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중인 슬픈 역사
2006-03-26
정신대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을 대충 알고는 한국을 떠났다. 그러다 얼마전부터, 아마 이승연 사진집 문제부터가 아닌가 하는데 한국에서 많이 이야기 되어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수요집회등에 대해 듣게 되었다. 다른 책에서 언급되는 것말고 그래 내가 직접 그들의 육성을 듣고 싶단 마음으로 주문한 이 책을 읽었다.
전반적으로 당사자들의 독백식으로 되어 있고 사투리등, 깔끔하게 문장이 다듬어진 책은 아니라서 읽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도 넘는 일들을 기억하는 그들에게서 묻어나던 그 끔찍한 삶의 부분, 도려낼 수도 없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부분은 절절히 와 닿았다.
나도 여자로서 그리고 남자를 아는 여자로서 거기다 피하기는 커녕 밝힌다는 이 나이가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피곤하면 귀찮고 싫은 법인데 아무것도 모르던 그 어린 나이에 밀려오는 남자들을 상대해야했던 그때 얼마나 암담하고 공포스럽고 저주스러웠을까는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거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그런건 물론 아닐지라도 저렇게 찾아가서 그 아픈 기억을 들춰낼 필요가 어떤 명분으로도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일본정부가 사적조직었다고 발뺌을 하고 있듯이 본인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조직자체는 사창가식으로 운영이 된 듯 보인다.
물론 저 상황에서 돈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조금은, 아니 많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더라도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더 절실해 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건 비겁하다고 해도 좋지만 정대협이나 다른 쪽에 맡기기로 한다.
내 생각을 저 중심에서 흐려놓는 것은 종군위안부문제가 꼭 식민지문제만이 아니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김활란 같은 사람이 배울거 다 배우고 열심히 황국을 위해 연설을 하고 있을때 소외받고 못 살던 계층의 여성들은 저런 몫의 삶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는 것.
또 위안부문제는 당시뿐 아니라 한국전쟁때 한국군도 운영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숫자가 버젓이 살아 있을 거라는 것.
또 미군기지옆에 있었던 여성들에게는 심지어 그대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거라고 선동했다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종군위안부문제와 함께 사회이슈화해야할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뜨거운 감자였던(그래 뭐하나 해결된게 없는 거 같은데 어느 순간 보니 뜨거운 감자가 이젠 아니더라) 최현희문제만해도 그렇다. 과연 그 상대가 여기자가 아니라 그 식당에서 일하는 여급이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졌을까. 그 만약 속의 그녀는 저런 더러운 놈 하고 속으로 욕을 하곤 차마 그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털어넣었을 거라면 내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건가.
결국 늘 피해의 대상이 되는 건 모든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우리 모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수도 없는 세월을 지배해 온 그 생각. 남자들의 욕구는 조절이 안된다는 생각도 하나의 죄몫이라면 죄몫이다. 조절되지 못하는 본성이란 것도 사회분위기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수 많은 독일사람들은 룸살롱이나 노래방에가서 젊은 여자 엉덩이 한 번 안 만져보고도 건강하게 아주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그 책의 그분들께로 돌아가 숨기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임에도 위안부등록을 한데는 경제적 이유가 큰 이유를 차지했다. 그래서 얼마전에 읽었던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에 나오듯이 일본이 정부차원은 아니더라도 민간단체를 만들어 경제적 보상을 해주려고 했고 (두 분인가가 받았고) 총리가 편지까지 썼었다는 데 그걸 그 분들이 거부하게 압력을 넣었다는 사람들을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니 사실은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 건데 읽고 나서는 더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그 돈을 받은 분들을 빼고 한국정부에서 돈을 해주기도 했다는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둘 다 받게 해주면 안되는 거였을까. 너무나 가난해서 쌀밥을 준다는데 어떻게 안 따라갔겠냐고(물론 거기서 하는 일이 뭔지는 전혀 몰랐다) 하신 어느 분의 말이 귀에 아직도 남는다.
그 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편한 인생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대의라는 건 아니 자존심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사실 우리처럼 먹고 살게 충분한, 위안부로 끌려가기 보단 앉아서 서울에 땐스홀을 허하라고 외치던 그런 우리 먹물들의 자기만족은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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