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잊을 수 없는 어떤 기억.

史野 2007. 2. 13. 22:02

 

아래 글을 올리니 잊을 수 없는 어떤 기억 하나가 오후 내내 생각이 났다

 

내가 아일랜드 마지막 해 모 항공사 콜센터에서 일을 할 때다.

 

언젠가 썼지만 그 곳에서는 유럽, 오전엔 미국에서도 전화를 받았는데 어느 날 독일로부터 어느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은 한국분이셨는데 예약확인을 하시곤 우리 전화가 무료전화가 맞냐고 물으셨다. 당연한 일을 물으시다니 황당한 기분으로 그래 맞다고 말씀을 드리니 영국에서 묵었던 호텔에서 전화비를 받았다는 거다.

 

그럴리가 없다고 세계 어디서나 수신자부담인 전화라고 확인해보고 알려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우리 과장님 그럼 그러려니 하지 무슨 확인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냐고 한 말씀..-_-

 

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지 비싼 런던의 한 호텔이었는데 당장 그 호텔로 전화를 했다.

 

내 신분을 밝히고 이러저러한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 담당자라는 사람이 자기네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자기가 도울 일은 없다는 거다.

 

그래 영국내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당장 총지배인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래 나는 가끔 열받으면 눈에 보이는게 없다..ㅎㅎ

 

중요한 건 이 남자가 총지배인을 어쨌든 바꿔줬다는 거고 영국악센트를 우아하고 (내가 원래 영국악센트를 좋아한다..^^)  젊잖게 구사하는 그 총지배인에게 나는 같은 걸 설명했다.

 

그런데 이 남자 역시 단번에 무료전화라니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하는 거다.

 

그래 내가 당신과 내가 상황은 달라도 당신이나 나나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서비스업의 기본은 고객에게 신의를 지키는 건데  지금 우리 고객이 내게 컴플레인을 걸어왔고 나는 이 사항을 정확히 알아보고 고객에게 알려줘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당신이 이 문제를 좀 알아보고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내 영어가 매일 영어를 써야하는 아일랜드에 살 때니까 지금과 비교 당근 물이 올랐을 때이긴 했어도 그래봤자 그 수준이고 그는 총지배인에 나는 콜센타 책임자도 아니고 일개 직원이었다. (당연히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담당하고 있는 지를 처음에 밝혔다)

 

그런데 이 남자 아주 공손하게 알았다면서 알아볼테니 한 시간 후 자기에게 직접 다시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끊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했더니 당신 말이 맞다면서 왜 우리에게는 그 정보가 오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고 그 손님에게는 전화비를 환불해 드리겠단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자기네 호텔에서 일어나진 않을테니 염려말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독일에 계신 손님에게 상황설명과 죄송하다는 말을 곁들여 전화를 해드리곤 일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내가 곧 그만두게 되어서였는지 어쨌든지 그 손님이 진짜 돈을 환불받으셨는지까진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영어도 버벅거리는 한 동양여자애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정성스럽게 전화를 받던 태도. 그리고 서비스업계의 프로답게 일을 처리하던 태도. 모두가 인상적이었기에 잊을 수 가 없다. 대민업무가 본분임을 까먹고 잘난척 하던 그 외무부 직원들을 생각하면 더 잊을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게 경쟁력이고 그게 사람사이의 예의다.

 

더블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후진 직업중 하나인 콜센타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내 남자의 마누라로 개인적으로 꽤 괜찮은 혹은 꽤 지위가 높은 또 혹은 꽤 부자인 사람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리고 그들도 나름 겸손했지만 내가 접했던 가장 인상적인 남자는 그 그냥 일개 콜센타 직원을 성의있게 상대한, 이름도 기억할 수 없고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그 총지배인이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헬스클럽에 일본의 예전 야당당수가 가끔씩 나타난다. 처음에 그 남자를 보고 하도 낯이 익어서 내가 저 남자를 어디서 봤나 한참을 생각했더니 티비에서 봤다..-_-

 

예전에 대표였을때도 가끔 보았는데 우리 헬스클럽은 워낙 작은데다 내가 가는 시간은 거의 비어있기에 눈에 확 띄는 남자.

 

아무리 이 일본땅에서 정권이 안 바뀌는 야당이라지만 그래도 한 당의 대표였던데다 집안도 무진장 잘사는 사람이라던데 그리고 학벌도 좋다던데 그는 너무나 겸손하더라는 것. 정말 내가 그 남자를 티비에서 보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 아저씨라고 믿었을 만큼 그는 그랬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내가 안봐서 모르겠지만 권위의식이 장난이 아닐 듯한데 아니 국회의원까지 아니더라도 누구말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마저도 어디를 가면 자기가 누구라는 걸 밝혀줄 아랫사람(!)을 대동하고 다닌다던데 저 남자는 늘 혼자 나타나서는(일본은 보디가드도 없나?) 조용히 운동을 하고 사라진다.

 

한번은 내가 올라갔는데 마침 가려는지 프론트에서 뭘 받고는 자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걸 꾸부정하게 다시 끌어올려서 들고 조용히 사라지는데 그게 어찌나 신선하던지.

 

그의 모습을 가끔씩 마주치거나 그가 헬스클럽 직원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기분이 좋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아래 사람없다.

 

좀 나은 인간 좀 후진 인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내게 기억하고 싶어 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름 본인은 노력한다고 하지만 나라고 뭐 그 부끄러운 모습에서 크게 다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도 생각나는 두 남자를 기억하고 싶었다.

 

 

 

 

 

 

 

2007.02.13.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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