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남겨주셨던 건 아니었건 지난 글에 함께 걱정해주고 아파해주신 분들께 보고서라도 올려야 도리일 듯하다.
아니 어쩌면 문자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내가 더 편해질 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래 결국 이혼이라는 걸 했다. 과정이 너무 웃겨서 깔깔대며 문을 나서긴 했다만 그래도 판사(판사 맞는 지 잘 모르겠슴..ㅎㅎ)앞에서 이혼에 합의했으니.
그날 당장 구청에 신고를 했고 호적정리는 정확히 금요일에 된다더라.
물론 나야 끝났지만 남편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몇가지 서류정리가 더 남아있긴 하고 그래서 서울에 한번 더 다녀와야할 지도 모르겠다.
만으로 스물네살에 만났던 남자와 만으로 마흔하나가 되어 끝냈으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거기다 애라도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그 긴 세월을 우린 그저 늘 둘뿐이었으니 우리가 가진 추억이란 기뻤건 슬펐건 자식때문이 아닌 늘 둘에 관한 거다.
우리부부의 헤어짐이 남과 다른 건 우리가 국제커플에 떠도는 커플이기도 했지만 아이가 없는 커플이기때문일거다. 그 긴 세월을 아이도 없이 둘에게만 집중해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예전엔 남편이 친구같고 애인같고 돌봐줘야할 자식같기도 하고(그건 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그랬는데 이번에 막상 이혼하려고 만났더니 우린 가족이었구나하는 느낌.
남편이나 애인이었으면 죽도록(?) 그리워해야할텐데 우린 오랫만에 만나서 너무 반갑고 예전에 울 언니가 나 독일로 시집간다고 언제 또 볼까 안타까와하던 것처럼 그렇게 앞으로의 만남에 대해 안타까와하는 그런 가족.
난 그랬다. 휴가나온 조카에게 뭐 맛있는 거라도 먹이고 싶은 그런 기분처럼 한국에 온 그에게 뭔가 기분좋은 경험을 해주려 애썼다.
홍대거리를 싸돌아다니기도 했고 가회동거리를 걷기도 했고 운현궁에도 갔고 인사동을 통과해 반디앤루이스 서점구경도 갔다.
신랑과 연애할때 내 근무처가 잠실대교 북단이어서 잠실롯데에서도 자주 만났었는데 이번엔 거기서도 자보고 아이스링크구경도 했다.
잠실롯데는 나랑 우연이나 필연으로 따지자면 글하나 새로 써야하지만 하나만 이야기하자.
가보신분들 아시겠지만 잠실역에서 나가면 지하에 트레비분수짝퉁이 있지않냐. 잠실롯데 분수앞에서 만나자하면 당연히 그 분수지 누가 감히(?) 다른 분수를 생각할 수 있겠냐고????
만난 지 얼마안되어 (그땐 애인도 아니었다) 그 분수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오는거다. 5분이상 특히 남자는 잘 안기다리는 성격인 나는 외국인인데다 당시야 나름 애국심에..ㅎㅎ 이십분인가 넘게 기다렸더랬다.
역쪽을 보고 있는데 드디어 나타난 남자( 외국인인데다 키가 커서 금방 눈에 띄더라-그땐 외국인도 많지 않았고 키큰 사람도 훨 적었슴) 드디어 왔구나 하며 내가 방심하는 그 순간, 그러니까 곧 내쪽으로 오겠거니 하는 그 순간에 이 남자 롯데월드쪽으로 냅따 뛰기 시작하는 거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그래도 어쩌겠냐 나도 그 남자를 따라 사람을 헤치며 열나 뛰었지.
먼저 뛴데다 다리가 더 기니 먼저 도착한 남자를 헉헉대며 따라가보니 롯데월드 민속관 들어가는 에레베이터앞에 있는 그 분수에 멈춰서선 이 남자, 뒷 쫓아온 나를 보고 너무 반가와하며 자기도 늦었는데 나도 늦었냔다..-_-;;;;
이번에 그 상황을 흉내내며 둘이 얼마나 웃었는 지 모른다..ㅎㅎ
그렇게 이박삼일동안 잠자는 시간빼곤 내내 붙어서 많이 웃고 때론 울기도 하고 보냈다는 짐 내용가지곤 싸우기도하며 우리의 부부로서의 시간들을 마무리 지었다.
