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을 넘어서
2006-01-30
왜놈들은 팬티도 안 입고 사는 야만인인데다 칼이나 차고 할복이나 하고 우리가 고급문화를 전수해 주었더니 어찌 근대화를 빨리 이룩해서는 우리를 식민지나 만든 근본 없는 그런 놈들이라고 배웠다.
그래서였나 96년 처음 도쿄 교토 히로시마를 도는 여행을 왔을때도 어떻게 흠잡을 곳이 없을까만 보고 돌아 다녔더랬다.
심지어 재건축된 것들도 나중에 돈이 많이 생기니 거창하게 지어놓은 사기일거라고 까지도 생각했었다. 그렇게 내가 받은 교육의 힘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최소한 내게 행사하고 있었다.
만나는 유럽사람들이 일본을 대단하다고 생각할때도 더 나아가 일본이야 한국보다는 늘 강대국이었단 말을 들었을때도 우리가 문화를 전파했노라고 어쭙잖이 줏어들은 내용을 열거하며 열을 내곤 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이 곳 동경에 와서 겨우 이년을 살면서 그게 아닐거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13세기 가마쿠라시대에 세워졌다는 청동불을 보러 갔을때 저 정도 불을 청동으로 만들 재력이라면 대단했을텐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지만 내가 일본 역사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
동북아시아 지도를 보면서도 나카사키쪽이랑 중국이 얼마나 가까운가에 놀라며 섬나라로 해상교통이 발달한 일본이 직접적으로 중국과 교류하지 않고 우리를 통해서 뭔가 받았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일본에 대해 겨우 책 몇 권 읽은 주제지만 이제 어쨌든 그건 아니란 확신을 갖게 되어 버렸다.
도쿠가와 시대 즉 에도시대의 철학사상을 훓어보는 이 얇은 책은 한마디로 너무나 훌륭하고 내가 그 어쭙잖은 확신을 갖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메이지시대사상을 연구한 학자임에도 도쿠가와시대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먼 얘기에 불과했었다는데 이 연구를 통해 도쿠가와 사상의 이해없이는 근대 일본의 이해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저자.
주자학 양명학 고학 국학(일본국학)등 당시 그 다양했던 사상은 놀라울 정도다. (물론 나는 이차문헌을 통해서 읽을 뿐이니 이런 것들조차 다 조작이고 왜곡이다 한다면 할 말은 없다. )
이 여러 사상가들이 학식을 갖춘 고급 사무라이가문출신이 아니라 대부분 상인계급인 죠닌이나 혹 농민 떠도는 낭인들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특히 고학파의 대가 이토 진사이같은 경우 1627년에 교토 재목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데 가족들이 그가 원하는 학문을 하는 대신 의사가 되기를 강력히 권유했다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자녀에게 의사가 되라고 권고하는 거랑 사백년전의 일본이 거의 같았다는 데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부모의 강력한 권유로 자기 큰 오빠는 물리를 하고 싶었는데 의대를, 작은 오빠는 동양철학을 하고 싶어했는데 한의대를 갔고 자기만 뜻을 거역했노라 쓸쓸히 말하던 지인이 생각난다.
이 책을 읽으며 주자학만이 유일한 학문이고 양명학은 연구한다는 사실조차 숨기거나 후손들이 연구서를 불태우기까지 했다는 당시 조선의 현실이 생각난건 어쩌면 당연하다.
명조만이 정통이란 생각으로 청왕조가 들어선지 백년이 넘어가도 겉으론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 무시하기만 했다는 우리조상들의 그 경직성과 어떤 학문이던 나름 연구하고 강론할 수 있었던 이들과의 차이는 어디서 생긴걸까.
노리나가라는 일본국학자는 지난번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도 이해가 안간다고 언급했듯 일본고사기를 연구한 대단한 학자로 일본신화가 세계에 다 통한다는 이론, 결국 나중 '팔광일우'라는 발상의 원형이 되는 주장을 했다는데, 저자 료엔은 그가 비교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가졌던 일본에 대한 자부심과
어떤 사회의 우열을 떠나 이렇게 다양한 사고가 받아들여지던 것과 조선시대의 장유라는 학자가 말했다는 '우리나라는 지독할 정도로 한가지에만 얽매여있다'던 그 상황을 만든 그 근본부터 달랐던 토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선머슴이 사람잡는다고 개뿔도 모르는 주제에 그 차이나 원인을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고 능력은 더더군다나 없다. 어찌 남의 의견을 내 것인양 얘기하고 싶어도 그런 문제들에 잘난척 할 답이 적힌 책들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교육의 힘은 아직도 무서워서 이것 저것 다 그만두고 당장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제끼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나이가 되어 이런 것을 깨닫거나 의심을 품게 된 내 근본이 화가나고 억울하다. 누군가 좀 시원하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내 주변엔 그럴만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답답하다. 내가 일본에 오자마자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었을때, 당시 답답함의 폭은 지금과 비교해 훨씬 작았더라도 역시 같은 맥락의 답답함이었다.
이 모든 걸 내가 알아서 배우고 판단해야 한다니, 내가 배운것들을 전면적으로 다시 의심해야 한다면, 이 한 문제가 그럴진대 도대체 내가 모든 것의 판단근거로 삼고 있는 내 지적능력을 과연 나는 신뢰해도 되는 건가하는 의문마저 든다'
불혹이란 나이에 맞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읽고 음악도 듣고 내 나름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내가 불혹에 맞는 인간인지 아닌지를 떠나 불혹이란 말 자체가 너무도 우습게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할 문제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가기도 암담하고 안 가기는 더 암담한 길이 내 앞에 열린 이 현실이, 당혹스럽고 나는 정말 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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