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산속 이런 눈구덩이속에서 지내본 게 처음이어서인지 눈이 쌓이면 쌓일수록 눈앞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칠수록 가슴은 두근두근.
나는 동화속에 나오는 얼음공주였던걸까. 일년내내 이리 눈속에 파묻혀 살아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앞집 개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면 절대고요속에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불경소리를 틀어놓고 날마다 108배를 했다.
이 난세에 한치앞을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날들속에서 복잡한 머리를 어쩌지못하고 절을 하다보면 어느새 이마엔 땀이 가득 배어 송글송글 떨어지고 텅빈 머리 텅빈 마음만 남는 신기한 경험.
눈이 내리는 날은 더 간절히 붉은 포도주가 마시고 싶다.
저 하얀세상을 이 핏빛포도주에 가둬보겠다고 왔다리 갔다리하다보면 세상은 의외로 참 단순해진다.
드디어 눈이 그쳤다.
며칠동안 벼르던 백양사산책에 나섰다.
나는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한 것만 같다.
그 눈구덩이속에서도 야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무타는 냄새와 그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정답고 그들의 열정이 부럽다.
야영까진 엄두를 못내지만 요즘은 나도 도보여행이 간절히 하고싶다. 끊임없이 걷다보면 이 뒤엉킨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까싶은 마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노가 내 안에 숨어있음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편견덩어리임을, 내가 알고있는 건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한가뿐이라는 걸 깨닫느라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간다.
내가 이 곳에 들어온 건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2009.01.28.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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