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인사드리죠?
도쿄살때는 날이면 날마다 글을 올리던 사야가 요즘은 아주 바쁘거든요..ㅎㅎ
집은 이제 거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봐도 이게 이주된 집인가 싶게 그 안에서 저는 아주 편안함을 느끼는 중이구요. 뭐 좋은 것만 있겠습니까? 말씀드렸듯이 살던 주인여자가 어찌나 게으른 여자였던지(저도 결코 깔끔한 여자가 아닙니다) 그 묵은 때를 닦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승질이 다 나더라구요. 왠만하면 인신공격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니까 니가 그렇게 뚱뚱하지, 하면서 욕이 다 나오더라니까요.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고 닦아도 닦아도 안 닦이는 것들과 씨름을 하다보니 말입니다.
이게 오래된 집도 아닌데 단 한 번도 걸레질을 하지 않았을 곳도 엄청 나고요(집이 크기나 하면 말도 안합니다) 물이 하도 안빠져서 열어보니 이 식구들의 일년치 머리카락이 쌓여있더군요. 목욕도 안했나 물이 안 빠지는 걸 보고 그걸 치워야겠단 생각이 안 들었을까요? 세상엔 참 신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_-
어제는 이사와서 처음으로 저녁에 외출을 했습니다. 그게 또 우연히도 이태원이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이태원은 제 고향이죠. 제가 간 이태원이야 제가 살던 곳이랑은 다른 곳이지만 그래도 친구들 집을 가거나 많이 돌아다녔던 동네인지라 역시 기분이 묘했습니다. 멋쟁이 택시아저씨가 마침 클래식방송을 틀어놓고 계시던데 디누리파티가 치는 피아노곡까지 흐르고 완전 감상적이었구요. (제 클래식 씨디들을 안싸들고 온게 미치도록 후회스럽습니다..ㅜㅜ)
그리고 또 서양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바에서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왜 하필 내가 떠나온 그 풍경속에 다시 앉아 있나 싶어 잠시 우울해서 그동안 올케언니랑 통화를 했어요..^^;;;
그래도 뭐 잠시만 그랬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집에 오려는데 이 멋쟁이 여자가 장미꽃을 사주더군요..술마시고 여자에게 장미꽃을 선물받은 건 처음입니다.ㅎㅎ
밤에 택시를 탈때는 꼭 개인택시를 이용하라는 친철하신 기사님의 충고, 서울생활필살기까지 들었습니다. 차뚜껑의 하얀색이 개인택시라고 지나다니는 차를 일일히 지적하며 연습까지 시켜주시더군요. 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아가씨(!)들은 밤에 특히 조심해야한다면서요
그제는 강진에서 가시님이 올라와서 저희집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자고 갔습니다..^^ 덕분에 아침운동은 가시님과 제가 뛰는 코스를 걷는 걸로 대신했죠. 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시골같고 너무 아름답지 않냐니까 가시님은 시골에서 온 사람에게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하더군요..하하
제가 해준 해물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아주 이쁜 숯을 두 개나 사주고 가셨습니다. 물론 뭘 사올 지 몰라서 그냥 왔다고 해서 같이 샀죠..^^
어쨌든 와서 재밌고 신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지하철을 갈아타다가 호박엿을 사기도 했는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거기다 아저씨가 이건 지금 아가씨 입에 넣어라 그러며 하나를 더 집어주시는데 그런 정다운 풍경들이 감동스럽습니다.
일요일에는 침대보를 돌려놓고 운동을 나가려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라구요. 물론 친구놈이 미쳤냐고 비오는데 달리기는 왜하냐고 했던 것처럼 비오는 날 모자를 쓰고 달려본 적도 있지만 그 날은 그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우산을 쓰고 서울숲까지 걸어볼려고 나갔는데 중간에 비는 그쳤지만 서울숲을 못 찾아서(?) 성수대교까지 걸어갔어요.
세상에 그 아름다운 한강까지 걷는데 겨우 한시간 거리라니 역시 어찌나 감동스럽던지요. 종로까지 걸어서 한 시간 한강까지도 걸어서 한 시간, 걷는게 취미인 제게 이런 환상적인 조건이 있습니까?
