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강재언-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史野 2007. 5. 4. 00:29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2006-03-08 18:03

 

7년전쟁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조선과의 교린정책에 의해 요구된 조선통신사.

 

에도시대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한 횟수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2회 였다고 한다. 200년이 넘는 사이 12번이면 그렇게 많은 방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주로 쇼군의 세습을 축하하는 의미였는데 한 번 파견된 숫자가 사오백명 정도였다니  요즘 대통령 방문에 얼마의 수행원들이 동행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지금처럼 비행기도 아니고 그 많은 인원들이 육로나 배로 움직였으니 그 의미는 더 대단하다고 하겠다. 거기다 청에도 조공을 보냈어야 하는 상황에서 작은 나라 조선으로서 경제적 부담감은 또 얼마나 컸겠는가.

 

조선통신사는 (조선통신사에 대해 다른 책을 쓴 정장식도 지적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라면 모를까 왜 우리나라에서 조선통신사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조선통신사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처음부터 동상이몽이었는데 권력을 잡고 일본을 통일한 새로운 세력인 도쿠가와 막부에게는 쇼군 세습을 축하하러 다른 나라 사신이 오는 형태였으니 그들이 주장하듯 조공이란 의미였다고 해도 일반이들이 보기에 오해를 살만한 행렬이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조선쪽에서는 대등한(속으로는 아니었지만관계의 교류였고 침략의 가능성에 대해 확인하는 계기였으며 또 소중화의 자부심으로 오랑캐족에게 고급 유교문화를 전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통신사들은 일본에 다녀온 후 보고서를 남겼는데 이 책은 그 보고서들에서 인용된 부분들이 많은데 거론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내게 몇 가지 흥미로왔던 부분들을 살펴보겠다.

 

조선측에서는 처음 세 번을 모두 회답겸쇄환사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쇄환이란 전쟁때 끌려간 조선포로를 구출(?)하는 일이다. 수 십년동안 그 노력이 어찌나 끈질긴지 국민이라는 의미가 근대이후에 형성되었다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에 의심이 갈 정도다.

 

문제는 그동안 이미 일본생활에 익숙해진 조선포로들이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건데 1617년에는 강제로 모집되어 도망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는 거다. 1624년 조선은 다시 조선인들을 강제귀환시키는데 문제는 무조건 우리나라 사람들이니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만 있었을뿐 막상 돌아온 조선인들에게 해줄 생활방편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도대체 누구를 위한 쇄환이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조선인들이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유로 일본의 화폐 경제발달로 생활하기가 신분사회가 엄격했던 조선보다 손쉬웠던 점과 막부말기까지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보이는 조선인들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없었던 사회분위기를 들고 있어 흥미롭다.

 

또 하나는 1763년 동행했던 역관이 열 명이었는데 그 중 일본어에 능통한 이가 거의 없었다는 데 그럼 제대로 된 통역도 없이 어떻게 외교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역관시험 이 엉터리였거나 그 많은 돈을 투자해서 일본에 보내면서도 조선에는 일본과의 교류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일본이 출판왕국으로 불리지만 에도시대에도 그랬다는데 오사카의 출판상황이 천하의 장관이라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퇴계선집이야 자랑스럽다고 해도 국가기밀이 들어있는 징비록이나 간양록등까지 다 오사카에서 출판되어 팔리고 있다고 통신사는 통탄한다. 역시 당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정보수준을 알려줌과 동시에 조선의 자세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통신사들은 하나같이 일본산수에 감탄하는 글이나 시를 남기고 때론 부유하고 화려한 모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왜 그들이 잘 사는지 아님 우리와 무엇이 다른 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여되어 있다. 눈으로 보긴 보되 마음이 열리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구마를 구황작물로 들여왔다는 것외에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일본과의 교류에서 조선이 얻은 건 거의 없어 보인다. 아니 위에 언급했듯이 역시 오랑캐들의 학문이(주자학짧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소득이랄까.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노학자로서 저자의 객관적이고 피해의식없는 시선을 높이 평가하고 유익한 글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의문들은 가슴에 앙금처럼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