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눈이 엄청 내리던 날(아니 눈은 지금도 오고 있다만..ㅎㅎ)
잠시 댓글에 언급했던 기타쟁이들이 저 눈을 헤치고 우리 집에 왔다.
차도 못올라와 아래두고 기타며 앰프며 맥주까지 들고 나타난 시간은 새벽 한시 이십분..ㅎㅎ 남친은 내게 무지 미안해하며 아침에오라고 난리였지만 내가 뭐 그런 걸 가릴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그때밖에 없다는 데 어쩌겠냐
왼쪽은 기타하드에 대해 빠삭한 전문가고 오른쪽은 연주의 대가. 연주가가 들고 있는 기타가 남친이 지난 번에 직접 도색한, 그리고 저 친구가 무진장 탐내는 기타다.
나야 그 시간이면 벌써 술 몇 잔 걸쳤을 시간이라 오면 우동이나 끓여주고 잘 계획이었는데 왠걸 연주하는 거 듣느라 (동영상 엄청 찍었는데 플레이가 하나도 안된다..ㅜㅜ) 기타설명 듣고 어쩌고 하느라 함께 꼬박 밤을 새워버렸다.
네 시간 넘게 이 기타 저 기타 소리도 비교해보고 이 엠프 저 엠프비교해가며 열심히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정말 행복한 경험.
산사다보니 그 밤중에 전자키타 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밖에 눈은 내리는 데 분위기 죽였다.
아 뭔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런거구나를 절실히 느끼게해준 사람들.
기타는 잘 못치지만 기타보는 안목이 있는 컬렉터라는 남친덕에 절집에서 전자기타 생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우는 호사를 누렸다...ㅎㅎ
그 짬을 내서 좋아하는 기타를 쳐보기위해 와보았다니 참 이 생각 저 생각..
내게도 저런 열정이 있는 지 그들이 부럽고 이뻐서 더 벅찬 시간이었다. 아 그러니까 나는 몰랐는데 이렇게들 각자의 삶을 멋지게 영위해가고 있었구나, 뭐 이런 오버쟁이 사야의 감동이었다.
둘 다 토요일에 일이있다며 또 새벽같이 그 눈길을 헤치며 떠나간 후, 밤새 술을 마셨건만 음악덕인지 술기운이 오르지 않아 혼자 맥주잔을 기울이다(남친은 벌써 나가떨어졌슴) 미친듯이 눈길이 걷고 싶어져 옷차려입고 나섰다.
여섯시가 넘엇건만 오밤중같은 길..
정신은 멀쩡했다 우기지만 술이 취하지 않았다면 결코 혼자 나서지 않았을 저 눈길을 걸었다.
반 미친X처럼 어머 아름답다를 외치며 백양사까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별 구별도 안가는데..
이 눈속에 야영하는 팀들도 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보니 가는 차 하나 오는 차 하나..
대학때 써클에서 오대산에 올랐다가 한밤중 눈속에서 길잃고 헤맨적은 있었지만 깜깜한 눈속을 혼자 걸은 건 내게도 처음.
그래 사는 게 별거냐 저 젊은이들처럼 좋아하는 일하고 눈속을 걷고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왜 아둥바둥하며 어딘가로 미친듯이 달려가는 것인지..
거기다 아무리 위기라지만 비상체제라며 지하벙커까지 들어가버리는 사태속에 불안하고, 자꾸 방송에서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광고가 나오는 것도 불안하고, 인터넷에 소신대로 글올리는 것도 불안하고, 도대체 내가 가진 상식이나 이치로는 설명이 안되는 요즘 우리의 현실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제 밤잠을 쪼개 취미생활같은 것도 하기 힘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가진 떡한덩어리마저 빼앗겨버릴 수도 있단 위기의식.
이렇게 시골로 내려와 속된 말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생활을 하면 마음이나마 편하지 않을까했던 희망조차 용납하지 않는 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그 실체가 뭘까.
나는 왜 많을 것을 포기하고 굳이 돌아온 이 땅에서,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온 이 산골에서까지 이다지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들의 이면을 읽으려 애쓰고 내 미래를 고민해야하는 걸까.
우리는 이제 평범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기는 건 아닐까.
어디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이상의 것들을 보게 되는 걸까.
절집은 좀 나을까했더니 거기도 조용하고 내려오는 길 보니 아침공양시간이 끝나서인지 공양간만 설겆이하는 소리가 두런두런(저기가 공양간은 아니다) 괜시리 들어가 밥이라도 얻어먹을까하다 지나친다.
