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명절증후군

史野 2006. 12. 1. 10:41

드디어 12월 1일이다.

 

18일에 독일에 가야하는데 정말 너무 가기 싫다. 내가 시댁에 이렇게 가기싫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제는 시누이랑 시어머니랑 다 통화를 하곤 괜히 짜증스러워서 신랑에게 마구 화를 내버렸다. 원래는 내가 맨날 자기부모 좀 챙겨라 자기 동생 좀 챙겨라 난리를 치던 사람이다보니 신랑도 이 새로운 사태가 당황스럽겠다싶지만 어쩌겠는가 내 마음이 그런 걸

 

거기다 나는 원래 쌓인게 있으면 풀어야하는 사람인데 지난 번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못 풀고 와서 더 짜증스럽다고 할까. 가기 전에 전화로라도 풀 생각이었는데 울 시어머니 결혼기념일이라고 울고 불고 하시고 어젠 또 여행다녀오셔서(시누이랑 바닷가로 일주일 여행을 다녀오시고 시누이 생일이라 베를린에 머물다 오셨다) 아무도 잘 다녀왔냐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또 난리시니 거기다 대고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냥 받아주려니 그것도 괴롭다. 워낙에 승질머리가 마음에 없는 거 잘 못하다는데 나도 쌓인게 많은 상태에서 아닌 척을 하려니 그것도 할 짓도 못되고 말이다.

 

울 올케언니왈 고모 시누이랑 문제없었잖아요? 하던데 시누이랑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건 시누이 가족이 생기기 시작한 후.

 

원래야 시부모님 신랑 시누이가 가족이었겠지만 이제는 신랑은 나랑 시누이는 시누이남친 아이랑 가족이다보니 그 사이에 알력(?)이 생겼다고 할까.

 

이건 어떻게 보면 시누이입장에서야  불공평한 걸 수도 있지만 나는 자존심도 없이 남자들에게 올인하는 여자들을 원래 잘 이해못한다. 바보같아 보인다고 할까.

 

그거야 뭐 시누이인생이니 내가 상관할바까진 아니지만 그걸로 나까지 괴로와지면 당연히 문제는 달라진다.

 

아니 자기에게나 가장 소중한 사람이지 우리에게도 그 남자가 가장 소중한가? 좀 문제가 많으면 우리를 향해 조심을 해줘야하는데 무조건 편들기만 하니 우리가 다 괴롭다. 시어머니야 당신 딸이 무조건 행복하길 바라시는 분이니까 다 맞춰주시는데 또 속은 상하시니까 나를 붙들고 난리고 막상 만나면 입도 뻥긋 못하시니 나는 무슨 동네북이냐? 아무리 내가 온동네 고민은 다 들어주는 '영혼의 쓰레기통'이라는 별병을 갖고 있더라도(이건 신랑 말이다)  가끔은 나도 지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누이가 신랑에게 함부로 하는 건 참을래야 참아줄 수가 없다. 그때도 썼지만 목사님앞에서 그 난리였던 것도 그렇고 자꾸 거슬리게 행동하는게 많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 알아먹을 지도 고민이고 말이다.

 

아무리 자기오빠라도 내겐 자기가 자기남친이 소중한것처럼 소중한 남편인데 그게 신랑의 동생이라도 기분이 나쁜건 사실이니까.

 

시누이네가 떠나던 날 모두 식사를 하러갔다. 작년에 어머님이 거위요리를 안하시겠다고 해서 거위를 먹으러 갔던 레스토랑이다보니 작년엔 아버님이랑 갔었기에 모두 침울하기도 했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때도 조카가 나무탁자위에서 프라스틱을 가지고 너무 시끄럽게 굴어 내 남자가 한마디했더랬는데 그때는 아버님이 계셨으니까 차마 난리는 못치고 그저 캡 열만 받아했었다...ㅜㅜ 

 

내가 갑자기 기분이 많이 나빠진것도 그 이유인데 아버님앞에서야 조심을 많이 했기에 별로 못 느꼈는데 이렇게 아버님이 안 계신 빈자리가 클 줄이야. 울 아버님 그 아프실때도 그런건 하면 안된다고 아이를 야단치셨는데(울 시어머니는 입도 뻥긋 안하신다) 당연히 시누이가 아버님께는 아무 말도 못했더랬다.

 

어쨌든 그 날 다 잘먹고 있는데 갑자기 날더러 너만 이 레스토랑에 맞는 차림을 했다나?

아무도 내 옷이 이쁘다고 말한 사람도 없고 시누이가 옷을 후지게 입었다고 한것도 아닌데 얘가 갑자기 왜이러나 싶었지만  그냥 레스토랑때문이 아니라 내 남자에게 이쁘게 보이고 싶어 입었지 하고 웃었는데 당장 그럼 너는(울신랑) 왜 마누라에게 이쁘게 보일려는 차림을 안한건데? 울신랑 그날 진마오호텔에 가도 괜찮을만큼 입었건만 아니 왜 화살이 그리로 가냐? 기분이 나빠진 울 신랑 '그래 지금 뭐가 문제라는 건데?' 분위기 험악해지기 일보 직전.

