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꿈같았던 시절..ㅎㅎ

史野 2006. 3. 15. 09:43

봄이 오고 대청소라도 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옛 생각이 난다.

 

신혼때 나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바쁘지 않았던 남편이 살림을 거의 했었다. 거기다 나는 그전까지 혼자 살아본 적이 없지만 시댁근처에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생활했던 남편은 요리솜씨도 수준급이었고 말이다.

 

독일아파트는 앞집과 번갈아 가며 계단청소를 해야하는데 그것도 너무나 좋았던 우리 앞집아주머니 새댁은 공부하니까 당신이 다 하시겠다고 해서 계단청소에서도 해방되었다..^^

이 앞집 아주머니는 울 신랑이 온갖 살림을 하는 걸 모르시곤 내가 한국갔을때 신랑 어떻게 하냐고 세상에 음식까지 싸다 주셨단다..ㅎㅎ

 

주중에 아침저녁은 각자 해결 점심은 나가서 먹고 주말엔 청소와 요리를 신랑이 한다고 했더니 다들 날더러 그럼 넌 뭐하냐고 물었는데 나는 다림질을 했다..ㅎㅎ 신랑은 다림질도 수준급인데 문제는 엄청 오래 다린다는 거다. 쳐다보다 답답해진 나 대충이라도 괜찮다면 내가 다려주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게 계기가 되어 삶의 멍에(?)가 되었다지..ㅎㅎ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그땐 내가 또 교회를 열심히 다닐때라 토요일 아침에 하는 부흥회까지 쫓아갔다 집에 오는데 딱 계단에서 빨래를 널러 가는 신랑이랑 부딪혔다. 이 남자 무지 반가와하며 '너 무지 배고프겠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이거 빨리 널고 와서 점심해줄게'..하하 들어가보니 물론 청소는 말끔히 되어 있었고 말이다.

 

얘기했듯이 그런 남자가 동양에 와서 살고부터는 청소부를 쓰기 시작해서인지 손하나 까닥 안한다. 홍콩에서까지는 그래도 요리는 가끔 했는데 동경에선 정말 그것도 안한다. 난 그게 넘 신기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본인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피자를 빼놓고는 할 생각을 안하는 거다. 

 

본인이 요리를 한 걸 내가 맛있게 먹어주면 무지 행복해 하고 혹 자기가 원하던 맛이 안나오면 무지 고민하고 하던 남자는 내 남자가 아니었던 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맛있는 걸 얻어먹을 수가 있는데 왜 자기가 힘들게 요리를 하냔다. 아니 그럼 뭐야 예전엔 맛있는 걸 못 얻어먹어서 직접 나섰다는 거냐? ㅎㅎ

 

다행인건 이 남자 ,본인이 일을 하지 않으니 잔소리도 안한다는 미덕을 갖고 있어 입을 다물고 사는데다  그 입까다로운 남자가 내가 해주는 음식은 다 감동하며 먹는다. 

 

그렇게 결혼하고 십년동안 집안 일을 거의 안하고 살았던 내가 동경에 와서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해야 했을때 정말 괴로와서 죽는 줄 알았다.   지금이야 일주일에 한 번이긴 해도 청소부라도 오지만 처음엔 얼마나 헐떡거렸는지 모른다.

 

원래 깔끔한 성격인 내 남자는 아마 무지 고통스러웠을텐데 잔소리도 못하고 속이 속이 아니었을거다..ㅎㅎ

 

그러다 어느 날 부엌바닥에 커피가루를 쏟았다. 웬만하면 치웠을텐데 그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그냥 놔두었다.

 

난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부엌에 들어갔다 나온 남편 조심스럽게 '너 가끔 부엌도 청소기 돌리니?' 묻는거다.

 

책에서 얼굴도 안돌린 나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자기야 내가 맨날 청소를 하고 살 순 없거든? 그러니까 집이 깨끗하면 아 얘가 청소를 했구나 하고 행복해 하고 집이 더러우면 아 얘가 곧 청소를 하겠구나 미리 행복해 하고 그래'  

 

하.하.하   내가 이야기 해놓고도 어찌나 우습던지.

 

정말 애도 안 키우고 나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거나 그러지도 않으면서 집안일하는거에 이렇게 유세떠는 마누라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아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진장 좋은 마누라다..ㅎㅎ

 

 

어쨌든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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