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프라하여행기2

史野 2006. 6. 4. 11:01

슬슬 걸어나오는데 날씨는 일단 너무 추웠고 밤기차를 다시 타야하니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우선 시내한바퀴 버스를 탔다. 젼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돈은 있어보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무더기 사람들이 요란스러웠던 것만 빼고는 견딜만 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궁핍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를 버스는 헤집고 다녔다. 드디어 그리도 보고싶었던 프랭크 게리가 누군가와 설계했다는 네덜란드보험회사 건물을 지나게 되었다. 그 끔찍하게(?) 자유로운 건물이 그 낡은 역사의 도시에 묘하게 어울린다고 할까. 마음같아선 내리고 싶었지만 구도시도 봐야하는 관계로 다음을 기약하며 통과..

 

드디어 사진으로 하도봐서 친숙하기 이를데없는 칼의 다리가 나타나고 버스는 구시가지로 들어서 프라하성을 향해 오른다.  

 

한시간뒤에 버스로 다시 모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왔지만 내가 총맞았냐? 여기까지 와서 한시간뒤에 다시 그 버스를 타게..돈은 아깝지만 안녕이다 버스야, 그리고 시끄러웠던 당신들도..ㅎㅎ

 

프라하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웅장한 프라하 성.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녀본다. 중세의 성에 갈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 육중함에 일단 기가 질리고 음산함에 살까지 떨린다. 잠시 따뜻한 차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와있는데 딱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애들이 봉투에 뭔가 담아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물통이 들어있는게 아마 점심인듯하다.

 

이 추위에 저걸 어디서 먹을 생각인지..

 

가게가 모여있는 좁을 골목으로 들어가 지난번에 얘기했던 야나첵의 크로이처소타나 음반을 하나 사고 중세기사들의 갑옷을 구경하는데 자꾸 그 청년들이 생각난다. 내 조카가 배낭여행이라도 오면 저러고 다닐텐데 싶으니 아무래도 밥이라도 한끼 사줘야겠다 싶어 찾아 나섰다. (안다 나 외랖넓은거..-_-) 골목을 빠져나오자 마침 두 젊은이가 중세감옥을 구경하고 나온다.

 

내가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다짜고짜 밥사줄게요 할 수는 없는 일. 옆으로 다가가 중세감옥이 어떻더냐고 물으며 담배를 한 대 꺼냈다. 뭐 그냥 그렇다고 말하곤 이 젊은이들이 인사도 없이 거길 그냥 빠져나가버리는 거다..ㅜㅜ 아 그 애들이 예의가 없어서라기보다 쑥쓰러움이 많은 애들인거 같았다.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쫓아갔더니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러다 발견한 점심음악회. 그래 아가들아 너희 밥값으로 이 아줌마는 그냥 음악회도 봐야겠다. 안그래도 라이프찌히부터 음악회가 가고 싶었거든.

 

프라하 약식음악회치곤 결코 싼 건 아니었지만 표를 사서 들어가 작은 홀에 앉으니 기분이 묘했다. 몇 백년전에도 여기 이렇게 앉아서들 작은 음악회를 열었겠지하는 생각..

 

피아노와 플룻과 비올라,  음악들은 다 알만한 간단한 소품들이었는데 예상외로 좋았다. 아직 보지 못한 곳들도 남았지만 배도 고프고 그 유명한 계단으로 시내로 내려가려고 하니 모자인듯 너무나 수줍게 사진을 좀 찍어 달란다. 이것도 자주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양애들 중에 수줍은 애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래 나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좋은 여행하라고 인사하며 내려오는데 역시 자꾸 생각이 난다. 억양으로 봐서는 영국인들 같던데 혹 대학입학시험이라도 붙고 나서 엄마와 둘이 여행을 온 걸까.  

 

터덜터널 내려와 웅장한 바로크교회를 하나 또 구경하고는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역시나 점심이 좀 지났을뿐인데 아이리쉬애들은 벌써 취해서 떠들고 있다.  반가왔지만 뭐 통과. 하긴 내가 뭘 어쩌겠냐만..ㅎㅎ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면서 성에서 산 엽서를 꺼내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음식점을 나었을때는 벌써 어둑해진 시간. 우체국을 찾아 엽서를 보내고 술기운도 약간 있겠다 기분좋게 깜깜해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칼의 다리로 오니 드디어 구시가지의 야경이 드러난다. 어슬렁거리며 다리를 건너는데 그 추위에도 거리음악사도 보이고 관광객들도 꽤 많다.

