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번역과 일본의 근대

史野 2007. 5. 4. 00:07

무식해서 미안하다 

 

2006-01-24 14:36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등이 전부 녹아있는 어떤 표현들이 다른 나라말로 옮겨질때 그 사회에 혹은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기때문이었다.

 

그리고 외국어를 그냥 차용했을때와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을 했을때의 차이랄까 그런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예를 들어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는 물체가 내게 컴퓨터일때는 그냥 어떤 기계로서 무감각하게 다가오는 반면(나야 영어의 어원이나 그런 걸 모르니까) 중국어로 띠엔나오 電腦 하면 뇌라는 말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합해져 훨씬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궁금증같은 거 말이다.

 

또한 어떤 단어를 번역하고 어떤 단어를 번역하지 않는 그 언어권력적인 미묘함에도 관심이 많은데 포도주라는 말이 당당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와인이라는 말을 굳이 쓰면서 뭔가 더 세련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던지 참기름은 기름이며 올리브기름은 올리브오일이 되는 거 같은 사회적 심리같은 것도 포함된다

 

예전 러시아귀족들이 프랑스어를 쓰고 자신들을 타인과 구별했던 것처럼, 아님 요즘 우리나라 학자들이 프랑스용어들을 마구잡이로 구사하며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구별지어 무리를 이루는 것처럼 혹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훈민정음을 창조해 놓고도 중국고전을 번역할 생각은 커녕 사용도 하지 않았던 것같은 그런 문제들이 사설이 길었지만 내가 대강 궁금해 하는 것들이다.

 

거기다 제목만으로도 봐도 번역과 일본의 근대와의 관련이라니 어찌 구미가 동하지 않았겠냐 말이다.

문제는 이 책이 이와나미출판사에서 '일본근대사상대계'라는 방대한 시리즈중 한 권인 '번역의 사상'의 출판과 관계된 대담집이다.

 

물론 알라딘의 책소개에 이런 말은 없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생각은 이 대담집은 저 책의 뒷 부록으로 편찬되었어야 맞지 않았을까이고 최소한 책소개란에라도 언급되었어야 하지않을까 한다.

 

'일본근대화 과정에서 두 지성이 엮어내는 번역의 사상사.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번역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 '

 

이런 대단한 주제를 가지고 1914년생인 일본학계의 천황이라고도 불린다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역시 1919생인 가토 슈이치라는 석학의 대담인지 문답인지를 내가 따라가는 건 아무리 역주가 자세하고 성의있다고해도 너무 벅차다.

 

그래도 요즘 나름 일본에 관계된 책들을 줄줄히 읽느라 들어본 이름많고 대충이긴해도 그 상황파악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모양이니 솔직히 약이 오를 지경이다. 아무리 본인이 무식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읽는 내내 너 무식한거 이제 알았냐고 약을 바싹 바싹 올리는 책을 준비없이 만난다는건 승질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길게 중언부언하는 이유는 이 얇은 책을 읽고난 후  총체적 그림이 전혀 파악되지 않기때문이다. 아마 관계서적을 한 오십권쯤 읽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나름 가늠해볼 뿐이다. 그렇다 무식해서 미안하다.

 

번역의 왕국이라고도 불려지는 일본이 근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동양의 한자문화권에는 없고 또한 사람들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단어들이 어떤 과정과 배경으로 지금의 단어로 정착되었는지를 두 석학들이 자기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아 하면 어하는 식으로 묻고 대답하고 훓어보는 과정은 어쨌든 흥미롭다.

 

오규 소라이라는 17-8세기에 걸친 학자가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외국어로 쓰여있는 것을 번역해서 읽는 것뿐이라고 했다는, 지금으로선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자각에 열광하는 것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건 물론 내 생각이긴 해도 당시 그가 그렇게 생각한데는 일본에 한자나 중국어가 아닌 외국어의 유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때문이다.

 

실제로 메이지유신을 출발로 일본의 번역을 통한 문화적자립과 근대화가 이루어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한자문화외에도 일본이 서양과 접촉한 흔적은 너무 많다. 가토 슈이치도 후기에 언급하지만 도쿠가와 시대의 유학자 문화전체가 번역문화였다고 하고 16세기 벌써 포르투갈어로 일본어사전이 쓰여졌고 도쿠가와 막부시대만 해도 네덜란드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지 않은가. 18세기말에 벌써 네덜란드해부학책을 번역해 출판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물론 중국아편전쟁을 계기로 그 대단한 중국도 먹힌다는 위기의식에 놀란 일본의 발빠른 대응도 대단한데 여기에서도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달라 유리했던 점은 정부유학생이 아닌 각 번이 학생들을 해외로 보낼 수 있었다는 거다.  

 

우리와 비교 일단 일본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 토양자체가 달랐다는 걸 새삼 인정하게 되었다는게 이 책을 읽은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문화의 일방통행은 국제사회의 고립을 의미한다고,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닌 문화적 쌍방통행을 꿈꾸는(?)는 걸로 슈이치는 저자후기를 맺고 있는데 도쿄거리에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넘쳐나고 선진국 어느 서점에서나 하루키의 신간까지 구입할 수 있는 지금 그의 꿈은 이루어진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것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