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꿈같은 생활

史野 2008. 12. 24. 23:29

 요즘은 글도 잘 안 올리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분들이 왔다갔다하셔서 부담스럽다. 뭔가 거창한 이야길 올려야할 것 같지만 내 생활이 요즘 그저 단순한 지라 그냥 안부인사차 이런 저런 이야기..

 

 

남친이 아는 후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한국을 오래 떠나있던 이유인지 저런 돌잔치는 처음으로 아주 낯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아이가 이쁜 걸 전혀 모르겠고 남친은 아이라면 환장을 하고 그런다..^^;;;

 

나도 웃기게만난 인간관계가 있지만 남친도 저 후배를 인터넷으로 기타팔다가 알게되었단다.

 

저런 일 아니면 외출할 일이 거의 없기에 저날 너무나 충격을 먹고 들어왔다. 평소엔 무지 컸던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앉아있는 내내 불편해서 죽는 줄 알았다.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기에 좀 암담하고 우울했지만 생활패턴상 당장 살을 왕창 뺄수 있을 거 같진 않아 더 우울하다.

 

 

 

또 억수로 많은 눈이 내렸고  저 눈부신 밖을 내다보며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요즘은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거의 꼼짝없이 저 창가에 앉아있는다. 좀 적절히 조절하면 좋은데 성격상 그게 잘 안된다.

 

 

동지라고 팥죽을 보내신 어머님이 남은 새알심반죽을 구워먹으라고 주셨다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민하다 남친을 위해 호떡을 만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저렇게 맛있는 호떡 처음 먹어봤다..^^

 

어머님이 역시나 모과차를 만들어보내셨다. 나도 만들어야지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향좋은 차를 마시면 기분도 좋아진다..

 

 

 

즘은 차를 많이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론 술보다 더 많이 마시려고 하지만 금방 갈아타는 건 쉽지 않으니..

 

하나는 처음 마셔보는 큰 스님에게 얻어온 뽕잎차인데 아주 맛이좋다. 옆에는 보스님이 보내주신 현미녹차. 역시나 구수한 게 편안한 맛이다.

 

 

 

드디어 장성읍에 가서 겨울장화를 하나 장만했다. 지난 번 등산화가 고장나고 나선 내가 가진 신발중에 이 산골에서 신을 수 있는 게 없다. 만원짜리 신발로 여름부터 지금까지 버텼는데 그보다 이천원 더 비싼 저 장화로 봄까지 버티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난 요즘 잠옷도 없고(추워서 입을 수가 없다) 똑같은 옷을 입고 삼사일도 버티고 잘 씻지도 않건만 남친이 그래도 이쁘다니 겨울을 이꼴로 나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ㅎㅎ

 

요즘 난 산다는 게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맘편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오늘은 내게 십몇년간 일년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던 성탄이브. 어쩔까 고민을 좀 하다가 아무 트리장식없이 그냥 남친과 둘이 고기를 구워먹었다.

 

남친은 앰프를 팔아 내 카메라사는 데 보태라고 줬고 한 후배가 탐내는 기타를 팔아 더 보태줄테니 망가진 20D도 아니고 5D를 사란다. 이건 무슨 오헨리의 크리스마스선물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카메라로 고민하고 안타까와하는 남친의 마음이라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도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그 비싼 카메라를 사냐고 웃었는데  시어머니가 뜻하지 않게 돈을 좀 보내셨다.

 

늘 공평하게 선물을 해주시곤 하던 예전처럼 딱 그 만큼의 돈을..

 

며칠전에 통화하며 리코더레슨비가 비싸다며 삼십분만 받으신다길래 너에게 투자하는 게 뭐있다고 그걸 아끼냐고 뭐라했었는데 열번은 레슨을 받을만한 돈을, 그녀에겐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은행에서 황당한 량(?)의 유로가 입금되었단 전화를 받고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 Hanna 나의 영원한 어머니. 그녀가 보낸 돈은 그 수십배 아니 수백배의 그녀마음이 되어 내게 닿았다.

 

어쨌든 그녀가 리코더연습을 그리 열심히 하고 즐기는 걸 보고 느끼는 건데 나도 더 늦기전에 늙어서도 그리 즐길 수 있는 악기하나 시작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그때 도착한 선물을 풀었다. 몽님이 추천하신 저 책은 독일문학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사람의 자서전인데 내가 부탁한 거라 풀기전에도 뭔지 알았다. 그러데 편지를 읽어보니 사신게 아니라 아버님책장에 꼿혀있길래 너도 좋아할 거 같아 보낸다는 말씀에 또 울컥

 

 

 

열어보니 책표지엔 아버님의 이름이 쓰인 스티커가 붙여져있고 2000년 어느 신문에 실렸던 저자의 기사가 잘 접혀져있다. 꼭 돌아가신 아버님을 뵙는 기분.

 

그리고 그녀는 전화에 언급한 적이 있는 커다란 전시회카타로그를 함께 보냈다. 네가 봤으면 좋아할 전시회였다며..

 

 

 

 몇 일 전 독일에서 소포가 하나 더왔다.

 

 

 

조카애가 그린 그림과 얼마전 찍은 사진들 그리고 역시 시어머님께 부탁한 건데 시누이가 대신 보낸 (자기출판사에서 나왔다고)이번에 노벨문학상을 탄 르 클레지오의 몇 책들. 그리고 기억하시는 분들 있겠지만 내가 시누이커플에게 받아서 천사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던 저 피규어까지..

 

 

 

고기굽고 남은 숯에 소포에 들어있던 전나무가지를 태웠다. 촛불가득한 전나무는 없지만  익숙한 전나무향이 집안에 가득하니 역시 좋다. 남친의 선곡으로 여러 음악을 들으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그리고 술이 약해 얼굴이 벌개서는 숯불에 구운 감자를 열심히 먹고 있는 이 남자.

 

저녁내내 너무나 행복하다고, 이렇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자기 인생에서 보내게 될 줄 몰랐다고 진짜 행복해하던 남자.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누군가를 보는 건 진한 감동이다.

 

이렇게 우리 둘만의 첫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산다는 건 미스테리.

 

사야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그저 오늘을 산다. 그리고 그 오늘의 따뜻함에 감사한다.

 

 

 

 

2008.12.24. 장성에서...사야

 

 

41767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의 시간도 저처럼 따뜻하시길 바래봅니다..^^

 

지금 듣고 있는 키스자렛의 하프시코드연주 골든베르그변주곡을 올리고 싶은데 음악샾에 없네요

 

아까 오랫만에 들었던 돈맥클린의 곡들을 몇 개 들었습니다. 빈센트만큼 제가 좋아하는 곡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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