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딸기 하나
그제 갑자기 아는 분이 딸기하우스가 세동 나와있으니 할 생각이 없냐고 남친에게 물으시더란다.
이제 수확이 시작되는데 딸기하우스를 넘긴다니 무슨 사연인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못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자꾸 한번 보고 말하자고 하셔서 비도 추적추적내리는 어제 아침 그 곳에 갔다.
딸기모종으로보면 사야네의 네 배 정도의 크기인 대형 세동엔 올망졸망 이쁜 딸기꽃들이 가득 피어있더라.
이야기했듯이 동네에서 가장 작고 후진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사야는 우선 그 깔끔한 하우스만으로도 얼마나 부럽던지.
딸기는 네 달 죽도록 고생하면 물론 더 죽도록 고생해야하긴 해도 꾸준히 현금이 나오는 농사라 선호도가 높은 건데 이제 현금이 나오기 시작할 그 시점에 왜 포기를 하느냐 물었더니 세상에나 아저씨는 한달전에 아들에게 간이식 수술을 받으셨는데 아주머니가 아니 아주머니도 아닌 사야랑 동갑인 아내분께서 지난 주 교통사고로 비명횡사를 하셨단다.
남편 병간호하며 딸기키우며 얼마나 힘들었을텐데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는 지. 남들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냐지만 사야는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그 하우스를 넘겨받을 수는 없다.
사야네가하는 소형 한동으로는 돈을 벌 수는 없고 엄밀히는 그 쪽을 넘겨받는 게 어차피 고생하는 거 훨 이득이다만 못하겠다구..ㅜㅜ
비도 내리는 데 사람사는 게 뭔가 싶어 어찌나 우울하던 지..
슬픈 딸기 둘
이 심란한 하우스에 그나마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어찌 잠시 쉴 공간 하나 마련했다.
여전히 심란하다만 그나마 어젠 휴대용 가스렌지라도 가져다놓고 원두커피내려 마시고 앉아있는데 아침에 들은 사연에 비에 싱숭생숭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마루타가 되어 두번째 딸기를 받았던 작은언니가 마트에 가서 시장조사를 해봤단 이야길 하며 은근슬쩍 이번 일요일에 엄마생신이니 직접 키운 딸기를 가지고 올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
당근 갈 생각도 없고 갈 상황도 아니지만 순간 그럼 딸기라도 보내야하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지.
근데말이다 사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허리가 부러져라 일해 얻은 이 딸기를 내 엄마 생일선물로 보내기 싫더라는거다.
딴에는 하도 지극정성으로 키워서 아는 사람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할만큼인 사야의 딸기를 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또 사야는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슬프기도 하고 허망하기기도 하고
싫을 뿐이지 원망하진 않았는 데 이건 또 원망보다 더 깊은 상처는 아닌가 싶어 많이 우울하다.
슬픈 딸기 셋
딸기는 판로걱정없이 전량수매를 해주는 지라 잘 키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또 아니란다.
잘 골라서 박스에 어찌 잘 담는가도 관건이란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원리인데 딸기 초보인 사야로선 암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딸기는 워낙 예민해서 자꾸 만지작 거리면 안되고 딱보고 골라 담아야하는데 그게 그리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종의 트릭이고 노하우라는데 초보에게 그런게 있을리가 있나
그래서 딸기꽃피고 열매맺어 감동한 이후론 수확의 기쁨은 커녕 또 전정긍긍하는 중이다.
아직도 남친이름이 적힌 박스는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서 빌리고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만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야로선 박스를 접고 딸기를 따다 여기선 '도시락'이라 부르는 플라스틱박스 네 개에 담아 한 박스를 완성하는 과정이 벅차기만 하다.
딸기뿐 아니겠지만 모든 농산물이 생산자를 거쳐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거쳐야하는 이 험난한 과정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가장 놀라왔던 건 우리에게 그리도 친숙한 딸기가 한국게 아니었단다.
얼마전부터 자체 품종을 개발했지만 여태는 일본에게 로얄티를 지급하고 있었다니 춘향이표 열무씨도 외국계 회사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을 때만큼이나 사야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어쨌든 사야는 그때는 애면글면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모종들을 키우며 꽃이 하나하나 피던 그 시간이 더 좋았다.
막상 수확이 시작되어 이리 당황스러운 걸 보면 누구말대로 사야가 진정 농부가 되는 길은 멀었나보다.
어떤 분은 사야를 보고 딸기가 닳겠다는 말씀도 하시고 어떤 분은 하루면 끝낼 일을 일주일씩이나 하고 있냐고 하시기도 하는데 진짜 사야는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꽃을 키우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야는 딸기를 따는 것보다는 말라가는 잎들이나 비닐안으로 들어가 썪어가는 곁가지들이 더 신경이 쓰인다니까..^^;;
그리고 앞으로 딸기를 따는 일은 수입으로 직결되는 문제인데 사야는 왜 그것도 암담한 지 모르겠다.
2013.11.28. 담양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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