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또 하나의 어머니 그리고 내 어머니들

史野 2008. 12. 9. 02:32

내게 또 하나의 어머니가 생겼다.

 

아시다시피 남친의 어머니다.

 

내겐 나를 낳아준 그러나 이 나이가 되도록 내 가슴에 피를 흘리게 하는,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당장 눈물이 나게 하는 왠수같은 친정엄마가 있고 결혼을 통해 만난 시어머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아 세상엔 이런 어머니도 있구나, 아니 이런 인간도 있구나를 절절히 느끼게한 그 어머니. 내 시어머니

 

그래 말리고 한 결혼 그것도 무난한 결혼도 아니고 국제결혼을 했다 실패하고 돌아온 딸이 뭐 그리 자랑스럽겠냐만 (그때 올렸던 글은 또 사기였다-_-)  차라리 그런 네가 창피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이나하지 여전히 표리부동으로 일관하는 내 엄마.

 

그 엄마를 대신해 아들내미를 떠나간 며느리에게도 여전히 온 진심을 다하는 내 시어머니는 요즘 내 친정엄마같다. 술이 잔뜩취해 한시간을 울고불고해도 그 소리 다 들어주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는 그 어머니.

 

얼마전 전화한 친구에게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술주정을 했다니 누가 니 시어머니냐? 묻길래 내가 한 대답은 당장 아니 그럼 친정엄마. 

 

토요일 그녀에게서 소포가 왔다. 크리스마스선물. 작년에 소포가 하도 늦게도착해서 난리쳤던지라 올해는 특급으로 보내셨는 지 크리스마스 소포가 벌써 도착했다. 아무리 일찍 도착해도 크리스마스소포는 당일까지 풀어보지 않는 게 예의건만 거기 크리스마스빵인 슈톨렌이 들어있는 줄 아는 지라 풀었다.

 

그녀가 직접 구운 그 빵을 꺼내고, 내가 부탁을 했으니 다른 건 뭔지 대충 아는데도 모르는 척 카드도 읽지 않고 살며시 선반에 올려놓았다.

 

전남편이 내 편을 들어주는 거야 그래도 내 남편이었으니까 그가 나를 안 믿어주면 누가 나를 믿어주나하는 믿음이 있지만 아무리 친했다고 해도 시어머니는 한다리 건너인데 이토록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는 그녀가 너무나 고마와 나는 자주 운다.

 

그래 이유야 어쨌건 이혼을 했으니 결혼에 실패한 건데 그 십오년 삶이 내가 그냥 산게 아니란 걸 그녀가 산증인으로 증명해주며 나를 위로하고 있으니 어찌 내가 고맙기 않겠는가.

 

내가 힘들고 외로울때마다 난 그녀가 늘 강조하는 그 말, 내게 중요한 건 네 행복이다' 를 자꾸 되뇌인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런 내게 이제 다가온 세 번 째 어머니.

 

남친과 나는 결혼한 것도 아니고 결혼할 생각도 없으니 정식으로 시어머니는 아니다만 어쨌든 나랑 함께 살고 있는 남자의 어머니. 그래서 내게도 어머니.

 

내가 남친과 연애를 한것과 달리 여기 내려와 살기로 결정하건 내내 올린 글처럼 쉽지 않은 문제였고 정신적으로도 어머니문제까진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남친은 내가 울시어머니에게 대하듯 그 어머님께 해드리길 바라는데 그게 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세월이 필요한거니 나로선 황당하고 암담할 밖에..

 

재수없다고 하고 내게 돌을 던져도 좋다만 나는 누구를 만나건 진심으로 대한다. 타고난 여우이기도 하지만(이걸 의심하는 사람도 많더라만 나는 절대 곰은 아니다..ㅎㅎ) 아는 척 앞에서 살살거리고 그런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성격이다.

 

남친과 어머니는 참 특수한 관계라 그 정이 각별한데 그 사이에서 긴 시간은 아니었어도 내 진심을 몰라주는 남친때문에 나는 나름 피가 말랐다.

 

그런데 그 관계를 정리하고나서시건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 나에 대해 거의 모르신다. 묻지 않으시고 내가 말하지 않으니 아실 수도 없다.

 

그냥 지금의 나만 보시고 당신의 아들만 보시고 이 상황에 나름 최선을 다하신다. 당신아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고 당신아들을 위해 나름 당신은 내 맘을 편하게 해주기위해 많은 애를 쓰신다.

 

내 시어머니가 그랬었는데 내 시어머니처럼 그 잘사는 나라 잘난 집안에서 많은 교육을 받으신 것도 아닌 그 분이 내 시어머니를 많이 닮으셨더라는 거다.

 

얼마전 친정엄마생신이었다. 내가 여기 내려온 후 추석 이후 두 번째 가족모임.

 

아무도 내게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추석도 그냥 지나갔고 내가 외국에 사는 것도 아는데 가봐야하지 않는 마음. 남친이야 당연히 가봐야한다고 올라가라는데 내가 혼자사는 것도 아니고 가게되면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이런 저런 고민만 하고 있는데 이 왠수같은 남자가 내겐 말도하지 않고 어머님께 울 엄마생신이라는 걸 말해버렸고 어머님은 가져다드리라고 한과를 보내셨다.

 

안그래도 복잡한 상황에 얼마나 화가나던지 남친에게 마구마구 화를 내버렸다.

 

가만히 혼자 생각해보니 그게 무슨 남친 잘못도 아니고 남친에게 미안한 마음 복잡한 마음이 다 얽혀 못참다가 엄마에게 우리가 가면 안되냐고 전화를 했다.

