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나도 가끔은 사는 게 즐겁다..ㅎㅎ

史野 2006. 1. 10. 20:56

 

 

 

 

방금 시어머님이랑 통화를 했다. 일요일에 통화를 했는데도(물론 내 그 주정에 힘입어 어머님이 눈치 안보시고 먼저 전화하셨다..ㅎㅎ) 오늘 또 전화를 하셨길래 아마 내가 보낸 사진을 받았다고 하실려는 줄 알았다.

 

이 사진문제도  정말 열 받는데 우리가 아일랜드에 살때 쓰다 버릴려는 컴퓨터를 시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물론 당시는 또 시누이 낡은 컴을 쓰고 계셔서 우리게 좀 낫긴 했지만 어머님이 마구 우기셔서 결국 오십만원이나 받았다..-_-;;

 

그 낡은 컴퓨터를 여태 쓰고 계신데다 모뎀이다보니 정말 사진 한장 보내는 것도 고생하며 받으신다. 그래서 내가 노트북 사드리고 전용선까시라고 하잔 말이 나온거다..ㅜㅜ

 

여담을 잠깐 하자면 서양사람들이라고 다 쿨하고 부모자식 안챙기는 거 아니다 불독커플은 여기살때 자칭 비디오회의를 양쪽 부모합해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씩 했다. 파트릭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자기 아버지랑 통화하고 산다. 예전에 기도는(우리 아일랜드 살때 그 동료) 자기 부모가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전화하라고 했다고도 얘기했었다.

 

내가 알던 아이리쉬 친구는 늙은 아버님모시느라 결혼도 안했다 (물론 꼭 그 이유라곤 볼 수 없더라도..^^)

 

그러니 내 남자만 별종이다..ㅜ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머님이 전화하신 이유는 내 이불을 드디어 찾으셨다는 감격의 전화인데 사연인즉슨 나는 특수 맞춤이불을 덮고 잔다. 시댁에 왔던 고기공표현에 의하면 이게 이불이냐 산이냐 이럴 정도로 무진장 두껍다...ㅎㅎ

 

열이 차고 넘치는 내 남자는 겨울에도 히터가 없어야 잠을 자기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잠을 잘 못자는 나때문에 고민하시던 어머님이 특수마춤을 해오신 거다.

 

아 혹시 모르시는 분을 위해 얘기하자면 독일사람들은 부부가 이불을 따로 덮는다. 물론 같은 침대안에 매트리스도 두 개 들어있다..^^

 

그러니 이 남자랑 한이불 덮고 살아요 이런 말은 독일에서 안통한다..하하

 

재밌는 거라면 내가 시댁에서 그 이불을 덮고는 잘 자니까 감동한 울 신랑

'엄마 그 이불 내가 살께 나한테 팔아라' 했다는거..하하

(이건 또 한국이랑 다른 점이다..^^)

 

낡은 컴이라도 우리는 팔았지만 결국 어머님이 내가 시댁에 가도 덮고 자야 한다며 우리에게 내가 지금 덮고 자는 겨울이불을 새로 선물하셨다..^^

 

문제는 이번 독일에 갔는데 내 침상에 여름이불이 있는거다.(그래도 남들에겐 겨울이불이다..^^;;)

어머님이 아프시기도 했고 그냥 까먹으셨나 하며 자다가 이틀 뒤인가 추워서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걸 왜 이제 말하냐고 하시더니 온 집안을 뒤져도 그 이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제일 웃긴건 울 어머님 넌 우리 솔직하자고 해놓고 왜 몇 일지나 그 얘기를 하느냐고..하하)

 

그래서 이번에 울 어머님 그 이불때문에 또 한바탕 쇼를 하셨는데 나중에 어디서 나온다고 나는 제발 괜찮으니 되었다고 위로해드리고 있다 떠나왔는데 오늘 찾으셨다는거다..

 

뭐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런걸로 감동해서 당장 전화하시는 울 시어머님 넘 귀엽다..ㅎㅎ

 

그 이불이야 아무도 덮는 사람이 없으니 뭐 또 일년 후에야 쓰이겠지만..그러고보니 잊었다! 넣어두시는 곳을 잘 기억해 두시라고 해야하는데..^^

 

 

오늘 통화를 하면서 남편 휴가보내기 프로젝트를 말씀드렸다. 가끔은 마누라도 스트레스니 혼자 쉬게 해줄 여행을 보내야겠다고...

 

맨날 아들 걱정하시던 우리 어머님 갑자기 발끈하시며 니가 왜 스트레스냐고.. 구구절절 설명을 드렸는데도 그럼 걔는 그 바쁘다며 휴가는 낼 수 있는거니 시비를 거신다..정말 이럴땐 딱 친정엄마다..ㅎㅎ

 

울 엄마도 예전에 독일에 오셨을때 신랑이랑 배드민턴을 치러 가셨었는데(울 엄마 배트민턴 끝내주게 치신다..ㅎㅎ) 당시 신랑은 친구랑 일주일에 한 번 배드민턴을 치러 다녔다. 울엄마 당근 왜 너는 함께 안가냐고.

 

부부라도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나 파트너 아닌 다른 사람이랑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는 게 내 대답이었지..ㅎㅎ

 

신랑 허리가 많이 나아졌다는 거랑 어제 또 나 달리기 신기록 수립했는데 내가 잘 달리기 시작하니까 이제 신랑이 위기의식과 함께 질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들을 나누며 시부모님들 웃으시느라 뒤로 넘어가시는 상태로 (시댁에 통화를 하면 늘 공개음성으로 시아버님은 옆에서 들으신다..^^)전화를 끊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다.

 

이 신랑 허리 다친 문제도 말할려면 다시 이 만큼의 분량을 써야하지만 다친 토요일부터 출근하는 오늘 아침까지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아픈 신랑이 뭐가 그렇게 웃기냐면 할 말이 없지만 아 우리도 이젠 참 많은 고비를 넘었구나 느낄만큼 아파도 둘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이젠 터득했다고 할까..

 

물론 또 비약하는거지만 이러면 늙어가며 허약한 육신을 보는 것도 웃을 수 있겠다 싶어 괜시리 안심도 되더라.

 

어쨌든 우리 시부모님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이렇게 오래도록 나때문에 즐거워하시고 또 내겐 버팀목이 되어 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게 별거냐

 

이렇게 마음 읽어주고 함께 웃고 그렇게 서로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거겠지..

 

올해는 달리기 신기록 말고도 벌써 읽고 싶었던 여섯 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고 오늘은 늦게 알아 거의 절망적으로 포기하고 있던 이작 팔만 내일 음악회 표도 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내가 더이상 아 이 좋은 음악회를 이 남자도 같이 봐야 하는데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고 (뭐 내일표니 그 곳에서 핸디도 없는 내가 물어보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긴 했어도 )그냥 삶이 그러려니 표 하나 산걸로도 만족 했다는거..

 

그래 나도 가끔은 사는게 즐겁다..^^ 

 

 

 

 

2006.01.10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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