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物語

처절했던(?) 주말

史野 2007. 7. 8. 17:39

안그래도 요즘 나 무지 힘든데 마닐라에서 친구가 출장을 왔다

 

 

몇 번 여기 등장한 적이 있는 신랑의 옛 동료. 독일있을 때부터 가끔씩 만났으니까 나름 오래된 관계다. 17살 때 23살이었던 필리핀 여자랑 사랑에 빠져서 십년을 기다려 결혼했다는 로맨틱 가이이기도 하다.

 

런던과 도쿄지점을 거쳐 지금은 마닐라의 다른 회사에서 일한다. 얼마전에 승진도 했고 일도 재밌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넓은 집에 살았는데 지금은 그 두 배크기의 저택에 살고 있다며  꼭 한 번 더 들리란다.(이런 말할 때보면 무슨 옆 동네 이야기하듯히 한다)

 

그 마누라는 요즘 딸내미들이 다니는 독일어학교에서 불어랑 영어를 파트타임으로 가르치고 있다는데 자기 고향에 살면서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니 어찌나 부럽던지..

 

정식직원은 회의도 많고 싫다고 했다는데 하긴 남편이 돈도 잘 버는데 취미생활이상인 일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거기다 저 커플은 마누라의 모국어인 영어를 쓰고 산다. 신기하게도 아이들 독일어가 완벽하다는데도 아이들하고도 영어를 쓴단다.

 

안그래도 요즘 내 남자는 도쿄일을 지겨워하고 있는데 (그래서 브라질건도 나온거지만) 그런 친구가 또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러니까 아무리 불독커플이 온다고해도 말이 그렇다는거지 가능하면 브라질이 아니더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야 정상이다.

 

문제는 나는 그런 대 저택이 부럽기는 커녕 못사는 나라에 가서 사람써가며 떵떵거리고 사는 일은 못하겠다고 징징대고나 있으니 한심하기도 하다. 수영 좋아하는 신랑은 저녁에 퇴근해와서 집에 딸린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그 옆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잡지나 읽고 하는 생활이 제일 행복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친구가 자기네 회사에 지원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기도 했고 신랑 역시 진지하게 내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굶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말 필리핀같은 곳에 살 생각은 없노라고 했더랬다.

 

내가 브라질을 끔찍해 했던 건 낯설고 먼 이유도 있지만 지금 신랑의 보스인 보도말에 의하면 (걔가 홍콩 오기전에 브라질에서 일했다) 정원도 엄청 넓은 대궐같은 집에서 사람쓰며 살았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자기네 집이 70평쯤 되는 아파트인데 너무 좁아 답답하다고..

 

그런 식으로 재수없어 지는 거 순식간이다. 우리도 여기 아파트 너무 좁고 욕실이 하나라고 불평을 해댔으니까.

 

내가 좀 허영심도 있고 물질에 관심이 많은 인간이라면 떠도는 삶이 훨씬 편할텐데 그리고 신랑을 더 편하게 지원해 줄 수 있을텐데 그게 안되니 나도 괴롭다. 지금도 상해 아파트 월세때문에 너무 괴로와했던 기억, 신랑이 제발 좀 반대로 이런 비싼 아파트에도 살아보니 좋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냐고 절규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늘 그런건 아니다. 도쿄처럼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 워낙 비싼 곳에선 사실 그 보다 더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큰 느낌이 없다. 그저 나는 방한칸에 여서 일곱식구가 사는 나라에 가서 수백평되는 집에 살고 싶지 않을뿐이다.

 

도대체 우리 미래는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지 그 브라질건이 터진 이후론 답답하기 그지 없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난 잘 모르겠다.

 

이 웃기는 남자는 시어머니에게 브라질이야기했다고, 그럼 엄마가 우리가 독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생각할 거 아니냐고 화를 버럭내던데 당장 돌아갈 맘도 없으면서 언제까지 당신 엄마에게 희망을 줄 생각이냐고 나도 화를 막 냈다. 정말 마쿠스네가 이제나 저제나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나는 엄청 부담스럽고 미안하다.

 

 

 

어쨌든 어제는 이리스네 송별파티도 있던 날. 왠 난데없이 송별파티인가 했는데 안드레아스가 뮌헨본사에 좋은 자리를 얻었단다.

 

안그래도 외국생활이 처음인데다 영어도 잘 못해서 엄청 힘들어했던 이리스, 뮌헨으로 돌아간다니 좋아죽는다. 아 이것도 부러워.

 

 

이리스네가 이년 반이나 이 아파트에 살았는데 어제 처음 올라가본다는 신랑. 안그래도 전에 봤던 애들이 오늘은 네 남편이 왔니? -_-

 

그래 정말 너무 바빠서 모임엔 거의 참석을 못하고 나혼자 얼굴을 내밀던 시절이 있었구나..

 

 

대부분 BMW회사 직원이었는데 안드레아스 옆에 있는 남자애는 웃기게도 바로 우리 위층에 산단다. 아 맨날 시끄럽게 난리치는 애들이 너희였니? ㅎㅎ

 

 

왼쪽의 너무나 매력적인 여자가 그 마누라란다. 싱가폴출신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독일어는 못하더라.

 

 

오랫만에 그 체코출신이라는 애도 만나고 자긴 Audi에 다니는데 스파이로 참석했다는 재밌는 애, 사람들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갈 길이 멀어서 그러냐고 다들 놀리는데 열두시도 안되어 일어나서 내려왔다.

 

사실 점심때부터 포도주를 마신데다 친구랑 또 초밥집에서 밥먹으며 맥주도 꽤 마시고 파티에 가서 포도주까지 또 마셔댔더니 만땅 취하기도 한 상태. 둘 다 괴로와하며 뒤척이다가 신랑이 커피를 가져다 놓았길래 일어나 보니 오후 두시.

 

세상에 얼마만에 대낮까지 잠을 잔건지..

 

 

몸은 너무 힘들지만 우울할 땐 뭔가 맛있는 걸 해먹는 게 최고.

 

 

완성된 내맘대로 요리.

 

맛? 당근 최고지..ㅎㅎ

 

아직도 잠옷차림에 폭탄맞은 부엌도 뒤로하고 이렇게 앉아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는 시간 벌써 일요일 저녁.

 

 

아참 몇 일전에는 오랫만에 메밀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나가기만 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직접 장국을 만들어 먹고 싶다.

 

아니 말하자면 나름 의식이다. 먹고 싶어도 사먹을 수 없었던 곳에서 정성스럽게 준비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 의식.

 

힘들여 만들어놓으면 신랑이 찬 국수는 질색이라며 절대 입에 안대서 그것도 서러웠는데 일본에 온 후론 잘 먹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 초밥집에 걸어가는 길 우연히 만난 전면이 식물로 덮혔던 멋진 건물.

 

어쨌든 이렇게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주말이 가고 있다.

 

 

 

 

2007.07.08.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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