 

기념품가게에 들려 프라하 머그컵을 두 개 사는데 이 아가씨 어느 나라사람이냐고 묻길래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당장 안녕하세요? 한다. 한국관광객들이 무지 많이 온다나..

 

프라하는 인형극이 유명한지라 가게에 들려 대자에게 줄 마녀할멈꼭두각시인형도 하나 사고 왁자지껄 시끄러운 크리스마스 장터에 가서 따뜻한 포도주를 마셔보지만 그래도 너무 춥다.

 

돌아갈 호텔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며 겨우 찾아들어간 곳은 어느 성당. 마침 미사중이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어찌나 분위기가 경건하던지. 미사중 관광객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창살 밖에 서서 바라보는데 기분이 참 묘하다.

 

저들의 저 경건한 신앙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왜 저리도 간절히 신께 무릎꿇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신은 저들의 기도에 얼마나 응답하셨을까..자꾸 초라한 차림새의 사람들과 화려한 성당장식이 겹쳐지며 머리만 복잡복잡..

 

성당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술집이나 찾아가자란 심정..

 

기차시간까지는 아직 백만년이나 남았고 아무래도 기차역주변으로 가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게 좋겠단 생각으로 또 한참을 걷고 또 걷는데 입도 안 떨어질정도로 춥고 외롭고 그냥 자고갈걸 기차시간도 너무 막막하게 느껴진다..

 

역근처의 어느 평범해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아들어갔더니 여기 저기 삼삼오오 정겨운 분위기다. 혼자 레스토랑에 갈때는 바에 앉는게 편한 관계로 바에 앉아 이름도 기억안나는 뭔가 푸짐한 요리를 시킨 후 술을 마셨다. 호텔에 들어가 잘 것도 아니고 밤새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이러다 어떻게가나 하는 생각도 함께..ㅎㅎ

 

시간이야 우리를 절대 배반안하는 유일한 것중 하나이니 올 것같지 않던 기차시간이 다가왔고 텅빈 객차를 골라 앉았다. 문제는 이 기차가 낡기도 한데다가 누울 수가 없게 팔걸이가 되어 있던 것.. 피곤하기도 하고 앉아 졸다자다하는 동안 누군가 문을 열기에 놀라 눈을 뜨니 기차표를 검사한다는 아저씨.

 

내 표를 보더니 잘못 탔다고 이 기차는 뮌헨으로 간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하시는 거다...ㅜㅜ 잘 보고 탄 이 기차가 왜 잘못인고 하니 이 기차는 뉘른베르그에서 갈라져 앞쪽은 프랑크푸르트로 뒤쪽은 뮌헨으로 간다는 것. 곧 닿을테니 서둘러 옮기라며 이 아저씨 딱 보면 모르냐고 이 후진 차가 독일차겠냐고 웃으신다..-_-

 

제대로 된 차를 찾아가는데 만난 여권검사아저씨들.. 여권을 보여주고 독일어를 어디서 배웠냐뭐 그런 농담같은 걸 하며 지나가는데 저 뒤쪽에 오던 아저씨 날더러 여권을 또 보여달라는 거다. 아 못보여줄건 없지만 당신들 일일히 다 보여줘야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마구 웃으면서 되었다나..ㅎㅎ

 

역무원아저씨가 자랑한대로 도착한 기차칸은 좌석도 훨씬 푹신하고 누울 수도 있고 좋다..

 

새벽에 도착한 스산한 프랑크프루트역. 말끔히 차려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속에 낯선 기분으로 앉았다가 뮌스터행 열차에 드디어 올랐다. 그제야 마음도 놓이고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코트를 뒤집어 쓰고는 창문에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그게 실수였으니..

 

누군가 깨워 보니 또 표를 검사하는 아주머니..내표를 보고는 피곤할만하다고 마구 웃더니 계속 자란다..^^

 

어쨌든 정확히 어디서인지는 물론 모르지만 그 사이 누군가 디카와 현금을 훔쳐갔다는 것.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착한 도둑이었는지 카드는 안건드리고 지갑속에서 딱 현금만 빼가지고 갔다.가방엔 꽤많은 엔화도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그나마 있었으니 다행이랄까..

 

그렇게 짧았으면서도 일도 많았던 시댁탈출기는 막을 내렸다.

 

사진이 하나도 남지 않은 지금..기억마저 사라지기전에 이렇게 나마 대충 정리를 하며 일년도 넘은 여행기를 끝낸다..^^

 

언제 다시 가 볼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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