 

자긴 다섯시간이나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어떻게 치마를 입을 수 있었겠냐 어쨌겠냐 궁시렁 궁시렁.

 

내 기억에 집에서 간 작년에도 그날이랑 별 다르게 입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옷을 가지고 난리인가 생각을 해보니 혼자 지레짐작으로 혹 자기 남자친구가 자기차림이랑 나랑 비교해서 무슨 생각을 할까봐 그 난리였던 것.

 

이런 것도 한 두번이지 자꾸 반복되면 진짜 피곤하다.

 

거기다 시누이가 신랑에 대해 그렇게 피해의식이 있는줄 몰랐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스무살도 아니고 엄마에다 내일모레가 마흔인 애가 아직도 그걸 극복하지 못했으니 어찌해야 좋을 지를 모르겠다.

 

만나면 나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어쩌고 그랬더니 자긴 여전히 걱정이나 시키는 동생인거냐고. 상황이 걱정을 안 시킬 상황이야 걱정을 안하지 그럼 가족인데 염려도 못하냐?

 

내가 속이 좁은 사람도 아니고 배려가 적은 사람도 아니고 욕심쟁이도 아니다. 신랑에게 단하나 있는 동생인데 다 잘 지내고 그러고 싶고 그래야 어머님도 맘을 놓으실 거 아니겠는가. 그때도 썼지만 울 시어머니 나를 붙들고 자기딸내미랑 손자랑 잘 돌봐주라며 우셔가지고 또 왕 황당했긴 했지만 말이다.

 

시누이가 차가 없어서 아이데리고 장보러 다니느라 힘들다고 하시길래 그럼 어머님이 한 대 사주라고 하는 사람도 나고 시누이 연금같은거 들어 시부모님이 붓는다며 우리에게도 같은 돈을 보내실때도 우리는 필요없으니 관두시라고 하는 것도 나다.

 

정말 시누이가 살아갈 돈이 없어서 그나마 집하나 있는 재산 자기가 다 갖겠다고 하면 그냥 줄수도 있다. 우리도 돈이 많은 건 아니니까 그 돈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돈 없어도 굶어죽지는 않으니 말이다.

 

차라리 돈문제라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행동을 해야 서로 화목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건지를 모르겠다.

 

울 시누이 남산만한 배를 해가지고 베를린으로 이사갈때도 굳이 시댁에 있는 장을 가져가겠다고(그 남친 무지 부자인데 나 참 그 장 얼마나 한다고 하나 사지..ㅜㅜ) 뮌휀부터 그 이삿짐을 끌고 시댁와서 장싣고 베를린으로 간다고 해서 우리 어머님 잠도 못주셨다. 그래 내가 어차피 어머님이 주시는 거니까 배달비까지 부담하고 직접 보내주라고 했는데 울 시누이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울 시어머니 또 날붙잡고 우셨더랬다.(아 그러고보니 울 시어머님은 왜그렇게 자주 우시냐? ㅜㅜ)   

 

그게 다 자기남친이 그렇게 하자니까 그러는건데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장이고 어머님이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리면 그냥 우리엄마가 보내준다고 하면 안되는 건가? 매 이런 식이니 주변 사람들 다 힘든데 자긴 그 남자가 좋으니까 그만이지만 우린 뭐냐고. 아버님이 계실땐 조심이라도 했지 이젠 정말 더 난리인데, 더 복잡해지면 복잡해지지 쉬워지진 않을텐데

 

그리고 나도 이젠 더이상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계시는 울 시어머니 받아주는 것도 못하겠다. 울 시어머니 시누이랑 그 남친 눈치보시고 식성까지 맞출려고 애쓰시다보니 힘 드셔서 그걸 내가 해주길 바라시는데 나는 그렇겐 못한다.

 

나도 살아야겠다고! 나도 시댁에 가서 마음이 편해야 할거 아니겠는가? 하이튼 얼마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가 시댁가기 싫어지는 며느리가 되었다니 울 신랑 한국며느리들은 그래도 다 잘 참고 산다며?하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어디서 쓸데없는 것만 배워갖고는..ㅜㅜ)

 

그러나

 

앗싸!! 이러니 일단 이 싸움인지 토론인지는 내가 이기고 들어가는 거다.

 

왜냐? 그래 내가 그럼 자기 생각에 한국며느리들중 나만큼 시댁식구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잘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나. 거기다 내가 겉으론 잘하고 속으로 계속 욕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냐니까 그것도 물론 아니라고 말이다.

