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미친 여행의 노래 2

史野 2007. 5. 29. 12:34

2년 전 저희부부의 미친 세계 한바퀴 여행 기억하시죠? ㅎㅎ

(모르시는 분들은 이 먼지 묻은 삶 카테고리에서 '미친 여행의 노래'를 참조해 주세요..^^)

 

그 여행을 올해도 하기로 했습니다.

 

신랑이 갑자기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더군요

 

제 생일때 일주일 정도 함께 한국에 나갈 예정이었답니다. 그런데 이 왠수땡이 남편이 갑자기 회사 상황상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다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아버지같이 생각하는 외삼촌 환갑 때도 같이 가기로 해놓고 이런 적이 있어서 저희 부부에겐 민감한 문제죠.

 

둘다 미리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지라 화를 버럭 낼려고 했는데 이 남자가 저를 닮아 가나 여우같이 너무 미안해 하면서 주말에 잠시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아주 불쌍하게 쳐다 보길래 화도 못냈습니다.

 

화를 내기는 커녕 아무리 가까와도 술도 많이 마셔야 하는데 주말에 다녀가긴 강행군이지 싶어 제가 도리어 미안해질 지경이었습니다..ㅜㅜ

 

제 한국에서의 생일파티는 말하자면 신랑이 제게 주는 생일선물이기도 하니까 미안해 하면 절대 안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그런 생각도 들더라지요..-_-

 

그런데 진짜 미안했는지 여름휴가 날짜를 당장 잡아 왔습니다. 요즘 회사 상황상 이주이상은 힘들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7월말부터 삼주를 냈답니다..^^

 

그래 주말내내 머리를 맞대고 어디를 가야할까를 의논했지요.

 

저야 당근 중국!!! 제 중국어가 언제까지 쓸모있을 지도 모르고 중국이야 워낙 넓은데다 다양하니까 저희가 못 가 본 윈난이나 티벳이나 등등 동양에 살 때 삼주돌면 너무 좋겠다고 했지요

 

작년 경험으로는 아무리 중국변방이라도 둘이 돌아다니는 데 문제가 없겠더라구요

 

신랑은 반대로 저희가 동양에 살때 고향방문티켓을 이용해서 세계를 또 한 바퀴 돌면 좋겠다더군요.

 

이 남자는 비행기를 워낙 좋아해서 꿈이 새로 생긴 싱가폴부터 뉴욕까지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루트를 가보는 거랍니다. 도쿄에서 싱가폴까지 일곱 시간 남짓 싱가폴에서 뉴욕까지 열일곱 시간 남짓인가? 제가 아무리'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 할 수 있어' 외치는 주책 마누라라도 총 맞았습니까? 그 짓은 못하겠더라구요..ㅜㅜ

 

그래 겁을 왕창 먹고는 도대체 그럼 어떤 루트를 원하냐고 했더니 도쿄-싱가폴-뮌스터(고향방문)-뉴욕-샌프란시스코(이건 제가 넣은 겁니다..ㅎㅎ)-하와이-도쿄.

 

싱가폴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새로운 형태의 뭔가가 있다나요 뭐라나요.

 

가만히 보니 오지도 없는데다 삼주간 해 볼만한 코스이기도 하고 신랑 말대로 독일로 돌아가면 이런 미친(!) 여행가능성은 전혀 없기도 하니까 그냥 울며겨자먹기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지난 번 비행시간만 육십시간이 넘었습니다..ㅜㅜ)

 

그래 열심히 일한 당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라 란 심정이었죠..ㅎㅎ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국비자를 받아야겠단 생각만 했는데 정말 이젠 지난 번 처럼 꾸물거리다 신랑 열받게 하지 말고 빨리 받아야 겠습니다.

 

다음달에 한국에 가고 또 다녀 와선 호텔 예약하고 어쩌고 하다보면 여행 다녀와야 하고 그럼 또 구월 말에는 그 기생충 전문가 친구가 다녀 갈거고.

 

아 그 다음에 오실 예정이던 시어머니는 무릎수술을 받으실 지도 몰라서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러게 봄에 다녀가시라니까..ㅜㅜ

 

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랑은 크리스마스에는 독일에 가야 한다고 하겠지요

 

이 나이에는 매번 독일에 안가도 된다는 데도 이 남자는 우리는 아이가 없으니까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건 당연하다고 우깁니다

 

정말 어디가서 애를 사오던 지 훔쳐오던 지 해야지 이거야 원..ㅎㅎ(제가 정치가라면 이 발언이 엄청 문제 되겠죠? ^^;;;)

 

어쨌든 아직 유월도 안되었는데 휴가 날짜가 정해졌다니 갑자기 한 해가 벌써 다 가는 기분입니다.

 

신랑은 제가 동의 하자마자 당장 웹사이트에 들어가 저 여정이랑 반대 여정 그러니까 도쿄-하와이-샌프란시스코-뉴욕-독일-싱가폴-도쿄까지 양쪽을 다 대충 일정을 뽑아 제 노트북위에 놓고 사라졌더군요.

 

이러니 이 남자는 절대 제가 왜 미국비자를 받으러 가지 않는 지 이해 못합니다. (자기야 난 이번에도 중국갈려고 그랬거든? ㅎㅎ)

 

신랑표현대로 다음 달에 함께 일주일 한국에 갈 수 없다는 건 나쁜 소식이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그래서 또 삼주 휴가를 낼 수 있었으니 좋은 소식이네요.

 

저희 지금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막상 여정을 짜다보면 변동사항도 생기겠지만 어쨌든 다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7.05.29. Tokyo에서..사야

 

 

 

 

사진은 지난 여행중 상파울로에서 토론토가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뉴욕입니다..^^

 

그리고 제가 드디어 어제 도쿄와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일본영화를 봤습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신작 비잔(眉山)이요.

 

극장에서 원어감상이 가능한 다섯번째 언어라니 제 역사에 남을 아주 감동적인 날이었습니다.

 

어제는 흥분해서 신랑에게 오늘은 또 트레이너에게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마구 난리를 쳤죠..ㅎㅎ

 

도쿠시마 사투리가 나와 이해 못하는 말들도 많고 잠시 절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눈물도 흘려가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미혼모였던 엄마가 죽어가며 딸과 화해하는 이야기인데 아주 감동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잔잔한게 마음에 와 닿는 영화예요. 거기다 어찌나 감정처리를 쿨하게 하는 지 더 눈물이 나던 몇 장면들..

 

앞으로는 외국영화같은 걸 일본자막으로도 볼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하.하.하

 

 

2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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