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세 번째 맞는 주말이다.
고기공놈은 ,말도 안된다고 언니 정말 여기 이사온지 그렇게 밖에 되지 않은 거냐고 무슨 집이 몇 달은 산 집같다고, 하고 올케언니마저도 그것 밖에 되지 않았냐고 하던데 8월 22일에 들어왔고 이 집에는 29일에 이사를 왔으니 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빨리 이 곳을 내 집처럼 만들어 정착하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나를 몰아부치고 나는 전심으로 그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왔다고 혼자 좋아하고 신나 뛰어다니는 건 나지 그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한국에 온 보름 사이에 나는 일본사람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벌써 세 번이나 들었다.
사진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나는 전형적인 한국사람처럼 생겼는데 (몽고인들이 자기나라 사람인 줄 알고 반갑게 두 번이나 말시켰다는 말도 썼을거다) 그 짧은 기간안에 세 번이나, 그것도 막 일본에 살다 온 내게 내가 일본에 살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일본사람인 줄 알았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제 아는 언니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그런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고 어쩌고 했는데 그 날 저녁 또 한 번을 듣고 나니 어찌나 우울하던지 커튼을 구경하러 오겠다는 올케언니에게도 그냥 쉬겠다며 다음 날 당장 아빠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더랬다.(이것도 핑계지만 동양에 와서부터는 워낙 일정이 짧았던 관계로 아빠에게 가본 적이 없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이 곳 사람하고는 달라서인지 사람들도 조금은 어려워하고 성의있게 대하니 혼자사는 여자로서 편하기도 하다.
나를 두 번 째 만난 커튼집 아줌마는 아가씨는 아무리 봐도 일본 사람같다며 어찌 그리 상냥하냐던데 어제 왔던 택배 아저씨마저 단지 인사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좀 택배아저씨도 반가와해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다 물건만 반가와한다며 웃으셨다.
나야 타고나길 상냥하게 태어났는데 (하와이여행은 한국여행사에 예약했는데 메일이 왔다갔다하다가 담당자에게 직원보다 친절한 손님을 만나 즐거웠단 말을 들었다.-_-) 그 오랜 시간 한국에 살았어도 외국인이냐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일본에서는 미국인이냐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여자를 보고 일본인 인줄 알았다니 내가 나가 보낸 14년의 세월이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지도 모르겠다.
하긴 예전에 '나 독일인?' 하는 글에도 올렸지만 도쿄에서 친하게 지내던 독일친구들도 네가 무슨 한국인이냐고,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인인척 한다고 너 한국에서 쫓겨난거 아니냔 농담을 했었으니 어쩌면 나는 그녀말대로 어디에서건 이방인이어야하는 지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참 많은데 시선을 받는 건 워낙 요란한 차림을 하고 다녔기에 독일로 떠나기전에도 그랬고 여기저기 떠돌며 늘 그랬으니 별 피곤할 일은 없다만 (만났다는 언니가 내가 참 꼿꼿하게 걷는다던데 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유럽도 아닌데 유럽에서처럼 당신은 일본인이냐란 말을 듣는 다는 건 지쳐 고향에 돌아온 나그네가 듣기엔 별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건 그들 문제고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잘 이어가고 있다.
달리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집은 딱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제 또 왔던 그녀는 어쩌면 이 평범한 오피스텔을 이렇게 완벽하게(?) 000(내 이름이다)이화 할 수 있냐며 우리 집 너무 좋다고 감탄하고, 뭐든 지 맘대로 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었는 지도 모른다는 말도 하더라.
홍콩과 도쿄 우리 집에 세 번 와서 일주일씩 묵었었지만 온전히 나만의 집에 온 건 여기가 처음이니까 내가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내가 집을 꾸미거나 우리 집에 와서 하는 것들이야 내 스타일이 있으니 같았겠지만 내가 남편이랑 공유하며 살던 공간과 이 공간에서의 내 차이점을 느낀거랄까.
오늘 처음으로 서울 밖으로 나갔었다. 왔다갔다 빼고는 짧은 일정이었는데 도대체 왜그렇게 아름다운 건지.
내가 봤던 세계의 아름다운 곳이 얼마며 돌아오기 바로 전 했던 세계여행이며 한국은 참 시시하다 할만도 하건만 내 눈에 정다운 들이며 산이며 하늘은 맑고 '아 정말 너무 아름답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 나는 이 풍경들이 그렇게 그리웠던 거구나.
어제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도 안드렸건만 오늘도 전화하신 시어머님은 네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당신은 지원하고 계시다고 네 메일을 보니 어쩌고 하시던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이런 결정을 하며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이 있더라.
그러니 시어머님은 그게 걸리셨는지 네가 정말 잘한거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내가 당장 나간다니 무슨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왜그렇게 서두르냐는 글을 그 언니가 남겨놓았었는데 역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도망쳐 나온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아니면, 이 때를 놓치면 도저히 이런 새출발은 할 수 없을거란 위기감이었달까.
신랑은 여행내내 내가 단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던데 나는 나를 보내주겠다는 이 남자의 마음이 변할까봐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그가 나를 보내주지 않으면 나 역시 떠나 올 수 없던 인간이었던 관계로...
'전망좋은 방'이란 (창옆에 놓인 침대에 누워 창가에 촛불을 켜놓고 밤에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가제가 붙었지만 사야살롱이니 어쩌니 내 집에 이름을 붙일 생각이라 몇에게 물었더니 누군가 ' 외로움과 그리움이 만나는 방' 은 어떠냐던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외로움 혹은 그리움.. 내겐 감정없이 듣기 어려운 말들이니까..
서초동에서의 첫 주말도 그랬고 여기서의 첫 주말도 그랬고 이번 주말도 이제부터 꼼짝하지 않고 내 집에서의 익숙해지기를 연습할 생각이다.
이 곳에서조차 이방인이지 않기 위해선 난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걸까.
언제쯤이면 내 몸에 붙은 이 낯섬이 그들에게 편안함으로 흡수될 수 있을까.
2007.09.08.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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