 

이 시점에서 꼴사우시겠지만 내 자랑을 해야겠다 (자랑이라고 말 안하면 꼭 짚고 넘어가는 모님이 있으니..ㅎㅎ)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거다. 그래서 다들 나를 엄청 좋아한다. 친지분들 뿐 아니라 어머님친구분들이며 이웃사람들에게 인기짱이다. 울시어머니 이번에도 그러시던데 이웃들이 만나면 자식이야기는 안물어봐도 며느리 잘있냐고는 꼭 물어본다고 하셨을 정도다.

 

아넬로테는 나를 바라만보고 있어도 그저 기분이 좋아진단다..ㅎㅎ

 

가깝게 사시는 분들이야 갈때마다 뵙긴 하지만 좀 멀리 사시는 분들은 이번 장례식에 오셔서 울 신랑이랑 시누이에겐 아무도 안그래도 나한테는 이런 일로 만나서 슬프긴 해도 당신을 또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하신 분들 많다.

 

거기다 어머님이랑 리코더를 함께부시는 친구분은 당신이 어머님 잘 챙길테니 넘 걱정말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프란치스카(몇 년전에 죽은 그 분의 따님이다)에게 잘해줬던 건 죽어도 못 잊을 거라고 또 말씀하셨다. 그때 썼던 더블린에 오셨던 다른 목사님 부부도 너무 반가와하시면서 여전히 그림을 그리냐고 물으시고 아니라니 너무 안타까와하시는데 (울 신랑이 무슨 반고흐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난리라고 황당해 하던 그 분들이다..ㅎㅎ) 그때 내가 잠시 미술관 안내하며 언급했던 카라밧지오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세상에나 여태 안 까먹으시고 지금 뒤셀도르프에서 카라밧지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거다. 혹 내가 모를까봐 알려주고 싶었다며

 

이번에도 아시아산 생강젤리가 생겼다고 그걸 나준다고 한동안을 냉장고에 넣어놓으시는 옆집 아줌마며 얘기하자면 끝이 없는 일들이 많다.

 

그게 다 누가 빛나는 건가? 울 신랑이랑 우리 시부모님이다. 아니 내가 한국인이니 국위선양까지 하는거다 이러니 대한민국 나한테 훈장을 줘야하는 거라고!!!( 안다 이건 많이 오바라는거..^^;;)

 

이러며 요즘 신랑이랑 싸운다..ㅎㅎ

 

여태 잘 했다고 앞으로도 잘해야하는 건 아니다.

 

이건 정말 창피해서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얘기했듯이 울 시누이 아버님 돌아가시자마자 그 방을 자기 애방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지하에 있는 티비를 어머님 혼자 가 보시기 불편하고 무섭고 하니 그 방으로 옮겨놓자니까 안된다며 그냥 손님방에 넣어버렸다..손님방은 해도 안들고 어머님방에서 먼데다 아버님방은 시댁에서 제일 넓고 좋은 방인데 어쩌다 가끔 오는 자기 애가 꼭 써야겠냐고..ㅜㅜ

 

신랑이야 말해봤자 싸움뿐이 더 되겠냐고 하지만 말을 안하면 어찌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이번에도 마리아네가 한마디했다고 우리에게 마리아네 욕을 마구 하는걸보니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가족이니까 그리고 잘 지내야하니까 힘이 들더라도 짚고 넘어갈건 짚고 넘어가야하겠단 생각인데 그래서 더 독일가기가 싫어지는 거다.

 

그나마 시누이가 내 눈치는 엄청 보고 어려워하고 그러는지라 불행중 다행이긴 한데 이번에도 자기아들만 빼놓고 모든 크리스마스선물을 생략하자길래 아니 거위생략하고 선물생략하고 크리스마스가 뭐하는거냐고 내가 반대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더라만

 

울 신랑이 그렇게 좋아하는 거위도 자기가 안먹어서 생략인데 이거야 어머님이 힘드신 일이니 나도 찬성했다만 자기 남친 고기 안먹는다고 자기도 안먹기 시작해서 이브날 먹는 고기퐁듀도 못하고 질서잡아주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첫 크리스마스 공포다.

 

이젠 독일가면 먹는 것도 스트레스라 다녀오면 나같이 안먹는 애가 폭식을 하게 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연달아 두 번을 하도 제대로 못 먹어서 이번엔 신라면이라도 싸들고 갈 생각인데 나도 드디어 명절증후군이 생길라나보다..-_-

 

평소같으면 그냥 내 식대로 말하겠지만 울 어머니 이제 약해지실데로 약해지셨는데 어떻게해야 다 윈윈이 되는 건지 머리깨고 고민좀 해봐야겠다.

 

그건그렇고 장례식에서 처음 뵌 아버님 사촌분. 사진도 찍으시고 엄청 유쾌한 성격의 싱싱한 분이시라 참 기억에 남았더랬는데 지난 달 27일에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그냥 쓰러지셨다나. 안뵌 분이면 모르지만 그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기억에 남는데 참 인생 허무하단 생각.

 

 

 

 

 

 

2006.12.01.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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