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박지원-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史野 2007. 5. 4. 00:52

삐딱하게 읽기 

 

2006-04-25 08:53

 

내가 한국에 있을때만 해도 연암은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보니 많이 알려진 인물인데다 그 두꺼운 열하일기도 마구(?) 팔리는 상황이란 걸 알았다.

 

간혹 몇 편의 산문으로만 연암을 접했던 나는 단지 시류에 편승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찾아 읽었다는 게 맞겠다. 아니 더 솔직히는 그의 글을 다 읽어볼 생각은 없고 편지라는 가벼운 자료에 기대 유명한 그를 조금이나마 아는 척 하려고 했다고 할까?

 

역자도 언급하듯이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이 책은 주로 연암이 그의 큰 아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환갑정도인 노인네가 어찌나 관여하는게 많은 지 웃음이 나올 정도다.

 

물론 혹자는 그걸 그의 자상한 성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상대를 믿지 않는 모든 걸 직접 관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면으로 보였다.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상황이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거기다 요즘 이태백이 늘어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세태에 대한 걱정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만 보면 연암의 아들들이야말로 아무 경제적 능력이 없이 단지 과거공부만 하면서 온전히 경제력을 그 늙은 아비에게 기대고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말이다. 양반이라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닌 연암의 집안은 늙은 아비가 지병에도 불구하고 계속 현장에서 뛰면서 집안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또 재밌었던 건 장을 담그는 문제에서 작은 누이랑 상의를 하라는 걸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조선시대의 출가외인 문제가 그렇게 심각했던 건 아니었나보다.

 

홍대용이 을병연행록을 한글로 기록했던 걸 생각해보면 연암이 한글을 쓸 수 없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책 내용말고 역자의 해제에서 등장하는 박영철이라는 사람도 내 관심을 끄는데 골수친일파였다는 그는 연암집을 간행하고 재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서화를 대대적으로 수집하여 나중에 경성제국대학에 기증을 하였다는 대목인데 그가 친일파였던 걸 일단 배제하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기본자료가 없고 또 당시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들이 셀 수 없는 상황으로 미루어 그의 친일적 재력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면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다.

 

어쨌든 조선후기말 상황이며 일제강점기시대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내 얇팍학 지식은 이런 책을 하나 읽는 것도 의문이 마구 밀려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장을 담가 보내고 보낸 것이 맛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채근하는 연암의 편지를 따라가며 상상해보는 그 시대의 인간들은 나와 크게 다른게 없다는 것에서 마음 따뜻해지는 독서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