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선교와 봉사.. 그 사이

史野 2007. 7. 23. 00:47

아까 글을 올리기까지 내 스스로의 갈등도 많았다.

 

난 우선 지금 비기독교인인데다 그들에게(피랍인들이라기보다 한국 개신교자체에) 화도 많이 나있다.

 

이야기했듯이 골수 기독교 혹인 개독교인적이 있었던 관계로 어떤 부분에서 기독교인이 욕을 먹고 또 그들은 어떤 면에서 타협하기 힘든 지 사실 너무 잘 안다는게 내 갈등이라면 갈등이다.

 

그렇게 위험하다고 말리는 곳에 신념에 불타 갔을 가능성이 너무나 컸던 인간이 나였기때문이다. 늘 신에게 묻고 울부짖고 의심하곤 했더라도 내겐 정말 그런 순간이, 부정할 수도 없지만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딱 그런 앞뒤 못가리던 순간이 있었더랬다.

 

지금이야 댓글에도 썼지만 설사 기부금이라도 한국기독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엔 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칠만큼 반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내 인생 전부를 걸려고 생각했던 만큼 그 믿음이 내게 소중했던 순간이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 기독교 교리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다. 물론 이것도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일단 한국교회가 해석하는 면으론 그렇다. 그러니 욕을 먹고 독선적이고 막무가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어쨌든 내가 기독교인들의 이번 행위를 변명하고 싶은 건 뭐 말하자면 서방질을 했더라도 전 서방에 대한 애뜻함일 수도 있고 내가 동양인으로서 서양인과 살며 서양인을 향해 동양인을 변호하고 싶은 심리, 혹은 한국인으로 일본에 살며 일본인을 변호하고 싶은 심리 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나와 다른 너에대해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우선 이번 가장 문제가 되었던 선교와 봉사의 차이.

 

사실 내 경험으론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잘 모르겠다.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갔고 남묘호렝게교를 믿었던 엄마때문에 그 교회도 잘 못나갔다. 그런 내게 당시 무슨 신앙심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학교를 미션스쿨, 그것도 아주 신앙심 좋으셨던 선생님들과 생활했던 지라 중1때부터 그런 종류의 봉사활동 혹은 선교활동에 참여했는데 우리가 한 일은 홀트아동복지를 찾아간다던지 군부대를 방문한다던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뇌성마비를 열명 넘게 돌보던 어느 목사님을 찾아가는 거라던지 그랬다.

 

중1이었던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느껴졌으므로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우리학교는 중3때 봉사활동이란 게 있었는데 학교차원에서 두 팀을 여름성경학교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열악한 교회에 몇 일간 파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섯 명이 한팀에 되어 두 교회를 나갔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경기도 어느 오지(?)의 교회 봉사에 갔었다.

 

물론 목적이야 선교였지만 그 후진 동네의 아이들에게 재밌는 프로그램을 선사하고 선물도 주고 몇 일 사랑도 주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그때 내가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더랬는데 우리가 이런다고 저 어린 애들이 얼마나 예수를 믿겠냐고 그저 이런 동네에서 한 번 아이들에게 주는 기분좋은 축제같은 거라고...

 

겨우 중3이었던 나는 그 말에 참 감동을 받았다. 그래 결국 기독교라는 건 사랑을 나누는 거니까하고 말이다..

 

지금 아프간에 간 사람들의 연령과 내 당시 중3 연령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긴 하겠지만 나는 또 나대로 당시 봉사자체를 떠나 학교대표로 그런곳에 참여하고 선생님 친구들과 묵는 다는 사실에 가슴떨렸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 중3주제에 성경학교 선생님이라니!!!

 

고등학교때야 정말 교회에 올인을 했기에 지금은 내가 교회안나가는 것에 눈물을 흘리는 내 엄마가 성경책을 마당으로 집어던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공부해야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도 나름 우리는 많은 일을 했다.

 

겨울이면 노점하시는 분들께 생강차를 끓여 돌리기도 하고 (그 생강차 내가 끓였고 예수믿으라고 해본 적 없다 그냥 힘드시죠 이 따뜻한 차 한 잔 드세요 하고 말이다) 중창단을 조직해 노인분들 병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나보다 바로 위 오빠들은 정기적으로 그런 시설들을 방문해서 궂은 일을 도맡기도 했었다. 정말 말도 안하고 그런 일을 했는데 나는 우연히 한 번 따라갔다가 무지 놀랬더랬다.

 

역시 이야기했듯이 운동권이 아니었던 내가 87년 선거 때 공정선거감시단으로 뛰었던 것도 교회때문이었다. 그리고 김민기의 금지곡이나나 상록수같은 노래를 고등학교때부터 줄줄히 부를 수 있었던 것도 교회때문이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교회다니며 연애만 한 건 아니고 ( 그래 우리때는 남녀공학이 흔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남녀가 같이 있으면서 연애를 안했겠냐만) 정말 진지하게 삶에 대해 미래에 대해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속에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더랬다.

