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해야 하는 일을 죽어라 미루다가 월요일 어찌 간신히 해결을 하곤(최종 해결은 어제 끝났지만..ㅜㅜ) 무조건 홋가이도로 출발한 생각이었으나 내가 믿고 있던 밤차가 그 날은 안간다는거다. 시간은 늦어 버려 어디 다른 곳을 가기도 그런데 그래도 다행히 다른 기차가 있었다. 문제는 싸구려칸을 제외하곤 만석이란다.
인기가 넘 많아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얻기가 곤란하다나? 세상에 나처럼 열일곱시간 걸려 홋가이도를 갈 생각을 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그것도 평일에 그렇게 많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어쩌겠냐 그래도 가긴 가야지.
내가 탈 생각이던 카시오페아 기차가 아니라 북두성기차 표를 끊고는 우에노역안에 있는 하드락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내가 무슨 스무살 배낭여행하는 애도 아니고 조금 암담하긴 했지만 불안함과 더불어 스물스물 밀려 올라오는 자유에 대한 설레임. 그래 마흔이라고 싸구려기차간에 밤새 실려가지 말란 법이 있다냐. 흑맥주를 두 잔 마셨더니 기분은 한층 업되고 좀 이른 시간 기차칸을 찾아갔더니 맙소사. 양쪽으로 이층침대가 두 개에 지난 반 언급한 북경가는 기차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다.
바로 코앞에 앉아 연신 미소를 지으시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곤 맥주를 마셔도 되겠냐고 정중히 물은 후 맥주를 사러 나갔다. 그래 술이나 퍼마시고 퍼져 자자가 당시의 내 생각. 그래도 예의가 있으니 내걸로 네 개 할아버지걸로 두 개 진미오징어 등등을 사서 차에 올랐는데 이 할아버지 안드신다는거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술마시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 혼자 홀짝 홀짝 마시는데 눈이 마주칠때마다 미소를 짓는 것도 그렇고 영 불편하다.
사온 맥주는 놔두고 식당차에 가서 술을 마셔야겠단 생각이었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멋진 로비칸이 있을 줄이야. 창밖이라야 전등에 비친 내 모습뿐이지만 내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가며 할아버지 몫의 맥주까지 다 비웠다..^^ 그리고 술꾼인 내가 그냥 끝냈겠냐? 유일하게 담배를 필 수 있었던 식당칸으로 이동 스파클링 와인을 시키고..ㅎㅎ
그래 인생이 별거냐 혼자 기분은 다 내다가 돌아와보니 할아버지는 취짐중이시다.
술이 취해 흔들렸지만 그래도 시트도 있고 유가타같은 잠옷 비스름한 것도 있고 침대를 빙둘러 커튼을 칠 수고 있었으며 침대도 그만하면 잘만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 깼더니 아침은 시작되고 있었고 역시 친절한
할아버지는 삿포로는 아직 멀었으니 더 자라신다. 그러다 발견한 내 가방! 가방이 활짝 열려있고 지갑이 없다!!! 다행히도 카메라는 들어있다는 데
일단 안도감. 아 착한 도둑이구나..^^;; 지갑엔 카메라값보다 더 많은 현금이 들어있는데 지난 번 프라하여행때도 카메라를
잃어버려서인지 일단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ㅎㅎ 내 이 황당시추에이션을 묻는 할아버지에게 돈이 없어졌다니까 놀래시며 내 침대를
둘러보시다가 저건 뭐냐고..아 왜 지갑은 바닥에 떨어져있고 난리란 말인가. 이 망신살하고는..흑흑
생각해보니 자다 목이 말라 지갑만 빼서 자판기에 갔다가 와서는 냉차만 마시고 그 상태로 잠이 든거다. . 창피한 얘기지만 내가 어디 가겠냐고..ㅜㅜ
짐을 잘 챙기고 다시 누웠는데 이번엔 목이 너무 아픈거다. 일년이 아니라 십년이 가야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나인데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감기에 걸린다면? 잽싸게 일어나 안에 속옷대용으로 가져간 반팔 옷하나를 입고는 스카프도 매고 지나가는 커피까지 한 잔 사마시고는 이불로 돌돌 말고 누웠다. 아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라 뭐든 먹어야겠단 생각으로 식당차로.. 이 웃기는 차는 밤에 되는데 아침엔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나? 흑흑 어쨌든 일식으로 한상 잘 먹고 커피에 미소스프에 녹차까지 모조리 마셨더니 스카프를 풀어야할만큼 더워졌고 정말 씻은듯이 목의 통증이 사라졌다..^^
대충 씻고는 몇가지 찍어바르기까지 했더니 기분삼삼이다. 먼저 내리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그 아직도 멀었다는 삿포로는 앞으로도 네 시간을 더 가야한다니..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 후 내내 기차는 태평양을 끼고 달렸다. 밤새 뭔 일이 있었는지 기차는 한시간 이십분을 연착해 우에노역을 떠난지 정확히 17시간 사십분만에 삿포로 역에 도착했다.. 아 드디어 낯선 땅에 내렸구나..이제 어디로 갈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