비상식적인 일이 많다고는 하나 저건 아니지. 미리미리 썼으면 그 황당한 이야기를 다했겠지만 우짜든둥 우여곡절끝에 삼일간 공사를 하기로 하고 통과.
도저히 포크레인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조성했던 것들이 저리 무너져내리며
약속대로(?) 삼일만에 완성된 공원
그리고 무슨 공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풀을 자라게 하겠다고 저리 쏟아붓기 시작한 건 또 열흘 뒤.
결국은 삼일이 아닌 근 이주만에 이런 모습이 완성되었다지
공사야 공사고 또 내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내 공간. 삼일이 몇주가 되고 그동안 새참이며 냉커피며 공사뒷바라지에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언제 나타날 지 모른다는 것.
내가 이렇게까지 착한 인간이었던가 회의하는 와중에 나타난 주인아줌니께선 너무나 이쁜 목소리로 그러셨다네
이제 잔듸를 깔거니가 저 꽃밭을 뒷마당으로 옮겨주세요..-_-
역시나 우여곡절을 거쳐 정원(?)이 완성된 건 내 생일이었던 6월 19일. 그것도 일하느라 친해진 하청업체 사장이 모임있단 말에 급히 해결해준 것.
더 황당한 건 저 잔듸를 깔러오신 노동자(!)분들이 다 울엄마 연세셨다는 것. 날은 더운데 노인네들은 저리 잔디심고 앉았고 젊은 년(!)은 집안에서 책이나 보자니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아놔 사야 또 흥분했다..ㅎㅎ
내 집도 아닌데 공사가 넘 컸어서 뭐라 하기도 그렇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답답해 보였던 저 곳.
그래 이 길고 길었던 서론의 결론은. 결국 이번 추석 전날 비에 저 곳이 또 저렇게 무너져내렸다는거다..ㅜㅜ
이미 집도 계약했고 들어올 사람들도 있었는데 하필 딱 이 시점에 말이다.
이걸 어쩌나하는 마음과 이사 갈 집도 없이 이런 일을 당했으면 어쩔뻔했냐고 그나마 집이라도 계약했으니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왔다리 갔다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마음먹고 추석 다음날 찾아간 새집엔 이리 물이 새고
튼튼해 보이던 마당은 저리 푹 꺼져버렸다지.
이 주인 저 주인 복덕방까지 전화해대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집이 추석 전날 집이 침수된 사람들보단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를 위로..^^;;;
집도 꽤 손보고 들어가야하는데 이 상황이면 등기이전까지 돈문제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까지 힘이 들어야하나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산골짜기이긴해도 내 집이 생긴다는 게 무엇보다 기쁜 사야
폭우가 내게 선물한 엄청난 추석선물이란, 아무리 포기하고 포기해도 사는 건 만만치 않다는 것.
그래도 사야는 내게 주어진 이 삶을 근사하게 살아내고 싶다는 것..ㅎㅎ
촌에선 태어난 여자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겨우 십킬로 남짓 떨어진 곳에 돌아오는데도 이리 힘이 들긴 하지만 이 곳을 떠나있었던 사십년 넘는 세월이 그냥 간 건 아니라고 이 곳에서 다시 충분히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을래.
그래 '몇 막 몇 장'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이제 새로운 막이 시작된다..
2010. 09.26.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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