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뭔지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정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특히 나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한번 맺은 인연에 집착이 많은 사람은 그 정도가 더 심한듯하다.
이야기했듯이 주말에 아는 동생이 왔었다. 내가 저 놈을 94년도에 독일 어학원에서 만났으니까 이제 우리도 햇수로 꽤 되는 인연.
늘 보는 게 아닌데도 시간이란 건 이런 걸까. 얼마만에 만나건 반갑고 이런 저런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지인의 방문은 늘 활력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 독일에서 내게 참 많은 위로가 되던 놈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가끔씩 안부전화해주고 시간내서 밥도 사주며 이런 저런 한탄도 들어주는 참 고마운 놈. 내겐 거창하게말하면 존재자체로 위로가 되는 흔치않은 지인이다.
받기보단 주로 베풀고 산다 착각하고 사는 나같은 위인이 내가 해주는 것도 없는데 너무 기대기만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놈.
남친과는 서울에서 한번 보고 두번째인데 이박삼일 내내 어찌나 편안하고 좋던 지, 셋이 산에도 가고 온천에도 가고 나는 틈틈히 저 놈 붙들고 주저리 주저리 쌓인(?) 말들을 마구 토해냈다지.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누님이나 형님, 나이가 적으면 거의 00아에 반말인 남친의 특이함덕에 특히나 더 편안했던듯하다. 늘 인간관계에 본인스스로 적정하다 싶은 선을 긋고 사는 나랑 비교 때론 무모해보일만큼 진심으로 승부하는 남친은 내게 연구대상이다.
내가 아니 우리모두가 어느 순간 헌신짝처럼 내버린 인간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남친에겐 남아있다.
우짜든둥 서울에 꼭 갈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월요일 저 놈 올라가는 차에 실려 서울에 갔었다.
고기공놈이 명동에 숙소도 예약해주어 나름 서울나들이.
지난 번 고기공놈하고 만남도 너무 짧아 안타까왔고(그러니까 수다를 다 풀지 못했고) 승호엄마며 친구들도 좀 만나고 싶었고 이박정도 혼자 있다가 남친이 이박정도 올라오는 걸로 한 갑작스럽고 어설프게 시작한 나들이였기도 하지만 오늘 그냥 내려와버렸다.
처음 고속도로에서 나와 삐꺼번쩍한 서울에 들어섰을 땐 늘 또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게 익숙했었는데 막상 그 복잡한 명동에 이틀있어보니 무조건 집에 가고 싶더라는 것.
한달내내 다섯명 정도 사람 구경을 하고 살다가 몇 시간동안 수백명을 봐야하는 게 부담스럽고 피곤했건 걸까.
나는 전형적으로 도시형인간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적막한 곳에 무리하면서도 돌아오고 싶었다니 신기하다.
이 터, 내가 없는 동안 풍수전문가가 다녀가셨단다.
이 집이 산의 기를 그대로 받는 명당이라고 하셨다나. 단지 이 터에서 잘 버틸려면 양보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데 내가 직접 들은 게 아니니 그게 딱 뭘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도시적 세련미를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나는 이 고립무원의 터가 너무나 잘 맞는 다는 것이고 그 곳의 내가 나였는 지 이 곳의 내가 참 나인 지 헷갈리고 있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어느 색감하나가 조금만 어긋나도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이틀내내 잠옷으로 입으려던 옷을 입고 명동을 활보하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콩다방에 앉아 아메리카노도 아닌 블랙커피를 시켜 여유있게 커피를 마셨다.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나이탓일까.
빵구난 양말은 꼬매신어야한다고 절대적으로 믿는 나는 이삿짐센터 직원에겐 필요이상의 팁을 건네고 가끔 미친척 비싼 포도주를 마시면서 얼마전엔 역시 미친척 강기갑의원에게 내 평생 최초의 정치후원금을 보냈다.
역시나 또 잠안자고 횡설수설이다만 결론은 산다는 게 참 어렵다는 불평이다. 내 인생의 변화가 쓰나미급이라면 요즘 이 땅의 변화도 쓰나미급 그 이상이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아침에 올라온 남친을 그대로 여기로 다시 끌고(?) 내려온 건 날이면 날마다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이 대한민국의 심각한 현실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때문인것 같다.
그러니까 산다는 건 정을 나누는 건데 그 소박하게 정을 나누며 사는 삶도 힘들게 만드는 이 나라.
시골로 내려오면 그리고 욕심을 버리면 대충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하는 이 나라.
사는 게 왜이렇게 힘들어야하는 지..
그래 그런거였나보다. 허둥지둥 만날 친구도 못 만나고 이 곳에 내려와 내가 하고 싶은 말.
아니 머리에선 쓰리쿠션으로 이리치고 저리치는 데 그 말들을 속시원히 뱉어낼 수가 없어서 죽을만큼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가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야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 어떻게 자리매김을 해야하는 건지
참 혼란스럽고 어려운 날들이다.
2008.12.18.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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