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마지막 진통

史野 2008. 10. 3. 01:13

안그래도 저렇게 싸들고 내려가 잘 사나 궁금하신 판에 요즘 제 블로그분위기상 무슨 일있나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네 무슨 일있습니다...ㅎㅎ

 

전혀 다른, 강조하자면 달라도 너무 다른 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오는 월요일이 이혼 최종 결정일입니다.

 

요즘은 이혼숙려기간이란 게 있어서 (저야 불편하지만 그 제도는 절대 찬성입니다) 이혼서류를 접수시킨 후 애가 없으면 한 달,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석 달이 후에야 정식 이혼이 가능하답니다.

 

신랑 얼굴보는 거야 문제될 거 없는 반가운 일이나 이런 일로 두 번이나 만나야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 남자는 항공요금때문에 하루가 아닌 이틀이나 먼저 오게 되어 이번 토요일에 도착합니다.

 

지난 번에야 제 집이 서울에 있었고 단 하루였으니 그 옆 후진 호텔에라도 묵게할 수 있었지만 이젠 저도 서울가면 갈 곳이 없는 마당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하는 지도 머리가 복잡하구요.

 

헤어지기로하고도 삼주간이나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이니 이틀 이혼여행은 못하겠습니까만은 그냥 여행도 아니고 서울에서 볼 일도 있고 이래저래 하니 그것도 복잡하구요.

 

이거야 날짜가 결정되었던 것입니만 복잡하기 이를 데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제 도쿄 짐 문제도 해결이 되어 이틀 전 드디어 도쿄에서 떠났답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도쿄에가서 제 짐을 챙겨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은 건 오래 전. 도저히 거기 다시 가서 제 짐만 싸들고 나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 믿어 그만 포기할까도 생각했더랬죠.

 

그래 국제이사 한두번 다닌 것도 아니고 뱃속에 가라앉았다면 그만일 물건인데, 하면서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게 안되죠.

 

이혼이야기가 나온 후 신랑은 살림도 나눠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제가 그러고 싶지 않으니 책과 씨디 남은 옷들만 보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더랬지요.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십 사년을 함께 산 사람들의 짐속에서 누군가의 짐을 가려낸다는 게 쉽겠습니까.

 

몇 달을 끌다 언제 보낼거 냔 제 재촉에 몇 일에 걸려 그 작업을 했다고 얼마전 연락이 왔습니다.

 

이삿짐을 싸고 어디에 두고 하는 건 늘 제 몫이었기에 퇴근하고 그 일을 하고 있었을 남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더군요.

 

거기다 그는 제가 가방하나 들고 떠나버린 후 ,집은 네가 있었던 때랑 여전히 그대로라고, 꼭 제가 시장에 간 것 같은데 그 부재가 힘들다고 메일을 보냈었거든요.

 

거기 제가 사년을 살았고 제가 다 정리했으니 눈을 감아도 어디에 뭐가 있는 지 뻔한 반대로, 남편은 뭐가 어디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 짐을 그렇게 구별해 보낸다니 쉬운 시간이 아니었겠지요.

 

예전 국제이사야 회사가 다 부담을 했으니 그게 얼마던 신경써본 적이 없는데 이사비용은 또 왜그렇게 비싼지 남편이나 저나 식겁했구요.

 

어떤 회사는 제가 도쿄를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이삿짐으로 분류될 수 없어 관세로 골치아프다고 아예 맡기를 거부했다고도 하더군요.

 

결론적으론 서른 세박스가 무사히 도쿄를 출발했답니다.

 

처음엔 너무 비싸서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습니다만 (네 저 요즘 돈이 무진장 중요합니다.) 생각해보니 제 책값을 다 모은 것도 되지 않으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구요.

 

이런 저런 생각 플러스 또 서울갈 생각에 그렇게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사이 또 어찌 시어머니가 빠지겠습니까?

 

힘들어서 전화에 술먹고 주정도 하고 또 이 곳을 하도 궁금해 하셔서 사진도 보냈습니다.

 

꽃을 좋아하시니 무엇보다 제 꽃밭에 행복해 하셨고 참 외로와 보이는 곳이구나,란 말씀도 잊진 않으셨죠.

