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스틸 앨리스

史野 2015. 10. 2. 01:02

마침 어제 친구가 보고 슬픈 영화라길래 안 볼 생각이었는 데 하필 오늘부터 할인이란다

올레티비에서 가을을 맞아 베스트셀러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깜짝세일한다나 어쩐다나

그래 그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이겠지만 비도 오고 갑자기 그냥 보고싶어졌다.


슬프다, 말고는 아무정보없이 본 게 우선은 다행이었다.

치매환자의 이야기인데 유전적치매라 일반적인 치매랑도 다르고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고..

정말 신기하리만큼 사야가 본 미국영화는 늘 너무 지나치리만큼 이상적이다.


더 신기한 건 이 영화를 보기전까지 사야는 단한번도 스스로의 치매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아니 신기할 건 없다 하루도 간신히 살아내는 인간이 뭔 놈의 치매까지 생각하겠냐

그것도 아니구나 늘 정신병원에 갇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인간에게 치매까지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는 게 맞겠다

본인이 본인이 아닐 수 있을 가능성을 본다면 정신줄을 놓거나 치매거나 뭐 큰 차이는 없을 지 모르겠지만 정신과에 집착하는 인간에게 신경외과는 그래도 조금은 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쳐버린 인간에겐 잔인한 세상도 치매에 걸린 인간에겐 인간의 존엄이란 것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니까


우짜든둥 슬픈게 아니라 아름다운 영화였는 데 영화를 보고나니 안그래도 복잡한 사야의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건 사야가 이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했다고 오만하고 있었기 때문일거다

이젠 스스로만 잘 컨트롤하면 된다고 그리고 그냥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연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 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정신병원에 갇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다. 끔찍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사야에게 삶이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아마 거기 앉아서도 삶이 무엇인 지 해탈할 순간을 기다릴 수 있다고 믿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치매는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사야의 그녀가 왜그리 젊은 나이부터 치매에 대해 고민했는 지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원했던 안락사의 의미도 대충은 이해할 것 같다.


사야는 정말 그래 이제서야 그 자살이란 것에 대해 심사숙고해봐야할 것 같다.

자살이란 선택을 하는 인간들은 단한번도 사야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는 사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주 솔직히' 아 내겐 정말 풀리지 않는 이 삶의 무게가 저 사람들에게는 이리 가볍고 간단한 걸까?' 란 생각에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울 때도 많았다


그래 자살은 이 삶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자유의지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살은 못할 사야. 자살은 죽었다 깨어나는 리셋같은 일은 아니니까 뭐 결국은 말장난이다만

이젠 이런 생각도 하고 거기다 여기 쓸 수도 있다니 사야가 드디어 사야의 트라우마랑 마주할 용기가 생겼나보다.

할렐루야..ㅎㅎ


그래 그걸 이제야 알았다

이거야말로 또 하나 넘어야할 벽 아니 사야가 살고 싶은 인생인 것을..

죽지 못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데 살고 싶어해야한 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언제든지 그 선택도 할 수 있어야 이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긴알았어도 이걸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는 또 백만년이 걸리겠지

왜냐면 사야는 극한 상황이라면 사람고기라도 먹어가면서 생명을 부지할 사람이니까


인간의 존엄.

글쎄 깨는 이야기다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치매가 아니면서도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와 잔인함과..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상황아래서 양심도 팔고 치욕도 견디며 이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데 과연 그 인간의 존엄이란 건 뭘까

삼백명이 아무 이유없이 수장되어도 여전히 평온한 이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이란?


이 땅에서 가족과 인간의 존엄까지 함께 지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영화의 주제도 결국은 치매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우야든둥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죽을 수 있는 데도 사는 삶이 간절히 살고 싶어졌다

아니 사야는 죽을 수 없어 사는 삶이었는 데 이젠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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