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들

史野 2007. 9. 15. 08:48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온실속에서 살았다는 말들을 했었고 나는 나같이 산 애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

 

사십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쉽게 말해 세파에 시달려본 적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반대에 부딪혀 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서야 어쩌면 인생에서 꼭 경험해봐야하는 것들을 해보는 기회를 얻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번 내 결정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지원을 해준 건 아니다. 심지어 전혀 예상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왜 내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 지에 대해 이해를 해줬다. 물건 하나 사는 일이 아니라 나머지 내 인생이 달린 중대결정을 하는 마당에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어제 자비네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 코가 석자이긴해도 도쿄로 돌아오는 자비네를 맞아주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 지 모른다. 신랑마저 자비네에게는 네가 직접 메일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자비네가 실망할 게 걱정이 된다는 말을 했을 정도.

 

너무 행복하다고, 기다린다고, 그런 주제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뒷통수를 치듯 떠나와 버린 내게 자비네는 충격적이고 너를 만날 생각에 무지 기뻤지만 네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 지 이해한다고 했다. 함께 살때 우리가 나눴던 말을 기억한다고,

 

그래도 너희부부가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기에 그리고 너희 둘의 문제라기보다 환경의 문제였다는 그게 무엇보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울 신랑은 자기들이 책임지고 잘 챙길테니 자기들을 믿으라고 그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누군가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기들이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자비네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절절히 전해져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져내렸다.

 

도쿄에 왔을 때 내가 없으면 놀랄까봐 마유미랑도 통화를 했다. 쉽지 않았을 결정인거 안다고 자기에게 오고싶을 때 언제라도 오라고, 아니 자기가 한국에 갈 수도 있으니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한국어가 쓰고 싶어서, 오래된 친구들이 그리워서 이 곳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 사실은 나를 지탱해주던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

 

심지어 트레이너마저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대신 운동은 열심히 한다고 약속해달라며 웃었더랬다.

 

하긴 내 트레이너야말로 이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본에서 신랑외에 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준 친구이기도 하니까..

 

친구아들이 다쳤다고 해서 어제 잠시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아들내미 줄려고 지구본을 사들고 갔는데 딱 필요한 거였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우리신랑에게는 미안하지만 자긴 내가 돌아와서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하던 친구.

 

네가 필요한 걸 직접 사라며 봉투며 떡이며 사과며 싸주는 걸 들고 돌아오는데 역시나 내가 해보고 살지 못했던 것들이라 행복했다.

 

이렇게 살고 싶었단 문자를 보냈더니 평생 타국을 떠돌까 걱정이었는데 진짜 다행이라는 친구..또 눈물이 났다. 유일하게 나랑 사이가 안 좋은 친구남편마저 내가 돌아왔다니 오라고해서 밥을 먹이라는둥 왜 연락이 안 오냐는 둥 챙기더라는 말을 듣고는 그래 어쨌든 마누라에게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건 아는 구나 싶어 웃음도 나오고 고맙기도 했다.

 

연락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떻게 칠팔년만에 예전 남자친구도 만났다. 그 놈이랑 잠시 애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중학교때부터 알던 친구다보니 우리가 공유한 친구들도 많지만 그 놈 친구들이나 내 친구들이나 다 서로 아는 사이니까 이런 저런 안부들도 나누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날더러 하나도 안 변했다던데 그 놈도 하나도 안 변해서는 울 신랑이 14년전에 자기에게 한 약속이 있다며 자기가 할 말있으니 한국에 놀러오라고 하라는데 웃음이 났다.  나한테 하라니까 그건 나랑은 아무상관이 없고 자기랑 울 신랑문제라나..ㅎㅎ

 

울 언니 너희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친구니 하며 반가와하던데 아빠 돌아가시던 해 그 놈을 처음 만났으니까 벌써 26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놈을 만나고 났더니 더 절실하게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다 너무 보고싶다. 그 놈을 만나면 혹 연락처를 알까 싶었던 친구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던데 도대체 어디에서 뭘하며 살고 있는 건지.

 

고등학교때 내가 링겔을 맞고 있으면 몇 시간이고 그 팔을 주물러주고 지하철표며 일일히 다 챙기던 친구. 직장에 다니며 그 힘든 졸업작품 모델을 서면서도 불평하나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겨울저녁 모델 춥다고 난로까지 가져다주던 지도교수님은 그때 도대체 이런 애랑 왜 친구를 하는 거냐고 하셨더랬는데..^^;;;

 

산다는 건 새삼스럽게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걸 절감하고 있다.

 

 

당신 제발 잘 버텨내줘. 나 여기와서 사실 참 좋은데 당신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난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거든. 당신이 불행해지면 나는 내 행복을 포기하고라도 당신에게 돌아가게 될지도 몰라.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도 힘들거잖아. 당신 나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당신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지내줘.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난데 그런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지만 당신도 누구보다 날 잘 알잖아....월요일이면 긴 출장을 떠날테고 또 돌아오면 하리도 올거니까 나 당신 걱정은 하지 않을거야..

 

 

 

2007.09.15.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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