 

늘 그랬듯이 그녀답게 제가 많이 생각하고 힘들게 내린 결정이니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말, 당신은 저나 남편이나 앞으로 신의 도움이 깃들길 기도한다는 말.

 

무엇보다 저를 울게했던 건, 제가 대단한 인간이라고 제 판단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술로 제가 그 대단한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답니다.

 

그 진심이 얼마나 절절히 느껴지던지..

 

단 한번은 내 아들이 뭘 어쨌다고, 혹은 우리가 네게 어떻게했는데 하실만도 하건만 그녀는 여전히 제 가족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며 함께 속상해하고, 난 네 판단을 믿는다고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 행복이다, 라고 말해주네요.

 

가슴은 정말 따뜻했습니다만 이젠 제가 그녀에게 그렇게 갚아줄 수 있는 아니 그녀가 저를 필요로할때 늘 함께 있어줄 수 없다보니 그것도 많이 아팠구요

 

그녀는 남편의 새 여자친구에게도 그게 누구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게 했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대로요.  

 

그럼에도 그녀와 제가 익숙하고 서로를 길들였던 그 시간은 그녀에게 다시 오지 않겠지요. 그래서도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그렇게 어지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 마지막 진통이구나 하면서요.

 

이게 그 남자와 저와의 인연의 끝은 아니겠지만 이 진통이 지나가면 몸살이라도 앓을 듯 합니다.

 

그래서 남친에게도 평소보다 날카롭게 구는데도 이혼을 해봤기 때문인지 저보다 더 먼저 알아보더군요.

 

당연한 과정이라고 지나가면 괜찮을거라고 말해줘서 고마왔습니다.

 

그렇다고 남친이 신이 아닌이상 그저 맘이 편한 것 아니겠죠. 그래서 저희도 지금 쉽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십오년입니다.

 

만난 지는 십칠년이 다 되어가구요.

 

헤어질려고 하니 돈문제도 걸립니다. 내가 떠나왔으니 단 한푼도 필요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저는 단 한푼이 필요하거든요.

 

젠장 신랑은 제게 지금 얼마만의 돈이라도 쥐어줘야하는 데 증시는 바닥이네요.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지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그 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굴욕도 감내했는 지 아는데 떠노느라 집도 없고 그저 가진 게 증시인 걸 대충이나마 제가 아는데...

 

태어나서 증시를 신경쓰게 될 지 몰랐습니다.

 

이래저래 상황이 맞물렸네요.

 

예전엔 이런 저런 이야길 생각날 때마다 이 곳에 풀어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상황도 아닙니다.

 

이 글을 남친도 읽기도 하는 게 단점이라면 전처럼 앉아 글이나 쓰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건 장점입니다.

 

눈물을 삼키다가도 나가 비자를 줍거나 풀을 뽑거나 하다보면 또 하루는 지나가 버리고 고민했던 문제가 뭔가 싶은 시간이 대부분이니까요.

 

어쨌든 어쩌면 그의 마지막 한국방문일지도 모르는데 잘해주고 싶었습니다.

 

결혼 전 결혼 후 한국여행을 적게 한것도 아닌데 저희가 묻언 호�은 거의 그저 그랬던 걸 모자라 모기도 뜯기고 그랬거든요.

 

마지막으로 한국에도 끝내주는 호텔이 있다고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은 데 지금 저로선 비싼 호텔에 방을 두개 얻을 만큼의 재력은 안되네요.

 

아니 그 돈 없다고 제가 죽는 건 아닙니다만 남편이나 저나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도 사치를 해본 적은 없어서 그게 안되네요

 

마지막 다운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그래서 결국은 또 늘 그랬듯 보내겠지요.

 

잘하겠습니다.

 

어떤 것보다 마음만큼 중요한 건 없을테니까요. 

 

떠나올 때나 상황이 아주 많이 변한 지금이나 그의 행복을 바라는 건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요.

 

남친은 그럽니다. 제가 술만 취하면 갈다고 할 때 고이 보내달라고 혹은 간다고해도 잡아달라고 떼를 쓴답니다.