나랑 백양사산책을 해보신 분들 알겠지만 공양간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조금 무섭더라.
일곱시가 되니 가로등도 자동으로 다 꺼지고..
술취해서였는 지 눈길을 걷느라였는 지 갑자기 힘들고 춥고, 덜 녹은 눈위에 또 쌓이니 함 꽈다당 넘어져도 줬다지.
조용히 다녀올려 했기에 미안하지만 자는 남친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도 나오는 시간이 있으니 결국 만난 건 야영장 입구)
엄청 피곤했을텐데도 잽싸게 튀어나와 따뜻한 목소리로 빨리 차에 타라는 남친. 그냥 눈길이 걷고 싶었단 내게 엄청 놀랬다고 앞으론 꼭 자길 깨워서 같이 가자고 하는 남자.
물론 그 시간에 잠든 지 얼마안 된 남친을 깨워 같이가자고 했다면 그냥 자라고 나를 달랬겠지만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나는 가끔 그의 여섯살 딸내미같고 그는 내 엄마같다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엄마란 그 따스한 느낌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신이 마지막으로 준 상처회복의 기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
사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리고 남들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여전히 앞뒤 분간을 못하고 헤매고 있다.
통찰력이란 건 도대체 어느 찜쪄먹는 세월에 생기는 걸까. 아니 나이가 들어간다고 그런게 생긴다는 건 다 사기고 원래는 그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지, 얼마나 무기력한 지 그런 걸 알아가는 게 나이를 먹는 건 아닐까.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했을 때도 이렇게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자유인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러니까 겁도 없이 다시 이 대한민국사회로 들어온 건 내가 이 사회시스템에 적응하고 살겠다는 무언의 복종의사였던 걸까.
내 삶은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요즘 나는 그게 자신이 없다.
나는 과연 이 땅에서 내가 믿고 있던 그 자유라는 개념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어려서 몰랐다고 반성하며 순응하고 체념하게 될 것인가.
이 땅에서 내게 자유를 돌려줄 건 돈인가 무관심인가 신념인가..
20089.01.11. 장성에서..사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데 정말 뭘 어떻게해야 좋을 지 모르는 시간들.
그래서일까 아주 멋진 밤을 신나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글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분위기 전환상 올리는 또 자랑질.
저게 뭐냐면 남도에서 먹는 다는 연포탕이다. 지난 번 보스님 오셨을때 내 평생 처음 먹어본 것. 내게 낙지야 낙지전골 볶음 회 뭐 이런 개념인데 저런 탕이라니 식겁했는데 예상외로 무지 맛있더라는 것.
남친이 또 먹고싶다고해서 다시 그 식당에 다녀온 후 내가 함 만들어보지 뭐, 이런 정신으로..ㅎㅎ 해봤는데 대박이었다.
정말 초간단. 무랑 멸치 디포리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만든후 낙지랑 파 썰어넣어 잠시 끓인 후 소금으로 간하고 깨랑 참기름 좀 넣어주면 끝.
(저게 꼭 간장넣은 것처럼 보이는 건 내가 특수 소금을 쓰기때문이고)
얼마나 자랑스러우면 고기공놈에게 오면 당장 연포탕을 해주겠다고(그 놈도 뭔지 모르는 음식..ㅎㅎ) 전화로 벌써 내 쪽에서 예약..^^;;
또 보스님덕에(전라도에 사는 건 난데 밥먹으러 가는 건 보스님이랑이네) 우렁쌈밥이란 것도 처음 먹어봤는데 그것도 결국 집에서 해봤다지.
딴 동네(?)와서 사는 게 재밌는 건 이런거다.
각설하고 조카가 어제 드디어 제대했다.
내 프로필을 쓴게 조카가 군대가지 전 날이었는데 이제 근 이년이 흘렀다.
(누가 글을 남겼기에도 썼지만 프로필 수정을 해야겠다..-_-)
군대다녀온 놈에게도 참 긴 시간이었겠지만 내게도 참 어마어마한 시간.
얌마,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으리라 본다. 문제는 짧은 시간(이년이면 인생에서 짧은 시간이니까)안에 뭔가 느끼거나 달라지는 건 그 보다 더 오랜 시간 달굼질을 통해 자기화하게 된다는 것.
아니 본인이 해야한다는 게 맞겠지. 군생활이 삶에서 떨어진 별개행성같은 그런 경험으로 남게 방치하지 않길 바란다.
제대 축하해. 잊고 있었던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