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2월 14일

史野 2006. 2. 22. 20:48



여행안내소에서 홋가이도에 대한 정보지를 몇 장 가방에 구겨넣고는 지도를 대충 보고 남쪽 출구로 나갔다. 저 사진은 다음 날 찍은 거고 진눈깨비는 내리는데 어찌나 거리를 질퍽대고 또 쌓인 눈은 지저분하던지. 아 내가 이 더러운 눈을 보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하는 배신감마저 들더라. 어쨌든 삿포에서 하루밤을 자기로 결정하고 일단 호텔을 찾아 일단 샤워라도 하고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그 질퍽한 길을 내내 걷는데 그 날씨에도 뭘 나눠주는 사람들은 왜그렇게 많은건지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는 도시의 첫 인상.

아무리 모자를 썼어도 몸은 젖어오는 듯하고 걸어도 걸어도 호텔은 안보이는 대신 내가 넘 좋아하는 컨터기 후라이드 치킨집발견. 동경에선 못 봤길래 잽싸게 들어가 이층 창가에 자리잡고 앉았다. 닭다리 하나를 뜯는데 저 멀리 보이는 딱 내 수준에 맞을 것 같은 호텔하나..  다행이다 싶어 여유있게 거리를 내다보는데 또 눈에 띄는 생음악 댄스홀..ㅎㅎ 생각해보니 제대로된(?) 곳에 가서 몸을 푼지 삼년이 다 되었다. 앗싸 이따 저 곳에 가야겠다고 결심. 이건 여담이지만 상해살때만 해도 술마시다 음악이 좋으면 혼자 일어나서 테이블 사이에서 춤을 추기도 했던 난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호텔은 적당했고 손님이 없다고 자발적으로 깎아주기도 해서 기분좋게 들어갔는데 딱 들어갔더니 꼼짝을 하기가 싫은거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다시 그 끔찍한 도시의 풍경에 치가 떨리고..ㅎㅎ



저런 더러운 눈 사이를 걸어다닐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거다. 저 역시 다음 날 아침사진이고 그 날은 더 비참했다. 그래 뭘 날 오라는 곳이 있냐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 그냥 엎어져서 챙겨간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기 시작했다. 여유있게 목욕이라도 할라고 목욕물을 받아놨는데 책을 다 읽었더니 저녁 아홉시. 이미 물은 싸늘하지만 내가 아무리 흥청망청한 사람이고 내돈내는거 아니라도 그 깨끗한 물을 버릴 수는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그냥 대충 씻을 수밖에..^^;; 

슬슬 춤을 추러갈까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복장불량이다. 늙은 여자가 가서 주목을 받으며 춤을 출려면 좀 섹쉬한 복장이라도 있어야 내 춤이 위력을 발할텐데 힙합바지 비스므레한 골덴바지까지는 어떻게 봐준다고 해도 목까지 올라오는 풀오바로는 영 아니올시다다.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귀찮기도 하고 포기.(이건 정말 억울한데 나중에 보니 속옷용으로 가져간 가슴 엄청 파이고 몸에 딱 붙는 거였는데 그땐 그 생각을 못했다) 술이나 마시며 티비나 봐야겠다고 미니바를 보니 아니 뭘 마시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나 미니바가 텅 빈거다. 그런데 술사러나가기도 귀찮고 아니 솔직히 전 날 마신 술로 머리가 출렁거리기도 했지만..  

결국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친후 짐을 챙겨 나온 시간이 아침 아홉시 반. 호텔에 들어간게 오후 두시 반이었으니 또 꼬박 17시간을 호텔방에 있었다..^^ 디아스포라를 읽다보니 자살이야기도 나오는데 정말 건드리지 말라는 팻말 걸어놓고 자살해도 아무도 모를 만큼의 시간이니 들키지 않고 성공하려면 호텔이 최고겠단 생각이 다 들더라. (내가 이 얘기했더니 내 남자는 엄청 놀래던데 내 이야기는 아니다..ㅎㅎ)

어쨌든 삿포로를 한시라도 빨리 떠나기로 결정. 그렇다고 뭐 역까지 뛰어간 것도 아니고 택시를 탄것도 아니고 날씨도 개었고 해서 슬렁슬렁 걸어갔지만 말이다.



낙석도 아니고 낙설주의라니 설국은 설국이다..ㅎㅎ 어제는 저 바닥도 난리가 아니었는데 해가 난다고 싹 마른걸 보니 신기하긴 신기하더라. 충격적이었던 한 아가씨가 미니스커트에 맨다리로 내 앞을 지나갔다는 것. 아무리 다리가 천연가죽이라고 해도그렇지 보는 내가 다 소름이 돋을 지경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드디어 삿포로역 도착. 돌아갈길도 암담한데 더 북쪽으로 간다는 게 그랬지만 목표는 오츠크해. 문제는 내가 도착한게 열시 이십분인데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거기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는 거다. 거기다 다섯시간도 더 걸린다니 그 밤중에 내려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어쩌겠냐 가고 싶은데 가야지..ㅎㅎ 아예 일주일 홋가이도 자유열차권을 끊어버렸다. 삿포로 시내관광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아침부터 술집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고 다섯시간 동안 뭘할지가 고민. 그러다 몽님이 가고 싶다던 오타루를 빨리 다녀오면 되겠단 생각이..^^

그래 오타루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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