분위기도 좋고 다시 걸어오고 싶었지만 그럼 침대보를 다려야할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뚝섬에서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다리는 게 걱정이라기보다 다리미가 없거든요( 아 이런다고 또 다리미를 사주시겠다는 분이 없길 바랍니다 다리미는 인터넷신청하고 사은품으로 받기로 했습니다..ㅎㅎ)
아는 놈이 오늘 오는데 뭘 사오냐길래 암말도 못했더니 ' 어이고 누나 또 벌써 다 샀구나?' 하고 구박하더군요. 고민하다 제게 절실한 요가매트랑 밸런스볼을 사오라고 했더니 왠 생활용품이 아니라 웰빙용품이냐고 문자가 왔길래 ' 얌마 누나 웰빙하러 한국왔다.' 그랬어요..ㅎㅎ
너무 웃긴 일도 있는데요 올케언니가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데 (이래서 제가 울 언니를 좋아합니다..^^) 함께 배우는 친구가 저랑 비슷한 사람이랍니다. 그래 올케언니가 울 고모는 자기보다 더하다고 숟가락하나도 마음에 안들면 안산다고 했더니만 ' 어머 그럼 나 그 집갈 때 뭘 사가지? 하더라나요..하하하 누가 오라고 했나요?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결국은 어차피 올케언니 점심에 한 번 초대할려고 했는데 함께 오라고 했어요..^^
한국사람들은 참 재밌습니다. 예전에도 물론 꽃집아저씨랑 싸운 적이 있는데요 제가 종이에 그냥 말아달라니까 (일도 적어지고 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 꼭 비닐에 싸서 리본을 달고 어쩌고 고집을 부리시길래 제가 화를 버럭내며 내가 사는 꽃 내맘대로 달라니까 왜 말이 많냐고 했죠..
이번에도 화분이나 그런 걸 사는데 그건 왜 사냐? 꽂을려고 산다' 그걸 꽂아 뭘할려고 그러냐 이 언니 취향 참 독특하다고 장미를 사라고 구박을 하질 않나 비용절감차원에서 장식장을 안 사고 싱크대장으로 맞췄더니 이 아저씨 또 전자렌지는 꺼내야 한다고 우기시네요.
그래도 넣게 짜달라니까 결국 하시는 말씀 해달라는대로 해줄테니 넣었다 뺐다 하래요. 아니 제가 총맞았습니까? 그 무거운 전자레인지를 넣다뺐다 하게요? ㅎㅎ
그래도 재밌습니다.
전망좋은 방앞에 엄청 드러운 호텔이 하나 있거든요? 그래 이게 전망이 좋은거냐고 역시 친구놈이 구박을 했었는데요. 저는 그 호텔을 바라보며 늘 크리스토(왜 포장전문 설치미술가 기억하시죠?)가 와서 저걸 좀 싸줬으면 좋겠다. 무슨 색으로 무슨 재질로 싸면 어울릴까 뭐 이러며 시간을 보내고 있구요..ㅎㅎ
저를 괴롭히던 음식물쓰레기는 분쇄기를 사는 걸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이리터짜리를 사서 반정도 차면 갖다버리는데 분리하는 것도 가져내려가는 것도 그 통을 여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봐도 끔찍한데 남은 어떻겠어요. 그래 혹 에레베이터에서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어제는 외출하는 길에 제 가방(!)에 넣어갔는데요. 가방에서 그 봉지를 꺼내 버리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웃음이 다 나더라니까요.
분쇄기는 시어머님선물로 하기로 했습니다(지금 행복이 가득한 집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분쇄기를 아주 싼 가격에 사실 수 있습니다. 9월 28일까지니까 관심있는 분들 사이트 방문해보세요..ㅎㅎ)
시어머니에게 치즈케익만드는 법을 보내달라고 했다니까 올케언니는 인터넷에 있는데 뭘 그러냐더군요. 그래야 시어머님이 좋아하시니까요. 힘들고 외로우신 시어머님께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건 그런 기쁨 정도입니다.
