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빛이 있었다.
(이건 물론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의 패러디다)
누군가 내게 보고 듣고 말하고 그 중 한가지만 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보는 거다. 나는 수다쟁이고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세상의 빛을 그리고 그 빛이 만들어내는 색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말을 못한다고 해도 필담이 가능하고 듣지 못한다고 해도 남의 도움없이 상상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보지 못하면 과거가 아닌 어떤 상상도 불가능하니까
뤼미에르는 아시다시피 영화를 발명한 형제들의 성이자 프랑스어로는 빛이라는 뜻이다.(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성이 빛이라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이름의 힘인지) 그러니까 제목인 카페 뤼미에르는 빛의 카페? 뭐 이런 뜻이랄까
중국어 혹은 일어제목은 珈琲時光인데 커피시간 뭐 문학적으로 과장하자면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 이런 분위기.
그래서인지 영화 카페 뤼미에르에선 빛으로 충만하다. 요코의 아파트에도 요코가 드나든 몇 카페에도 우리가 평소 느끼지 못하는 빛이 '나 여기있소'란 존재감을 드러내며 공기속에 붕붕 떠다닌다.
공기원근법인 스푸마토를 처음 발견한 건 다빈치라던가. 빛과 공기가 어우러져 아스라해지는 그 분위기. 내가 카페 뤼미에르에 열광하고 그 장소들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그 빛이 환상적으로 표현된 영화이기때문이다 .
주인공인 요코가 장원예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반가운 전화를 받고 어느 날 역시 도쿄의 전철을 탄다.
그녀가 내린 곳은 센조쿠이케('발을 씼는 연못'이라니 이름도 어쩜 이리 낭만적인지).
그 역앞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요코는 장원예의 미망인을 만나 그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추며 이제 곱게 늙어 남편과의 추억을 수줍게 설명하는 그녀에게 귀기울인다.
그 카페 역시 공기의 입자가 모두 드러나는 듯한 아스라한 분위기에 배경으로 보이는 호수배경까지 어찌나 낭만적이던지..
그 카페를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한지는 오래.
역시 아시다시피 나는 일본어는 까막눈임에도 어찌 어찌 일본야후를 헤집고 다니다 그 카페를 찾았지만 그 역까지 가기는 산넘고 물건너.
그래 한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외출준비까지 모두 마쳐놓고도 포기하기를 몇 번.
오늘은 날도 너무나 좋았기에 운동도 포기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곳에 가야겠다는 결심이었지만 역시 구구절절한 이유로 미적거리다 길을 나선 건 오후 한시.
다시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그때 살펴봤던 걸로는 우리집에서 두 번을 갈아타야 갈 수 있었던 곳. 그것도 최소한 한 곳은 나가서 한참을 걷고 어쩌고 할 가능성이 있던 것.
그냥 택시를 타고 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도쿄 택시비야말로 장난이 아닌데다 이 영화가 도쿄전철이 매력이라면 매력인데 택시를 탄다면 그 맛이 덜할 것 같은 기분.
그저 무대뽀정신과 튼튼한 다리로 어찌 어찌 센조쿠이케역에 도착
문열고 들어갔더니 저 창가 앞은 모두 만석이고.
생각보다 별로 크지도 않지만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괜히 미안해서 살짝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앞의 의자로 옮겨앉아 지친다리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처음에 검색을 하면서 왜 이런 멋진 레스토랑이 이렇게 구석에 있을까 의아했더랬는데 호수도 그렇지만 주변도 엄청 잘사는 동네인듯 하더라
저 오리인지 백조인지 배가 좀 깨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멋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니.
역시나 허우샤오시엔감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동네에 살라고 하면 모든 걸 포기해도 될거 같이 낭만적인 곳.
도대체 도쿄는 언제까지 나를 놀래킬 것인지.
이 도시에 산다는 건 지천에 보물이 널려있고 그 보물찾기를 하는 그런 기분이다.
2006.12.06.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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