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둔황에서의 둘째 날

史野 2006. 8. 19. 10:47

 

 

다음 날 아침 그 유명한 막고굴로 떠났다. 저 기 보이는 구멍들이 다 굴이다. 막고굴은 특히 11세기 이전의 중요한 문서들이 발견된 걸로 유명한데 특히 우리에겐 1908년 프랑스인인 펠리오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그 문서중 식별해 낸 거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전 그 왕오천축국전을 읽다가 포기했지만..^^;; 어쨌든 그 곳에 가보는 것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지..ㅎㅎ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라마교탑으로 보이는 것들.

 

 

그리고 예전엔 강물이 흘렀을듯한 마른 바닥.

 

 

이게 그 고문서들이 왕창 발견된 장경동입구의 모습이다.

 

 

가기전에 중국이나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이 막고굴에 대해서도 여러 번 읽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굴이라는 생각에 승려들이 들어가 참선을 하는 곳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당시 일반인들이 세운 말하자면 굴속의 절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커다란 굴을 아주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대로 그 굴의 크기가 달라지는 그런 형태다.

 

 

이 곳엔 저 건물크기만한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막고굴을 떠나 다시 둔황으로 돌아오는 길. 저 막막한 풍경이라니..

 

우선 기사아저씨에게 부탁을 해 둔황의 한 음식점에서 지역음식을 맛있게 먹고 오후일정은 취소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문제는 둔황에서 투르판가는 기차표를 살 수 없어서 어떻게 투르판까지 이동을 하는가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방에서 뒹굴거리며 좀 쉬다가 저녁때 둔황거리 산책에 나섰다.

 

 

엄마가 해주던 구운 양갈비 뭐 이렇게 번역을 해야하나? 시장은 활기로 넘치고 에어컨이 있다는 식당은 문이 열린 상태..ㅎㅎ 시장을 돌며 호떡을 발견하고 하나 사먹는데 일원짜리 동전을 거부하는 아저씨. 일원 혹은 마오까지 지전을 쓰는 걸 보면 아직 이 곳에서의 화폐가치가 어떤 지 짐작이 간다.

 

 

둔황은 아직 깐수성에 해당하는 고로 한족의 비율이 월등이 높다. 깔끔하게 정리된 주택가의 모습. 이 길 저 길을 따라 걷는데 모든 건 너무나 건조하다. 얼마나 건조한지 사십도나 되는 날씨에도 땀은 흐르지 않는다. 나오자마자 증발을 해버리는 것. 물이 그립고 저 목말라 하는 듯한 꽃도 안타깝다..^^;;

 

 

조금씩 어두어져 가는 시간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잠시 피시방에 들렸었더랬는데 거기서 게임도박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조선족을 만났다. 여기까지 그렇게 많다니. 어쨌든 그들은 유창한 조선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욕을 해대기도 하고 담배를 줄줄히 피워대며 피시방이 떠나가라 떠들고 있는걸 보니 아마 단골인가보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는 내가 신랑이랑 이야기하는 걸 듣더니 조선어로(!) 이 아가씨 영어 참 잘하네 하더라. 그들을 보고 있자니 반가움보다는 좀 씁쓸한 기분.

 

어디서 밥을 먹을까하다가 그냥 시원한 맥주 몇 병 사들고 들어와 신랑은 책을 읽고 나는 중국드라마를 보며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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