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농사짓는 사야

삶이 벅차다

史野 2013. 11. 20. 02:30

과격하게 이야기해서 언제 니 년 삶이 안 벅찬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일주일내 단 하루도 안 쉬고 삭신이 쑤시도록 일하는데 그래도 삶이 벅차다면 할 말이 또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어제 또 술이 만땅 취해서는 쓰려다만 글을 올려버렸네

사야도 이젠 정말 맛이 가고 있나보다..^^;;

 

 

 

 

어제 드디어 저리 첫 딸기를 땄다. 처음엔 물량이 안될 줄 알았는데 대여섯개 넣을 수 없는 걸 빼고는 맞춰져서 신기하더라.

저게 이 동네에서 나가는 최소단위인 이킬로다. 딸기를 따는 게 힘들다고 들어서 생각도 못했는데 따는 것보다 선별하고 저리 담는 작업이 훨씬 힘들다. 저건 첫박스라 삐뚤삐뚤.담는 방법도 제대로 배워야할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박스도 안나와서 지인것을 빌렸는데 (저 박스엔 지인 이름이 써있고 우리박스엔 남친이름이 나간다) 출하용이라 또 뚜껑이 없다고해서 우체국가서 박스사고 어쩌고 생쇼를 해서는 결국 어제 고기공놈에게 택배로 보냈다.  어제 오후에 따서 보냈는데 오늘 점심에 벌써 도착해있다니 다행

선물은 당연히 아니고 첫딸기를 사는 영광을(!) 주겠다고 전부터 말했었다.ㅎㅎ. 박스도 그렇고 포장도 그렇고 단위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 택배를 보내야 최선일 지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딸기하나 드시고 밥값 이만오천원 내주시고 딸기 여덟개드시고 격려금 오만원은 받아봤다만 그래도 정식판매는 저게 처음이니 고기공놈 기대만빵이라던데 사야로서도 기대만빵이자 냉정한 평가를 부탁했으니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얼마전에는  정말 너무나 힘이 들어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운 딸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먹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

 

벌써 피로가 누적되어 못나가는 날이 생기는데 내년 봄까지 어찌 버텨낼 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거기다 한겨울 추위로부터 저 딸기들을 지켜내야하는 것도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남친이랑 방법론에서 의견이 안맞아 맨날 싸우고 있다. 그래서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맘도 힘들고 정말 사야가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어제 유명한 농약사사장님이 우연히 오셔서 이만하면 잘 키운거라며 앞으로 난방이 관건이라던데 이렇게 고생했는데 얼리는 사태가 생긴다면 심정이 어떨지.. 모종하나만 쓰러져도 아니 꽃대하나만 부러져도 가슴이 아픈데 아예 상상도 못하겠다.

 

지금 딸기농사짓는 분들 여기저기서 병때문에 난리가 아니다. 심지어 사야네같은 소형한동을 아예 포기하신 분도 계시고 남들은 수확하기 시작하는데 모종을 다 뽑아내고 다시심는 분들도 계시고..

그제 일이있어서 여기서는 좀 떨어진 남친지인하우스에 들렸는데 진짜 처참해서 눈뜨고 못보겠더라. 반이상이 아작나서 벌써 세번째 모종을 심었다던데 사야같으면 진작에 포기했겠다만 그 집은 애가 셋이라네.

쉽지않은 농사야 당연히 없겠어도 딸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있는 사람들이 지어야겠더라. 내 자식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내 허리가 부러져도 내 자식들 잘되면 된다는 어떤 절박함이 없이는 정말 할 일이 아니다.

 

어제 그 사장님 시간나는대로 꽃대를 따주라면서 그래야 박스당 천원 이천원이라도 더 받을 거 아니냐시던데 그 분 말씀대로하자면 사야는 또 쭈그리고 앉아서 삼만개 가까운 꽃대를 따줘야한다..^^;;

남친은 새로운 작물을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그게 또 돈이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서 내년에도 딸기를 하겠다고하고 자기하우스를 넘겨받으라는 사람도 있긴 하다만 사야는 지금으로선 아무생각도 못하겠다.

 

 

 

 어쨌든 이 끔찍하게 추운집에 새로운 난로를 설치했다. 사야는 처음 들어보는 팰릿난로인데 생각보다 따뜻해서 다행이다. 전에도 올렸던 저 형님분은 남친을 얼마나 챙기시는 지 친형도 저리 못하겠다 싶다. 벌써 저분에게 사야가 지랄맞은 성격이란 걸 들켜버렸다..^^;;

 

 

 

저분이 또 여주까지 같이 오신 덕분에 복층에 있던 매트리스를 가져와 사야의 잠자리도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물론 저 좁은 침대에 바리빼고 세 놈들이 올라와 비비적거리는 통에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다만 그래도 에어매트리스보다는 훨 낫다.

 

얼마전에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사야가 자고있으면 다 옆에 붙어있는 통에 열린 뒷문으로 어찌 길고양이 한마리가 들어왔나보다.

자지러지는 소리에 놀라 튀나와보니 거실에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울새끼들에게 물려 소리소리를 지르고 있던 것.

너무놀라 일단 뺏고는 다친데없나 살펴보다 송곳니에 물려버렸네. 신기했던 건 그 놈에게는 단한 곳도 물린 자국이 없더라는 것. 어찌 그리 안다치게 물고만 있었는 지 대견한 새깽이들이다.

시골살다보니 뱀이들어오질 않나 고양이가 들어오질 않나 난리도 아니다. 왼손은 벌에 쏘여 퉁퉁붓고 오른손은 고양이에게 물리고서도 일했다니까..ㅜㅜ

 

그 좋아하는 눈이 내렸는데도 이젠 딸기걱정에 하우스걱정.

어제는 이래저래 심란해서 다그만두고 싶었는데 아침엔 또 먼저 할일이 생각나니 사야도 벌써 농사꾼이 다 되었나싶어 헛웃음이 난다.

앞으로 최소 오개월간 또 쉼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한다는데 앞으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쉬어야겠다.

아니 간절히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여주집에가서 쉬고오고 싶은데 멀어도 너무 멀다.

 

 

2013. 11. 20. 담양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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