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인 것같아 여권을 확인해보니 2007년 8월 22일.
무작정 가방 두개들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칠년이다
결코 짧지않은 세월.
그후 이혼까지 또 일년이넘게 걸렸고 장성으로 여주로 서울로 이삿짐싸들고 다니는 사이 칠년이 후다닥 가버렸다
뭐 대단한 작정을하고 돌아온 것은 아니었으므로 상상도 할 수없었던 많은 일이 있긴했어도 그저 무사히 살고 있다는게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우짜든둥 사야는 살아있고 칠년 전보다는 스스로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두 달 가까이 집에서 그것도 남의 집에 얹혀 두문불출하고 지내면서도 여전히 인생은 살만하고 어떡해야 이 삶속에서 지금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름은 피터지게 고민도 하고 있다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무리그래도 이 놈의 한국사회는 도무지 적응이안된다
좌우니 진보니보수니를 떠나 인간이란 공통분모가 있을텐데 그게 없는 느낌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보고있자면 꼭 무뇌아취급을 받는 듯해 기분드럽다
칠년내내 이게 말이되느냐고 혼자 길길이 뛰고 산 느낌.
그런의미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사야 역시 분노할 뿐 찍소리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을 때마다 여전히 전남편이 그립다 그와 마주앉아 술잔을 귀울이며 예전처럼 몇시간이고 이야길하고나면 답답한 속이 조금은 풀릴것같다 그 남자는 사야에게 이야기상대로 거의 완벽한 존재다.
하긴 이건 어쩌면 그에겐 한국적유전자가 없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론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는 반응들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싶어 발버둥치던 사야에겐 크나큰 버팀목이었다.
참 그 남자는 러시아에서 돌아와 뒤셀도르프 본사에 좀 있다가 지난달 아예 회사를 옮겨 그에게도 낯선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했다. 사야가보기엔 여전히 고단한 인생이다. 사야가 그리도 원하던 아빠가되지는 못했지만 잘 살고있다 (궁금해하시는 분들 있을거같아서..^^;;)
덕분에 남편에게 느끼던 미안함같은 감정에서도 이젠 자유로와졌다.
칠년전 한국에 돌아올땐 서울을 떠나 사는 건 꿈도 꿔본적이 없다 사야에겐 서울이 고향이고 한국은 곧 서울을 의미했으니까
그리고 또 서울은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이 산골에서 도쿄아파트에서와 별다를게 없는 생활를 하면서도 이리 평온할 수 있다니 기적같기도하다.
예전에 울 정신과샘 나가살았던 세월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적응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잖냐시던데 그럼 이제 반이 지난거네
앞으로 칠년의 세월이 더 흐르면 사야는 어떤 모습일까
보다 많은 한계를 뛰어넘어 사야가 지향하는 지점에 가닿을 수 있을것인가
무슨 인류를 구원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인간 그것도 문제많은 인간으로 태어나 그 문제에 천착하며 그저 스스로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이고 싶은 소망은 이루어 질 것인가
그래도 살고 있어서 글로브가 없는 맨손인데도 불평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긴해도 독일사회를 경험했던 사람으로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것 마냥 지금의 상황이 이 나라의 국민이란게 남루하기 그지없다
그건그렇고 아 젠장
독일신문 도쿄특파원인 어떤 놈이 몇일전 고맙게도 산케이특파원이 조사받은 것까지 적나라하게 우리 박여사님의 행적포함 기사를 장문으로도 올렸더라
아무리 유력신문이라곤해도 독일사회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가원수인데 무슨 연예인 찌라시도 아니고 유부남이랑 사라진 시간 어쩌고라니 채동욱사건이며 조선일보며 아는 내용이지만 독일어로 읽다보니 진짜 수치스럽더라
지난 번 세월호보도관련 다른 독일신문에 대사관이 이의제기했다 개쪽당한 일도 있었는데 이번엔 그 일본에 있는 독일기자를 소환하려나
어쨌든 이젠 신문 꼼꼼히 읽는 독일 바이에른주 촌부마저 '애들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동안 결혼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 나라 대통께서 유부남이랑 어쩌고 신문에 났더랑께: 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