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아바시리 호숫가

史野 2006. 2. 25. 11:09



어찌 쓰다보니 누가보면 한 한달은 여행한 줄 알겠지만 그냥 밀고 나가야겠다..ㅎㅎ

 

다음 날 아침에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어쨌든 저 호텔에 투숙. 방에서 호수가 안 보일거라곤 예상하고 갔으니 괜찮았고 싱글이 아니라 트윈룸인게 몇 일 기차아니면 싱글룸에서 자서인지 일단 너무 좋았다. 거기다 무슨 전통여관처럼 아줌마가 올라와서 몇 시에 저녁을 드실거냐고 물으며 그럼 천천히 온천하시고 내려오란다.

 

대중탕이나 마찬가지인 곳을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보니 밥먹기 전에 씻긴 씽어야겠어서 유가타를 갈아입고 갔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탕이다. 수증기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려 자세히 보니 앗싸 밖에 작긴해도 노천탕이 하나 있는거다. 얼씨구나 하고 나가서는 탕에 몸을 담갔다가 나와 눈으로 얼굴을 씻었다가를 반복하니 너무 좋다. 내일은 확실한 온천을 찾아가리라 새삼 다짐을 하고 식사를 하러 갔더니 오밀조밀 저녁식사도 정답다. 특히나 홋가이도 특산이라는 겟살이 어찌나 맛있던지 여행하며 처음으로 간절히 게좋아하는 내 남자 생각이 나더라. 그래 그럼 게도 한마리 사가야겠다..ㅎㅎ

 

모든 게 이렇게 잘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열시쯤 잠들어 한시넘어 깨보니 불청객이 오시는 때. 다음 계획은 온전히 온천이었는데 매직에 걸려버렸으니 어쩌겠냐 그 밤중에 역에서 받아온 기차표를 들고는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참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안 도와준다 그러다 잠이 확 깨어 날이 샐때까지 기다렸다 아쉬움을 남긴채 마지막으로 호수한바퀴나 할 생각으로 중무장을 하곤 내려갔더니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

 


 

촛점이 안맞은게 아니다 정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불어오는 눈보라로 한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호텔로비에 앉아 속절없이 내다보며 애꿋은 담배만 피워물다가 프론트에 나가는 택시를 부탁하고는 아침을 먹으러 올라갔다. 그런데 정말 딱 아침을 먹는 사이에 날이 확 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위를 마구 헤매고 다니는 기분. 바람으로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린 눈.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들. 홋가이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아름답게 맑은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 눈을 보러 갈때는 딱 위의 저런 풍경을 무작정 걸어다니는 거였지만 오타루에서 경험했듯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계속 신발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장화를 신지 않는 한 불가능한, 그저 낭만적인 꿈에 불과했다.

 



내가 호텔뒷편 호숫가에서 혼자 감동해서 난리를 치는 사이 세상에 쟤들은 그 사이 얼어붙은 호수위에서 벌써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눈사람은 아니더라도 그래 나도 얼어붙은 호수위에 흔적이라도 남겨보자..ㅎㅎ 아 정말 오늘같은 날이면 오호츠크해의 유빙도 환상적일텐데 온천은 못가더라도 잠시 그냥 하루 더 묵을까 어찌나 고민이 되던지.

 



아니다 상태도 안좋고 돌아갈 길이 얼만데 그냥 떠나자.

 



기차는 이제 남으로 달리고

 



달리다가

 



 다섯시간 넘게 창밖에서 눈을 못 떼게 하더니 결국 삿포로역에 닿았다. 아 아바시리만 눈이 온게 아니라 그 아침엔 홋가이도 전체에 눈이 내렸는지 삿포로도 더이상 그 처절한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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