 

사야의 오래된 편지 어쩌고에도 썼지만 고등학교때 내게 편지를 보냈다는 그 남자애가 예전 이야기 한 적도 있는 지금 모교회 목사가 된 놈인데 그때 벌써 신과의 관계 혹은 세속적 욕망사이에 고민하고 얼마나 심각하던지 그리고 자기 삶을 잘 꾸려가고 싶어 얼마나 애쓰던지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교회가 어떤지를 떠나서 그 사이엔 끊임없이 고민하고 뭔가 좀 잘 살아 볼려고 노력하는 인간들도 무지 많다는, 무모하고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곳으로 떠났던 젊은이들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한국교회가 부족한 건 그 사이에서 나태해진 인간들, 그리고 그게 권력이 되어 그 권력속에서 희희낙락하는 인간들 때문이지 신과의 관계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탓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다.

 

나같이 골수였던 인간이 결국 그런 교회가 싫어서 떠나놓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물론 좀 우습다. 거기다 교회에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내가 열나 성경읽고 고민하다가 당신은 결코 나를 구원할 신이 아니란 확신에서 기독교를 버린거지 사람들이 큰 이유는 아니니까

 

내가 기독교를 버린 건 간단히 말하자면 의심하지 말라는 말때문이다. 의심하지 않는 진리가 과연 가능한가. 의심을 거부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뭐 이런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명제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데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고뇌가 필요했다.

 

어쨌든 아까도 썼지만 나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아주 간절히 바라고 또 이번 기회로 한국교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길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종교문제에 있어서도 조금은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비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어쨌든 대승불교처럼 외부적 구원을 대표적 성격으로 갖고 있는 한국교회는 내가 너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토론과 고통이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란 것이다.

 

꼭 고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외부인에게 우습게만 들리는 불신지옥 혹은 심판의 날이 중세시대를 말그대로 어둡게 만들었던 것처럼 기독교인들에게도 어쨌든 늘 마지노선이 되어 괴롭힌다는 사실.

 

그걸 이해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이성 혹은 개념을 좀 탑재하라고 외치고 싶은 그들을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오지랖넓게도 이 글을 쓴다

 

아무래도 지금 기독교인들보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이야기하면 혹 누구하나에게건 마음에 닿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불특정다수를 향해 쓰는 글, 누구 하나 이해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건 아닌 것처럼 어쨌든 당시 나는 선교건 봉사건 그런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디 하나 씨가 떨어져 믿음을 키울 수 있을 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건 당시 나뿐 아니라 의외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남들이 욕하는 봉사라는 명목의 선교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백명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 한 명이라도 예수를 믿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 중 하나라도..란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경험이 있어서 아는 데 그들은 진심이다. 너무 간절히 믿어서 이 좋은 걸 어찌 못해서 나눠주고 싶은 인간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

 

 

젠장 나도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전 모님이 올린 글에도 맨하탄 거리에서까지 전도하는 한국 광신도 아줌마가 있길래(사실 미국인도 내가 아는 한 광신도 많다) 제발 내가 맨하탄가면 저런 사람 안봤으면 좋겠다는 댓글까지 달았더랬다.

 

어쨌든 내가 바라는 건 나와 다른 남들을 조금만 이해하려 노력하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것. 관용으로 유명한 유럽사회가 이렇게 된것도 오래 되지 않았고 우리도 멀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조금만 적었으면 좋겠다는 것.

 

사실 나야 이슬람이 기독교와 같은 줄기라는 걸 확신하고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처럼 무관용에 비타협적인 인간들도 없다는 것도 안다. (탈레반만 해도 그 오래된 불교문화재를 폭파시키고 그랬지 않냐고- 아 이럼 또 단군상을 파괴하거나 절에 불지르는 인간들도 당근 떠오른다)

 

그저 기독교랑 비교 태생적으로도 불공평한 위치를 타고난 이슬람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인들, 말했듯이 나라고 열받지 않는 거 아니다만 ( 우리집에만도 과반수이상이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조금만 왜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나 생각해보는 계기가 서로에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는 거지 열을 내고 그들을 욕하지 말아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다행히도 협상시간이 늘었다고 하고 자꾸 협상을 늘리는 건 어쨌든 우리 쪽에 유리하다는 거니까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도 죽는 거 두려운 인간이고 누구에게나 불시의 사고가 찾아올 수 있지만 누구의 잘못을 떠나 불의의 사고가 아닌 사형수처럼 죽음의 순간을 기다려야하는 그 사람들..

 

그들을 그냥 조금만 이해의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최악의 경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정신적으로 충분한 데미지를 겪었을 거다. 

 

이게 신의 뜻이건 아님 한국교회의 오만함과 무모함이 만든 일이건을 떠나 이번 일이 잘 해결되고 아까도 썼지만 특히 한국교회가 진지한 성찰을 해보는 기회, 과연 기독교의 본질 혹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07.07.22.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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