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것들
2006-03-17
이 책은 아시다시피 인조가 강화도에 피신해있을때 누군가 적은 일지이다.
작자미상이긴 하나 척화파의 우두머리를 존경한다는 점으로 당시 강화도에 함께 있었던 척화파중 하나로 여겨진단다.
그러니 글은 당연히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단 척화파의 입장에서 한탄하는 식의 사건보고서라 할 수 있다.
다른 상황이야 내가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니 그냥 그렇게 읽을 수가 있고 오랑캐로 알던 나라에 숙이고 들어가야할 그 상황이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대신들에게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단식을 하며 목숨을 걸고 화친을 반대하기도 하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기도 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특히
'무릎을 꿇고 사느니 바른 것을 지키고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 '등 자못 절개와 충성이 있는 이 사람의 주장을 따라가며 쬐금 감동도 되었는데 이 사람의 충성은 우리 임금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부자의 도리와 군신의 은혜가 있는 명나라에 대한 충성이었던 것이라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
하늘엔 해가 둘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니 물론 꼭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당시 왕이 반정으로 광해군을 내쫓고 정권을 차지한 인조가 아니던가. 마음에 안드는 조선임금은 갈아 치워도 되지만 군신의 예를 갖춘 명나라만은 배반을 하면 안된다고 결국 목숨까지 걸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은 역사에서 증명하듯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 안되고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거기다 청나라황제에게 꿇어 앉았다고 난리라 엄청 자존심이 상하는 대단한 일인가 했더니만 원래 중국사신을 맞는 예에서 중국사신이 와서 칙서를 낭독하면 왕은 꿇어앉아(!) 들었다는데 충격받았다. 명나라는 황제가 온 것도 아니고 사신이 칙서만 와서 낭독해도 왕이 꿇어앉았는데 그런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듯 하다.
도대체 그 맹목적인 심지어 신앙의 대상까지 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이었을까. 왜 조선의 사대부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세상이 있을 거란 걸 의심해 보지 않았던 걸까. 21세기에도 성경의 구절을 단 하나도 의심하지 않는 한국의 기독교와 뭔가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바일까.
나아가 삼일절에도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면 이 것도 오바일까 그 전통은 그들의 후손들에 의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건 강대국에 충성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작은 나라사람들의 피속에 흐르는 유전인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닐 것 같은 사람들도 미국만 갔다하면 조건반사처럼 좋은 말들을 잽싸게 쏟아 놓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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