이젠 내 남자가 아니어서인가 예전보다 살이 더 빠져서인가 그 남자가 왜그렇게 멋있어보이던지..ㅎㅎ 반대로 살이 엄청 쪄서 그의 구박을 받아야했던 나지만 그래도 그에겐 편안해보여 다행이라더라.( 그래도 제발 운동 다시하라고 빌더라만..-_-)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았어도 나에대한 원망이 남아있는듯해 많이 미안하긴했지만 남편도 인정했듯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도쿄에서보다 잠을 잘잔다는 것인걸.
이혼수속 코앞에 둔 사람들이 술잔 앞에두고 각자 남친 여친 흉(?)도 보고 서로 상황 다 아는데도 하나는 가능하면 한푼이라도 더 주고 싶어하고 하나는 가능하면 한푼이라도 덜 받고싶어할 수 있다면 그래 그들이 보냈던 그 시간들이 인생에서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을거다.
언젠가 남편이 그녀와 우리가 사는 장성을 방문할 수도 있도록 하자고 했다 ( 그 이야길 들은 남친은 독어. 아니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다..ㅎㅎ)
그런 날이 오려면 남편도 나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잘 살아야겠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고맙게도 판사앞에서의 통역은 고기공놈이했다. 대기실에서 남들은 캡 심각한데 우리 셋은 킥킥대고 아직 결혼식도 안한 놈을 이혼법정 연습(?) 먼저 시키게 생겼다고 농담도 하고..^^;;;
참 고기공놈은 이래저래 참 쓸모있는(!) 놈이다. 남편에게 그랬다. 고기공놈이란 이쁜 별명을 당신이 지어줬으니 그 댓가를 지금 받나보다고..ㅎㅎ
여기서 엽기개그. 남친은 고기공놈을 ' 기공아' 이렇게 부르는데 그 얘길 신랑에게 했더니 한국에 고씨도 있냔다..-_- (그 글 기억하시는 분 있을거다. 나를 '청이야'라고 부른 사건...^^;;;;)
그렇게 고기공놈 덕분에 잘 끝나기도 했지만 헤어짐은 그래서 더 슬프기도 했다.
눈은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는데 남편은 참 투명한 눈을 가졌다. 예전에 홍콩캐런님도 우리가 홍콩을 떠날 때 눈물을 글썽이며 그런 이야길 했더랬다.
언니와 헤어지는 것도 힘들지만 자긴 형부가 00 이름을 부르며 안아주는 그 맑고 따뜻한 눈을 잊을 수 없을거라고..
여기 신랑을 안보신 분들도 우리관계를 많이 안타까와하시지만 가족 친구 지인들, 그리고 이 사랑방에서 알게되어 그 남자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인 지 알거고 그래서 더 많이 가슴아프리라 생각한다.
법원앞에서 남편을 공항가는 택시에 태워보내며 나도 고기공놈도 그랬으니까..
구청닫기전에 서둘러 이혼신고를 하곤 오랫만에 비어플러스에서 가서 올케언니까지 합세하여 셋이 술을 마셨다. 이혼한 여자답게 울고불고 하면 좋으련만 그냥 셋이 즐겁다가 그 밤 심야버스로 내려왔다.
그 시간에 굳이 내려가야하냐는 의견이었지만 이틀을 호텔에서 보낸지라 빨리 집에가서 쉬고 싶었다.
그 새벽에 광주까지 픽업을 나온 남친이 있는 이 곳이, 이젠 내집이니까..
내 기분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이 곳에선 또 이 곳의 삶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 어쩌면 삶이란 고민하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든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건 중요한 건 삶이 계속 된다는 거다.
혹자처럼 스스로 그 결론을 내버리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렇게 껴안고 가다보면 삶이 무엇인지 아님 내가 누구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날도 오리란 희망, 그것만은 가지고 살아내야겠다고...
사야, 그래서 아직은 멀쩡하다.
2008. 10.08.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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