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도쿄이야기

史野 2007. 5. 4. 00:02

도쿄찬가

 

2006-01-23 12:55

 

많은 도시에서 살아보았고 더 많은 도시를 다녀보았다. 물론 여행자로 한 도시에 머무는 것과 그 도시에 주소를 등록하고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과는 그 느낌이 천지차이다.

 

각 도시마다 다른 역사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 때론 성장하고 쇠퇴하며 나름의 향기를 품어대는 대도시를 나는 좋아한다.

 

이건 내가 대도시에서 자라나고 대도시만 떠돌며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대도시의 활기와 익명성과 끝도없는 그 깊이가 나는 좋다.

 

특히 내가 살았던 도시중 이 메트로폴리탄 도쿄는 그 중 최고다. 어떤 도시에서도 이 만큼 흥미롭고 자유롭고 편안함을 맛보지 못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집도 작아지고 물가는 비싸고 사람들도 그리 친절하지 않은 이 곳이(그렇다 놀랍겠지만 이 곳은 우리가 살았던 다른 동양의 도시보다 덜 친절하다) 뭐가 그리 좋냐는데 난 이 곳의 그 보통스러움이 좋다.

 

사람들의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세련됨 그리고 신구의 절묘한 조화, 그저 내 할 일 하고 내 갈 길 가면 된다는 그 무관심이 좋다.

 

예전에 내가 부정적으로 배웠던 이 들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표정?) 라는 이중적 태도도 나는 편하다. 내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이상 나는 남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 지까지는 관심없다. 그냥 내가 스치거나 잠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적당한 예의를 지켜주면 그걸로 만족이다.

 

많이 돌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도 도쿄의 구석 구석을 꽤 헤집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이들의 저력이랄까 뿌리깊은 나름의 문화할까 이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일었더랬다.

 

거기다 나는 시내한복판에 사는지라 팽창하기전의 도쿄이야기는 내가 걸어다녔던 그 거리사이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미국인이 쓴 이 책은 그런 내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할 뿐더러 더 구석 구석 헤집고 다녀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게 하는 그런 책이다.

 

에도미술리뷰를 쓰며 언급했지만 도쿠가와시대를 열며 처음으로 나라의 중심지가 된 이 도시는 막부의 주거지와 그 후 초닌문화를 중심으로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되는데 그 초닌문화의 중심지였다는 니혼바시를 포함하는 시타마치지역과 무사와 귀족계급이 살았다는 야마노테지역으로 양분된다.

 

지금도 알력은 있다지만 그 오랜시간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에서 밀려나 있던 에도지역사람들이 간사이지방(교토 오사카지역등)에 느끼던 열등감을 극복해내고 만들어낸 그들의 문화.

 

메이지시대(1868)에 들어와 도쿄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예전의 에도가 어떻게 도쿄로 변해가는 지, 에도토박이들이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존심을 가지고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일본인도 아닌 이 미국인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너무도 자세하게 오목조목 서술하고 있다.

 

점차 그 세력을 잃어가는 시타마치에 대한 문인들의 애착 어린 글들이 이 곳 저 곳 인용되는데 에도가 죽었다는 그들의 한탄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다.

 

서양근대에 대한 선망과 돈과 권력에의한 역학관계에 의해 변해가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속의 문화. 무사가 가부키를 보았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서민적 오락이었던 것이 천황에게 보여지고 일본의 고급문화로 자리잡기까지 그들의 노력도 흥미진진하고 말이다.

 

어느 도시나 역사와 애환이 있었겠지만 그 오래된 이야기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나는 건 기록된 자료를 통해서다. 외국인마저 이렇게 자세히 한 도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기술해놓은 그들의 기록문화가 무엇보다 부럽다.

 

저자에 의하면 도쿄시 차원뿐 아니라 구마다 그런 자료들이 풍부하다니 부러움을 넘어 놀랍다.

평소 음악회를 가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미어터지는 걸보며 하도 표구하기가 힘들어 이 사람들은 보다가 망하냐고 투덜대곤 했는데(정말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음악회들이 시시때때로 열리는데 거의 매진이다) 교토는 입다 망하고 오사카는 먹다 망하고 도쿄는 보다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래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니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에도, 메이지 다이쇼시대를 거치며 거의 지금의 도쿄로 자리 잡았다는 이 거대도시는 (사실 도쿄는 시가 아니라 도()이긴 하지만) 이제 내게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런 발전된 도시로서가 아니라 이 자리를 지키며 격변의 세월을 살아냈던 상인들,  초닌들의 도시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어쨌든 더 늦기전에 좋은 책을 접하고 이제 목조건물이나 인도에 내어놓은 화분들이 아니라 그 건물들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오십년 백년 국수를 말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