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근황 몇 가지.

史野 2006. 3. 20. 09:50

요즘 내 근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좀 계시는 거 같아 몇 가지 보고(?)를 해야겠다.

 

1. 책을 읽고 있다.

 

책을 뭐 새삼 요즘만 읽는 건 아니지만 올해 들어 일본과 또 일본과 관계된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엄청 읽고 있는데 무진장 우울하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어쩌고 생난리들인데 내가 보기엔 내가 훨씬 더 일본에 대해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고 자랐다. 하긴 뭐 일본에 대해서만 그랬겠냐 한국근현대사에 대해서도 그랬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은 상상외로 고통스럽다. 결국 내가 지금 판단하는 내 사고의 체계까지 의심하게 만드니 말이다.

 

요즘은 그래서 주로 금요데이트나 기회만 생기면 남편을 붙들고 성토하느라 바쁘다. 아무리 이 남자가 객관적 사고를 하는 멋쟁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한국인이 아니므로 내가 가진 그 뼈아픈 과거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는게 단점이다. 하긴 뭐 그래서 덜 감정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만.

일본관계 서적이 대충 끝나면 다시 한국근현대사로 돌아갈 생각인데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요즘 더 절실히 하고 있는 중이다.

 

2. 누드사진 프로젝트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세 달만 지나면 내 생일인데 아무리 봐도 세 달 사이에 끝내주는 몸매가 만들어 질거 같지는 않다.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한 프로젝트라 해도 두루뭉실한 허리로 사진을 찍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 몸매가 끝내주게 만들어지면 전문가에게 찍고 안그러면 남편에게 찍어달라고 했더니만 이 웃기는 남자가 자기도 끝내주는 몸매를 찍고 싶지 대충 만들어진 몸매는 찍기 싫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는게 아닌가? 원래 부부란 어려울때 서로 돕는 건데 이렇게 냉정하다니 치사하다..-_-

 

3. 몸무게가 늘었다.

 

그래도 하는데까지 해보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먹고 일주일에 네 다섯번 하던 운동을 여섯번으로 늘리고 시간도 늘렸다. 스스로에게 감동을 하며 일주일 후 몸무게를 재보았더니 거의 2킬로 가까이 늘어 버렸다.

운동을 안 한것도 아니고 더 열심히 했는데 늘어버린데 충격받아 신랑이 퇴근해오자마자 한탄을 마구 했더니만 이 남자가 너처럼 조금 먹는데 살이 찌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게 다 맥주살이라고 놀리는 거다. 이렇게 억울할때가 있나.  내가 맥주를 안 마셔서 억울한게 아니라 왜 늘 마시는 맥주가 이번에만 이유가 되냔 말이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그래도 트레이너의 충고대로 저녁도 안먹고 맥주도 안 마시고 그럴 순 없다. 내 인생의 목표는 날씬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이다 

혹 날씬해지면 더 행복하려나. 

 

4. 야구를 봤다.

 

사실 WBC야구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내 트레이너가 하도 열을 올리는 바람에 엉겹결에 지난 한일전을 봤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박찬호가 투구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는 것과 김병현과 이승엽이종범은 얼굴도 처음 본다는 걸 알았다.확실히 내가 한국에서 멀어진지가 참 오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잽싸게 운동을 하고 내려와 신랑이랑 같이 봤는데 야구를 거의 모르는 남편은 투수전을 특히 싫어한다. 왜 아무일도 안 생기는 거냐고 불평을 하는 그에게 그럼 나가서 맥주라도 사오라니까 싫단다. 그러다 일본이 점수를 내기 시작하자 뭔가 흥미로와 진다고 생각하던 이 남자. 2점이 4점이 되고 5점이 되니 안절부절. 자기야 맥주 사올거지 했더니 벌떡 일어나 나간다.. 그래 그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ㅎㅎ

 

어제 일본선발이었던 우에하라가 생각해보니 거인팀 팬이었던 크리스토프 따라가서 우리가 열나게 응원하던 그 투수다.  이승엽도 그리로 옮겼다고 하고 불독커플이 있었다면 올해는 야구보러 다니며 신났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그래도 야구야 옛사랑이고 요즘은 스모가 훨씬 재밌다

 

5. 친구가 없다.

 

불독커플이 떠나고 나선 아무랑도 안만나고 살았다. 그러다 이리스가 길고도 길었던 독일체류를 끝내고 돌아왔다며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석달만에 만나는 건가. 폐렴에 걸렸었다고 하는데 전화한 번 안한게 미안해서 같이 밥을 먹었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며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 같이 밥을 먹자는데 충격받았다.착하고 좋은 애지만 그렇게 자주 밥먹으며 난 할 말이 없다. 그래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게 뭘까를 고민해봤더니 맛사지 받으러 가는 거 밖에 없을 거 같다.

 

자기 남편이 깜짝선물로 비엠더블유 오픈카를 사줬다고 같이 놀러다니잖다. 그냥 혼자 걸어다니는게 훨 낫다는 생각이긴 한데 아무리 비엠더블유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그렇지 오픈카를 사주다니 안드레아스도 대단하다..우리는 한 대도 없는데 그래서 그 집은 차가 두대다. (그렇다 한국만이 아니라 서양에도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ㅎㅎ)

 

그리고 당장 또 독일아줌마들 모임에 오라고 해서 간신히 갔는데 역시 나는 아줌마들하고는 안맞는다는 걸 확인만 하고 왔다.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왔으니 다시 오라고 안하겠지만 이렇게 자꾸 사람만나는 일에 까다로와져서 솔직히 좀 걱정이다.

이러다 아무도 마음에 안드는 괴팍한 할망구가 될거 같다...ㅎㅎ

 

 

6. 남편 이야기.

 

저녁을 안 먹기 시작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더니 사킬로나 뺐다. 그렇게 먹을 걸 좋아하는 남자가 싫다고 딱 거절을 하질 않나 퇴근길에 맥주 좀 사오라고 하면 딱 나 마실 분량만 사오질 않나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다.

 

거기다 그때 이야기했듯이 내가 시속12킬로로 겨우 2분 달렸다는데 충격받아 자기도 12킬로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6킬로에서 이젠 그 속도로 8킬로까지 뛴다. 어제 옆에서 달리며 나는 시속 11킬로로 20분 나머지 7분을 11.5로 달리는 것도 헉헉거렸는데(맥박수가 172까지 올라갔다.)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더라. 역시 부부도 경쟁관계다..ㅎㅎ

 

 

7. 아버님이 아프시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수술한 자리가 계속 아프시단다. 참을성이 무지 많으신 분인데 계속 불평을 하고 계신다고 하니 마음이 엄청 쓰인다. 당신이 봄을 맞을 수 있을까란 약한 말씀까지 하신다니 충격이다. 아버님도 그렇고 옆에서 바라보고 계실 어머님도 그렇고 이래 저래 가슴엔 찬바람이 분다.

다행히도 이번 주말엔 베를린 시누이 댁으로 가셨으니 조카재롱도 보고 기분이 많이 좋아지셔서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물론 통증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내일은 춘분이라고 여긴 휴일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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