 

재수없게도 전 제가 좋은 마누라였다고 믿고 있지만 이야기 했듯이 결혼한 지 팔년 반만에 남편에게, 이제야 네가 나를 떠나지 않으거란 확신이 드니 이제 우리 아이를 갖자, 란 이야길 들었으니 아주 좋은 마누라는 아니었던 건 같습니다.

 

남편이 그 말은 한 후 정확이 오년만에 결국은 그를 떠났으니 진짜 나쁜 마누라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생활에 후회가 없다고 잘난척하지만 그래서 아프고 힘든 지도 모르겠구요

 

각설하고..

 

내일이나 모레 서울에 갑니다.

 

너무 지쳐 한국에 돌아오면 살 것 같았는데 돌아오니 전혀 낯선 땅에 둥지를 틀고 고향인 서울에 가야할 때 단 아무 곳도 편하게 짐을 풀 수 없다는 것이 상처입니다.(아 제게 와서 묵으라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하신 분들께는 여전히 감사합니다만)

 

그래서 요즘은 무작정 한국에 돌아왔을 때보다 더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뭘 믿고 돌아왔나 그런기분이랄까요

 

서울은 제게 고향인데 낯선 전남에 내려와 낯선 남자랑 살림을 꾸린 제가 서울을 올라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다니요.

 

아예 한국을 버렸다 생각하고 해외를 떠돌다 한국을 방문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거든요.

 

그 차이겠죠. 지금은 제가 한국에 있다는 것...

 

고향에 돌아오니 또 낯선 땅, 또 타자라는 것(압니다 제 탓이 많은 거, 안티걸지 말기)

 

잘하고 오겠습니다.

 

뭘 잘할 건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낯선 땅 서울에 갑자기 올라가 그 엄청난 일을 그 땅에서 한다는 것이 제겐 지금 엄청난 일로 다가온다는 것.

 

이럴줄 알았으면 월세가 비싸도 그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고향이란 건 사람이기도 하고 머물 터이기도 한건가봅니다

 

아 물론 제겐 언어이기도 하고요.

 

 

술이 취했습니다.

 

횡설수설 스스로 알콜중독이라고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위에 썼듯이 시어머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왔다갔다합니다. 아니 걱정하는 남편의 말도 그리고 남친의 말도요...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건데 요즘 저는 술을 마실수록 명료해지네요.(중독자 아니랄까봐 새삼 강조합니다.^^;;;)

 

그래요 저 결국 이혼합니다.

 

그 남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떠나온 순간 부터

 

아니 남편이 했던 말처럼 헤어지자고 한 그 순간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 그 말처럼

 

돌아온 이후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는 이 결정.

 

제기 술에 취해 남친에게 그렇게 자꾸 묻는 건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친을 믿어서이기기도 하겠지만 돌아가야만 하지 않을까하는 인간적인 혹은 연민입니다.

 

남편은 그렇겐 싫다는데 그냥 제 오지랖입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십오년이란 세월은 인간적으로 실망하지 않은 이상 그런 세월이라구요.

 

걱정하시는 분들께 안부를 전한다는 게 결국은 또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만

 

마지막 진통입니다

 

아니 그러길 바랍니다.

 

절 이해한다는 남친도 가끔은 사모님을 포기하고 농사지으니 어쩌니 그런 말을 합니다.

 

사모님이라 행복한 적도 없었고 농사(농사도 아니지만)짓느라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사모님이라 불했던 적도 많고 농사꾼이라 행복한 적도 많습니다.

 

제 상황만으로 비교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도 감정이 왔다갔다하는 데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제가 남편이랑 헤어진다고 말할 때 이 곳에서 받은 상처에 대한 방어입니다..ㅎㅎ)

 

그리고 누가 감히 앞날을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지금 저를 걱정하는 분들에 대한 방어)

 

쉽지않습니다만 앞으로도 노력할 거고

 

노력이 안되면 좌절도 할 거고

 

때려치겠다고 개판도 칠거고..

 

그냥 저는 제 삶을 살아가렵니다.

 

이렇게 마지막 진통이라며 주정도 하면서요..

 

 

 

 

 

2008.10.02.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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