 

구구절절한 엄마의 달변내용은 올 필요없다는 것과 어머님의 선물은 받은 것으로 하겠다는 것.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 상황을 이리도 이해못해주나 싶어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형제들에게 동의를 구해볼까 줄줄히 전화를 돌려봤는데 늦은 시간이었던지라 통화가 되었던 건 울 큰 언니 하나. 역시 반대라나.

 

이런 걸 끈 떨어진 갓이라고 표현하던가. 참 암담하고 처절했던 기분.

 

혼자라도 제발가보라는 남친 말도 무시하고 한과는 선반에 올려놓고(그러게 이런걸 왜 가져왔냐고 화를 무진장 냈고 남친은 남친대로 가져다드리면 될 거 아니냐고 겁나게 싸웠다) 그냥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구구절절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그런데도 이 어머니는 내가 서울에 안 간걸 아시면서도, 최소한 내가 한과를 잘 받았다 어쨌다 일언반구 하지 않았는데도 그거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는 거다.

 

하긴 그렇게따지면 한국사회에서 아무리 이 나이라도 버린 자식이 아닌 이상 짐싸들고 내려와 남자와 사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내 집에 대해서도 절대 묻지 않으신다.

 

타고나길 부지런한 여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게으른 여자도 아닌 나는 한강을 읽느라 그것도 중간에 손님까지 다녀가 한 열흘 간 집안 일을 거의 놓고 살았다.

 

중간도 아니고 마지막권을 세수도 안한 상태로 읽고 있는 데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는 온 냉장고를 뒤집어엎고 난리가 나셨다.

 

어머님은 그러시면서도 이런 거 싫어한대드라 어쩌고 하시긴 하지만 처음엔 참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

 

내 시어머니는 갑자기는 커녕 아침 열시에 오라고 초대를 했더니 차가 밀려 늦을까봐 일찍 출발을 했더니 이십분전에 도착을 했다고 아침에 이십분이나 일찍 나타나면 당황한다고 그냥 들어가자는 시아버지를 말려 그 시간 차로 동네를 빙빙 돌다 딱 열시에 벨을 누른 분이었으니까.

 

어쨌든 냉장고를 뒤집어엎다못해 설겆이까지 하신 어머님이 개수구 통을 꺼내며 하신 말씀은 ' 관세음보살님'.

 

안절부절 그런 어머니곁을 이런 변명 저런 변명 떠돌다가 내가 한 말은 ' 어머 어머니 어떻해요 이꼴을 보시고 집에 가셔서 얼마나 심란하시겠어요?'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내가 이런다고 나 가고 내 아들 구박하면 안된다..ㅎㅎㅎ

 

이번에 특별히 냉장고를 뒤집어 엎으신 건 김장때문이다. 나는 남도김치가 안 맞고 둘이 먹을거니까 내가 그냥 담가도 되는데 어머님은 미리부터 몇 포기를 담가야되고 어쩌고 우리 김장 걱정을 하셨더랬다.

 

그 쪽에서 김장을 하면 좀 얻고 그냥 내가 알아서 나머지 하면 되겠다 싶다가 갑자기 김장을 하신 다며 사람을 쓰신다는 데도 가보지도 않고(!) 버텼는데 그 날 남친이 싣고온 김치는 어마어마한 양.

 

아니 도대체 얼마나 하셨길래 우릴 이렇게 많이 주시는 걸까 약간 짜증스런 마음에 창고에 그냥 부려놓았는데 알고보니 그날 담근 김장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만 어머님이 사람하나랑 둘이 담그셨다는 거다..-_-

 

거기다 황당하게도 여기 남도는 김장을 겨울먹을것만이 아니라 일년치를 담근다나..

 

봄이 오면 새 김치를 먹는 것에 익숙해있던 나는 외국이 아니라 이 곳에서도 확실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우짜든둥 이야기가 또 길어졌는데 그날 어머님 열심히 일만하시더니 당신이 계속 있으면 불편하다고 빨리 가시겠다더라.

 

'아니요 어머님 이왕 무지 민망했던거 배째라는 심정이니 걱정마세요' ㅎㅎ

 

하도 크게 이야기했더니 어머님도 남친도 어머님 모시고온 스님까지 다 웃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많이 불편하고 어렵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내가 내 시어머니에게 대했던 거랑 비슷하게 그 분을 대할 수 있다.

 

나는 그 분이 내 진심을 알아준다고 믿으니까.

 

물이 안나올때 남친이 빨래들을 싸들고 어머님께 다녀왔더랬다. 거기서 빨래를 돌려 와서 말리는 형식으로..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보따리가되어 돌아왔다.

 

모아졌던 빨래라 수건에 냄새가 남다고 못 가져가시게 하고 삶아 빨아 말려보내신거다. 생전 전화같은 것도 안드리는 내가 놀래 죄송하고 고맙다고 전화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그리 놔두지 말고 자주 자주 보내라시던 어머니

 

예전에 시어머니가 서독에서 공부하실때 세탁기도 없고해서 빨래를 동독까지 보내면 그 어머님이 다 빨아다려 우편으로 보내셨단다.

 

그 이야길 들었을 때 얼마나 부러웠었는데 저 빨래 보퉁이를 봤을 때 그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게 이제 세 번째 어머님이 생겼다. 내 시어머니가 그랬듯이 자식을 위해 침묵하고 자식을 위해, 자식이 선택한 여자를 위해 잘하는 어머니

 

참 고맙고 그리고 또 죄송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 식대로 갈 것이고 당신에게 크게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당신이 맘써주시는 것 그것만은 알고 있노라고, 마음을 알아주는 당신의 그 뜻 나도 가슴에 새기고 가겠노라고..

 

그래 내게 새 어머니가 생겼다

 

 

 

2008.12. 08.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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