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이었나 어떤 철학자가 그랬다 인간은 다른 어느 곳의 아픔보다 자신에게 박힌 가시하나가 더 아프고 절실한거라고..
사야는 요즘 자주 아프다
일을 하니 상상하지 못한 부위들이 아프기도 하지만 사실 사야는 지금 치아가 엉망이다.
갑자기 이들이 무슨 소설처럼 우두둑 떨어져 버렸다.
아시다시피 홍콩시절부터 여기 치과다닌 이야길 많이 쓰기도 했고 금액만으로도 삼천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작년부터 제대로 관리 못하고 스트렛 만땅 받으면서부터는 난리 생난리가 아니다.
이러다 정말 벌써 틀니를 해야하는 건 아닌가 걱정할 만큼인데 강남에서 아주 잘나가는 사촌오빠가 치과의사인데도 사야는 세상에서 가장 가기 싫은 곳이 치과라 미련하게도 이러고 있다.
아니 사야의 생각방식으로보자면 미련하다기보단, 그렇다고 인생이 달라지나 이가 다 빠지더라도 내가 내 인생을 이해하면 되는 거지 하고 있기도 하다.
이가 없이도 살고 이가 다 있어도 죽는 게 결국은 인생이니까.
그래 가시 하나가 박혀도 심란한 게 인생인데 김치를 씹기도 힘든 치아상태를 가지고 이 삶을 살고 있으니 그 인간이 딸기 농사가 힘들다 어쩌다, 혹은 사는 게 지독하다 어쩌다보단 헐씬 현실적이고도 처절한 삶을 버티고 있는 거란 거다.
그래도 딸기따고 날이면 날마다의 삶은 나름 굳세게 견디고 있다니까..ㅎㅎ
사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다.
사야네집의 가장 어린 강아지인 호박이가 아침을 걸렀는데, 그리고 개긴 하지만 그 지집아는 승질이 드러워서 아침밥도 잘 안먹고 속을 썩이는 놈은 맞는데 그 놈이 오늘 키운 지 삼년만에 처음으로 먹은 것을 다 올렸다.
아침도 안 먹은 놈이 먹은 것을 다 올리니 일하고 들어와 피곤해 죽겠는데 애면글면 어디 아픈가 뭘 멕여야하나 우왕좌왕 하나보니 또 어린 사야가 생각났다.
그래 멕인 걸 토하면 이리 개새끼도 애면글면하는데 사야의 엄마는 왜 사야가 아플 때마다 화를 냈을까.
정말 죽을만큼 아플 때마다 내 엄마는 늘 내게 화를 냈다지.
그래 내 엄마에겐 내가 울 개새끼보다 못했나 보다 싶네
호박이가 토해도 이리 마음이 아프고 당장 병원에 가야하나 멀쩡히 자고 있어도 긴가민가한데 내 엄마는 내가 아플 때마다 왜 정말 단 한번도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묻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아프다고 말하면 안되는 걸로, 아픈 걸 참아야하고 엄마에게 말하면 다시 욕이나 듣는 걸로 가르쳤던 걸까
울 호박이가 먹고나서 바로 토한 게 삼년만에 처음이라 사야는 지금 마음 쓰여 좋아하는 우유도 줘보고 난리 브루스인데 한번도 그런 대접을 엄마에게 받아본 적이 없는 사야는 오늘 이 글이 간절히 쓰고싶다
인정해야겠다고
내 엄마는 내가 울 호박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왜 이런 이야길 찌질하게 자꾸 하냐고?
매번 아프니까
나름은 이런 이야길 떠드는 걸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으니까
그리고 사야는 늘 자신감에 찬 것과는 달리 또 누군가에게 받는 오해는 많이 힘겨우니까
내 진실에 남들의 이해까지 덧해 나름으로는 총체적 이해를 받기위해 노력해오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
근데 이해라는 것도 어쩌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것
읽는 이 들에게야 어차피 다르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당근 다르겠지만
어차피 사야 인생은 남들이 부러워할 때나 안타까워할 때나 지독한 시간을 견디는 건 비슷하다는 것
아플때의 애정어린 단 한마디를 듣고 자랐다면 사야는 이렇게 안컸다
그리고 이런 이해 어쩌고도 따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
여전히 사야는 사야가 앞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될 거라 믿는다.
라고 글을 마무리 지을려는 것 조차도 잠재된 근사한 결론을 짓고 싶어한다는 것]
발가벗는 건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부담이다
대충 가려줘야 편하니까
가장 아픈 기억을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사야는 여기서 어떤 춤을 추고 있는 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춘다 그 춤을..
2014. 01.07. 담양에서. 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