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박유하-화해를 위해서

史野 2007. 5. 4. 00:25

미세한 균열을 위하여.

 

2006-03-07 17:19

 

간혹 일본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거나 열차사고가 있다거나 혹은 후지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 그 내재된 폭력성에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한다

 

도대체 남의 불행에 그렇게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인간속에 내재된 분노는 얼마나 이성을 마비시키는지 그들이 성인이라는 건 믿고 싶지 않지만 미성년일거란 추측은 나를 더 암담하게 한다.

 

같은 인간을 향해 그 정도의 분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그것도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어떤 과거의 일로 인해 어느 나라가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려야 한다고 믿기까지 한다는 건 결국 그 자신을 좀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방된 지 육십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국내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친일세력에 대한 피해의식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산다.

 

마흔이어서 식민지도 한국전쟁도 겪지 않았고 대충은 대한민국이 살아날때 젊음을 보냈던 나도 집을 구하러 이 곳에 왔을때 엄청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마침 그 이름도 대단한 제국(!)호텔이었고 앞 히비야공원 너머엔 일본관청들이 줄줄히 들어서 있었다. 아파트 몇 개를 보고 난 후 남는 시간에 그 사이를 걸어 다녔는데 그때 건물마다 걸려있던 일장기는 그 경험하지도 못했던 식민지의 기억을 참 상세히도 이끌어 냈더랬다.

 

도대체 일본이란 나라는 나란 인간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 하나도 없더라는 절망감.

 

이년을 살고 난 이후에야 나름 집중적으로 일본에 대해 읽으면서 이 나라와 내 나라가 얼마나 오랜 세월 관계가 있던 나라인가와 내가 얼마나 이 나라나 내 나라에 대해 무지했던 가에 대한 뼈아픈 자각.

 

그러니 책읽기는 일본조선 심지어 동아시아읽기까지 중구난방이 되어버리고 그 방대한 읽을 거리에 난 조금 지쳐 있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고 내면화 해야하는 문제에 지쳤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러다 만난 이 책은 사막속의 오아시스같이 청량하다. 저자는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그리고 독도, 이 네 가지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현안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흥분하지 않으면서 조근 조근 설명한다.

 

어디에 무엇이 문제인 지를, 한국입장도 아니고 일본입장도 아닌그저 한 성숙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있다.

 

역사는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역사가 지배자의 입장에 따라 어떻게 이용되는 지를 , 그 역사속의 개인은 어떻게 처참하게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지를,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쉽게 믿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허상이었는 지를..

 

또 왜 무조건 일본에 분노하는 것이 부당한 지를 왜 교과서 문제가 생겼는 지를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가 책임져야하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야스쿠니 참배를 하는 일본수상과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독도가 누구의 땅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참을성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저 일본이 싫고 우리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이라면, 그들과 우리사이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은 이라면 혹 저자의 시선이 불편하거나 쉽게 동의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내가 배웠던 혹은 읽고 있는 뭔가에 대해 극도로 회의하고 있는 지금의 내 시점에서 보면 저자가 인용하는 구절들을 내가 다 읽어보지 못 했으니 과연 그 것이 다 사실일까하는 의문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내가 저자의 서문에서 이 리뷰제목을 따왔듯이 다르게 생각하는 작은 균열이다. 어떤 대상을 자기검열없이 비판하는 건 쉽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부메랑이 되어 비판하는 당사자에게 돌아올 뿐이다.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열을 내거나 분노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이 더 많이 읽히고 토론되고 결국 상대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가만히 입다물고 있어도 괜찮았을텐데 이 외로운 길을 택한 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다

 

여기서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저자의 목소리에 힘입어 나는 다시 일본관련 책을 집어 든다.

책 제목처럼 화해까진 아직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상대에 대한 편견과 나와 다른 집단을 향한 내 안의 폭력성과 책임전가를 일삼는 비겁함에서 자유로와 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