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편견, 사고의 전환 그리고 한계

史野 2004. 4. 1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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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Morgentoilette, 1971, Fernando Botero

 

 

나는 어려서부터 내 의견이 확실한 편이었구 또 그걸 이유까지 표현하던  스타일이다.

그건 내아버지의 교육영향이 큰데 예를 들면 티비를 보고 숙제를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절대 티비끄고 숙제해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둘 중에 하나만 해라 네가 숙제를 해가지 못해 학교에서 벌을 받아도 괜찮다면 숙제대신 티비를 봐라.
선택도 네가 하고 그 책임을 지는 것도 너다.


한 번은 낙도에 가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신나서 칭찬도 받을 목적으로 말씀드렸더니 낙도라는 낭만적인 측면말고 소금기묻은 공기로 야기되는 문제, 외로움등도 생각해보고 다시 얘기해다오

초딩에게 참 파격적인 교육방법이 아닐 수 없다.

 

우리집은 대체로 민주적의사결정이 이루어지던 곳이었으므로 학교교육은 일방적 지시를 받았고 동료그룹과는 토론문화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지만 늘 내 판단력을 나름대로 검증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알거나 만났던 사람들로부터는 전반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는 편이다.( 아 물론 가재는 게편이라고 그러니까 친구하겠지만..ㅎㅎ)

 

그러나 외국생활을 하면서 뒤통수를 맞은것 같은 충격적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내가 늘 머리에 담고 있는 두 가지만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10년전쯤 일인데 스위스 극작가 뒤렌마트의 약속이라는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코스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되어서 그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어떤 형사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어린아이를 미끼로 던져놓고 결국 나중엔 폐인이 되어가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난 그 소설을 읽으며 범죄에 울분하고 그 형사의 고뇌에만 집중했지 어린아이를 미끼로 이용했다는 것이 이상할 거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이름까지도 기억나는 바바라라는 미국여자애 (애는 물론 아니다 그 당시 아마 마흔살? ㅎㅎ)가 정말 침튀겨가며 그게 얼마나 비도덕적인지를 설명하는데 순간 넘 충격을 받았다.

맞다 난 왜 범죄를 해결한다 사회정의를 실현한다 뭐 이런 각도에서만 접근을 했지 그애처럼 인간적인 접근을 못했던걸까하고 말이다.

 

더욱 놀라왔던건 그 수업을 듣던 수 많은 국적자들 가운데 동양인이나 동구권출신들은 주로 나와같은 생각 미국 서구쪽애들은 바바라와 같은 생각이었다는 거다.

전체주의적 사회분위기에서 자란다는 게 사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내가 가진 사고방식의 기본이 되는 건 무엇인지.. 몇 일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 모른다

 

하나는 아일랜드에 처음 이사가서 일어났다.
가자 마자 직장동료네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구석에서 서있다가 어떤 애랑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니까 아일랜드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다가 내가 한 결정적인 질문..

세상의 끝에 살고 있는 기분이 어떠니?
그 애 당근 내 말을 이해못해서 나를 쳐다보고..

딱 그 순간 섬광이 스치듯 들던 생각..
아 아일랜드가 왜 세상의 끝인가 지구는 둥근데 ..
늘 우리 식의 세계지도를 보고 자란 나는 아무리 지구가 둥글다는 걸 백번도 더 듣고 머리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내면화하지 못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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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남편은 그게 넘 웃겼다고 안 까먹고 지금도 툭하면 날 놀려먹는다. 시드니 살기 싫지? 세상의 끝이라서 싫지?  아 우리마누라 지금 세상의 끝(일본)에 살고 있는 느낌이 어떠신가?..ㅜㅜ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사람은 늘 자기 관점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과 그 관점에 잡혀 저런 식으로 상대를 대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절실히 느낀 사건이었다.(그래도 물론 난 아직도 세계지도하면 우리 식이 떠오른다..ㅎㅎ)

 

만약 그런 계기가 내게 없었어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은 수도 없이 그런 크고 작은 일들을 접하고 산다.

거기다 다행스럽게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아버지와 생각하는거 말하는게 너무나 닮은 남자와 살고 있어 늘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사고의 전환과정을 거치지 않아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많은 편견들이 내 사고를 제한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50살 60살이 되어가는 동안 계속 고민하고 사고하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게 되겠지.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 생각은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각자의 사고를 검증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없는 한 그건 자유가 아니라 억압일 것이다.

 

 

 

 

 

2004. 04.15 東京에서...사야

 

 

콜롬비아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는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이자 조각가입니다.
전 그의 조각품보다는 회화를 좋아합니다.
7월에 동경에서 그의 조각작품전이 있을 예정이라는데 잊지 말고 가봐야겠습니다.
그의 작품들도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우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