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리스본1

史野 2006. 10. 12. 22:37

기차시간이 잘 안 맞아 일찌감치 도착을 했더니 시간이 널널해 바에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여행. 기차에서부터 계속 생각했지만 혼자라는 게 우선 너무나 좋았다.

 

정말 나처럼 하루 12시간도 넘게 전화벨조차 안 울리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애에게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애와 함께한 팔일은 너무 힘이 들었다.

 

생각보다 멀어서 세 시간가까운 비행으로 도착한 리스본. 한 시간이 늦어서 일단 해가 뜨거운 시간. 간신히 주소는 알아듣는 기사가 데려다 준 호텔은 맙소사 이게 별 넷이야 싶을 만큼 실망스러웠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눈치보지 않고 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선 좋았다. (정말 다른 곳에 가면 화장실 문제도 심각하다..-_-)

 

공항부터 마시고 비행기에서도 마셨지만 또 미니바에서 리스본에 온 나만의 축배를 들고..^^ 조금 뒹굴거리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호텔옆의 책방. 이름이 부흐홀츠인데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있나..ㅎㅎ



이렇게 야자수 가득한 큰 일을 따라 내려가다보니



이런 건물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마침 해도 뉘엿뉘엿이라 사진 몇 장 찍고 있는데..



시끄러워서 옆을 보니 이 웃기는 애들이 이러고 서서는 빨리 자기들을 찍어달라고 난리인거다.. 저 가방든 애 팔아프겠다 싶어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한 장을 찍었는데 또 이멜로 보내줘야한다고 난리고.

내가 혼자있고 싶었던 게 아니거나 십년만 젊었어도 달랐겠지만 남자애들에게 관심도 없는데다 누가 말시키는 것도 싫은 마당에 멜을 주고 받고 어쩌고 할 기력이 어디있는가..ㅎㅎ



전반적으로 다른 서유럽도시들보다는 낡고 조금 빈티도 나는데 저런 버려진 건물들이 많다. 아마 유럽연합에서 앞으로 돈투자를 꽤 해야할듯..^^;;



현재 시간 6시 22분..^^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데 독일인들은 다 리스본에 모였는지 독일을 떠나왔는데도 거리에서 들리는 건 독일어다..-_-



무작정 방향잡아 걸었는데 딱 맞아 떨어져서 관광지인 구시가다.







걷고 걷고 또 걸었더니 차츰 어두워지는 시가지. 어딘지 뭐하는 곳인지 묻지 말길 바란다.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마임을 하는 사람과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 아빠들만 둘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모습은 난생 처음 본다..ㅎㅎ 그리고 구시가지 길들이 다 저 작은 돌모자이크 길인데 저걸 깔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든 처음엔 비라도 왔나 싶어 놀랬는데 사람들이 하도 밟고 지나다녀 반들반들 윤이 나는거다..^^



적당히 노천에서 밥먹을 곳을 찾아 다니다 만난 레스토랑 길. 저 왼쪽 구석에 자리를 하나 잡고 앉았다.



저 많은 걸 내가 다 먹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맛도 좋고 옆에 모여 앉아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커녕 한마디도 안해도 된다는 그 사실이,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좋은거다. 그렇게 피곤했었니?



돈달래러 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잽싸게 켜는 흉내를 내주는 매너(?) 아저씨..^^

 

혼자 앉아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혼자임을 즐기자고 술을 마시는데 이상한 건 이 도시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

 

대낮부터 술을 계속 마신 관계로 얼큰하게 취해 일어나 가게에 들려 미니 코냑 한 병이랑 시댁에 들고갈 포르투칼포도주 시음용 박스랑을 구입해 흔들거리며 호텔로 돌아오는 길.

 

호텔이 아니라 무슨 내 아파트로 돌아가는 듯한 이 익숙함. 신기했던 건 전혀 생각하지 않던 어떤 남자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계속 생각이 나더라는 것.

 

그도 이 곳으로 휴가를 와 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혹 나는 전생에 그와 이 도시에서 살았던걸까 하는 묘한 기분도 들던 그런 밤. 어쨌든 혼자라는 게 미치도록 좋았던 리스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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