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기록
2006-02-01
이 너무도 자주 들어봤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여러 판본이 있고 사실 여부를 증명하기도 어려운 책이라는데 어쨌든 기회가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에도시대를 읽고 도쿠가와사상을 읽으며 조금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느 외국인 본 당시 상황으로 회복하고 싶었던게 이 책을 읽은 이유다. 물론 잘못짚어서 자존심만 더 상했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여담으로 얘기하자면 이게 내가 읽을 수 있는 분량 이외의 책들을 주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뭔가 연관해서 읽고 싶거나 생각할때 당장 구입할 수 없는 처지이니 비축이 필요하다.
1653년 자카르타를 출발해 타이완을 거쳐 나카사키를 가려던 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소속 배가 제주에 도착한건 단순히 악천후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죽고 36명이 당시 제주에 도착했다는데 한번 들어온 외국인은 이 나라밖으로 못 나간다는 당시 효종임금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조선땅에 억류된다. 아무리 몇 백년전이라고 해도 전쟁포로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난파되어 왔는데 노예처럼 억압되어 있어야만 했다니 낯선 이교도의 땅에서 구걸까지 해가며 고국을 그리워해야 했던 젊은이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더라. 13년뒤엔 16명이 되었다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도 넘게 살았음에도 결국 탈출할 생각을 한 그들의 의지도 의지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는가 싶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하멜동료들도 흥미롭지만 가장 흥미로왔던건 여기서 언급되는 벨테브레라는 역시 억류되어 거의 조선인이 된
탈출한 8명외에 남은 사람들은 결국 일본의 중재로 조선인과 결혼한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 한사람은
하멜표류기는 하멜이 조선을 기억하며 남긴 기록이 아니라 표류된 동안의 월급을 청구하기위한 보고서였다는데(사실 난 그동안 월급을 청구할 생각을 한 그 발상이 신기하다) 그가 나가사키에서 머물던 일년간 썼을 확율이 높다. 그래서일까 신빙성이 좀 없는데 늘 감시를 받고 서울과 남도에 나눠 살았던 그가 이리 자세하게 조선의 크기며 풍습을 논한다는게 믿겨지지 않고 누누히 언급되듯이 노역에 시달리거나 구걸에 바빴다며 그런 자료들을 수집할 시간이 있었을까.
이 나라에서는 구걸하는게 수치가 아니고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더 나아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서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로 여긴다는 적나라한 분석(?)은 차라리 조금 더 신빙성이 있다. 몇 년 기근으로 사회가 불안했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실제로 부딪기는 상황에서 체험한 일일 가능성이 크고 구걸하러 다니거나 하는 이방인으로, 또한 더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그들의 시선으로는 단점이 많이 보였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재밌는 건 '승려들이 아주 오랜 옛날엔 모든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로 말했지만 하늘로 올라가려고 탑을 세웠기 때문에 전 세계가 변했다고 믿고 있다' 라는 언급인데 이건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야기가 아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흔적들을 발견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 보고서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기까지 한, 은자의 나라 조선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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