아니나다를까 너무 좋아하시며 보내신다더니 시장다녀오는데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전화를 끊자마자 그걸 메일로 쳤는데 반송되어오더라며 당신이 부를테니 받아적으라구요..하하하 나 지금 길거리인데다 당장 만든다는 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그럼 우편으로 보내라고 하고 끊었지요..^^
제가 지금 이런 저런 일을 잘 해내는게 너무 신이나고 내스스로 자랑스럽다니까 이 멋쟁이 시어머님은 그 기분 이해한다며 ' 그런데 너는 늘 그랬다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매번 잘 해내는 네가 늘 감탄스러웠다는 말을 붙이시더군요. 정말 대단한 분이죠?
참 그릇도 이쁜 걸로 잘 장만했습니다. (하늘바다님 고맙습니다 할인매장에서 깔끔하게 다 해결했어요..^^) 저는 양식기 한식기가 다 필요한데 양쪽 다 활용할 수 있는 퓨전스타일로 장만했구요. 뚝배기로는 밥이 자꾸 실패해서 옛날 스타일의 돌솥도 샀어요. 벌써 제주도직송 생선도 주문해 받았고 아는 분께 멸치랑 미역도 주문했구요..ㅎㅎ
한국에 오니까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과도 우연히 연락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홍콩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몸이 안 좋아 홍콩과 강화도를 왔다갔다 했었거든요? 그 언니랑도 홍콩 떠나고 처음으로 연락이 되었습니다. 전화번호 받자마자 전화해서 다짜고짜 음성메시지를 남겨놓았는데 이 언니왈. 야 넌지 모를 뻔 했는데 드럽게(!) 반갑다는 말듣고 딱 넌줄 알았다 하더군요..하하하
지금은 제주도라길래 십년동안 비행기안탈려고 했는데 왜 제주도냐니까 목포까지 차가지고 와서 배타고 오랍니다..^^;; 그 언니때문에라도 빨리 면허따서 고물차라도 한 대 사야겠어요..ㅎㅎ
이런다고 정신없이 지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워낙 오랫동안 혼자 살았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중하고 있는 중이구요. 한국뉴스를 들으니 저는 꼭 남한사람들이 북한방송듣는 것처럼 낯설어서(목소리가 거슬리더군요..ㅜㅜ) 내내 BBC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BBC뉴스야 제가 독일을 떠난 후 10년동안이나 늘 듣던 방송이니 배경으로 틀어놔도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다음 주 정도되면 좀 여유가 생길 듯하니 추석이 지나면 운전면허학원에도 등록하고 살사댄스..^^도 배우러 다닐까 생각중입니다. 근육운동이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니 짐도 다른 동네라도 알아봐야겠구요.
어쨌든 매일아침 6킬로를 가볍게 뛰고 있습니다. 한 삼십오분 걸리고요 돌아와서는 간단히 복근운동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죠.
참 다행히도 제가 사킬로가 는게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사 온 저울이 저희 집에 다녀간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니 이킬로정도 더 나간다네요. 사킬로를 빼는 것과 이킬로를 빼는 건 천지차이인데 하늘이 도우셨습니다..ㅎㅎ
자기평생 그런 몸무게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충격받은 올케언니가 목욕가서 다시 재서는 정확히 알려주더군요..^^
친절한 사야는 이렇게 또 궁금해하시는 근황을 올려놓고 청소를 해야겠네요. 어제 예상치못한 사건(?)이 하나 생겨서 너무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 와서 처음으로 아홉시가 넘어 일어났더니 하루가 늦어졌습니다. 달리기를 나가며 더울까 걱정했는데 이젠 정말 가을이더군요. 바람이 선선히 불어서 아주 상쾌하게 달렸어요..
문제는 벌써 저를 다 파악하신 편의점아저씨가 오늘은 운동을 늦게 하시네요 안 더우셨어요? 하시더라는 거요. 그래 늦잠잤다고 고백했죠..-_- (제가 일본사람인줄 알았다는 아줌마 남편입니다.그 후진 호텔에 일본인 관광객이 온다네요.흑흑)
글이 뜨문뜨문 올라오더라도 아 얘가 저렇게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해주세요. 이젠 토요일에 산에도 갈거고 다음 주 화요일엔 친구 연주회도 갑니다..^^
2007.09.13.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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