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맘대로 안되는 삶..ㅎㅎ

史野 2013. 7. 3. 00:35

이번엔 열흘도 넘게 만에 여주로 돌아왔다.

그새 잡초는 또 무성해지고 이런 저런 꽃도 피고 지금은 사야가 좋아라하는 장대비도 시원하게 내린다만 가장 좋은 건 이 집이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엔 더 절절히 사야의 이 집이 이 편안함이 너무나 좋다.

 

남친집은 정말 너무나 불편하다.

거기다 안방으로 입성하게 되어 좋아했더니 안방은 차가 지나다닐 때마다 어찌나 흔들리는 지 꼭 지진이 나는 것 같더라.

아니 도쿄에서 겪었던 진짜 지진보다도 더 심하더라.

아무리 노인회관 목적이었다고해도 어찌 그리 날림으로 지은 건지.

하긴 뭐 워낙 싼값에 얻었으니 불평할 처지도 못되지만 말이다.

 

내려갈 때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고 다시 가져오고 하는 것처럼 여주집을 떼 가져갔다 가져오고 했으면 좋겠다란 생각까지..ㅎㅎ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거기다 어느 환경에서도 적응이 가능할 거라 믿었는데 남친집에서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 슬프다.

가장 편히 가 쉴 곳이 실제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정도로 불편한 곳이라니 말이다.

 

남을 배려하는 걸 타고난 남친은 말리는데도 바닥에서 새깽이들과 불편하게 자는 게 안쓰럽다고 오둥나무 침상을 중고로 또 구입했다.

매트리스가 있으면 완벽하겠지만 어쨌든 바닥보다는 낫더라. 흔들리는 건 덜하지만 어차피 찻소리가 너무 심해 저기서 자긴 힘들겠어 고민이다.

이럴땐 여주집과 담양집이 옆집이었으면 좋겠다..ㅎㅎ

 

남친은 요즘 너무 바쁘다. 하루종일 얼굴 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여주에 올 생각도 못했다.

지난 봄부터 농업기술센타에 등록해 이것 저것 배우러 다니는데 거기서 알게된 사람들 농사 도와주러다닌다고 정신이 없다.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도 금방 사귀고 농사쪽으로 꿈을 꿔보기도 하고 어머님이랑도 가깝고 남친이 담양에 내려간 건 사야입장에서야 힘들다만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더라.

 

어제 오려고 했는데 그 친구놈이 겸사겸사 어제 담양에 오는 바람에 오늘 그 놈 차를 타고 올라왔다.

역시 독거노인인( 담양의 한 젊은 놈이 남친을 독거노인이라고..ㅎㅎ) 그놈도 전날 전화해 외롭다고 난리길래 세 독거노인들이 이번엔 담양에서 뭉쳤다..^^;;

상해시절 우리는 십여년이 흐른 후 세 독거노인이 되어있으리란 걸 상상이나 했을까.

친구놈이나 사야나 힘들때 남친에게 징징대는 것을 보면 남친이 정말 착하긴 착한가보다. 하긴 그 놈이나 사야나 둘다 지랄맞은 성격이란 공통점이 있구나..ㅎㅎ 

 

올라오면서 친구놈왈 사야가 세상에서 자꾸 숨으려고 하는 것 같단다. 인터넷이나 전화같은 한꺼풀 씌여진 소통만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나.

스마트폰을 쓰지도 않는데다 요즘은 그 전화마저도 가방에 쳐박아두기도 일쑤, 부재중전화가 찍혀도 다시 안 걸기도 여러번.

 

어쨌든 어제 침상에 누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저런 복잡하고 암담한 상황에 비해 사야가 너무나 멀쩡하다는 것.

작년 이맘때 서울과 여주를 왔다리갔다리 하며 미친듯이 걷고 또 걷고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도 못잡을 만큼 결벽증에 시달리던 걸 생각하면 참 대단한 평온함이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만 아름다운 걸 보면 감탄하고 재밌는 걸 보면 웃고 슬픈 걸 보면 눈물 흘리는 지극히 평범한 삶.

 

그렇게 간절히 원해 돌아온 내 나라, 그리고 고향서울에 편히 가 묵을 집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젠 그리 아프게 와닿지않고 (서울은 아니지만 평촌에 사는 작은언니, 제발 와서 자라고 내가 널 잡아먹냐고 하더라만..ㅎㅎ)  지난 번 생일 엄마랑 그 난리를 친 이후론 이제 원망이나 미움같은 것도 전혀 없다.

 

사실 대충은 몰랐던 것도 아닌데 사년만에 나타나건 어쩌건 짱가놈을 받아줬던 것도 익숙한 무언가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었고, 엄마를 그 오랜시간 끊임없이 용서하는 척했던 것도 일종의 두려움, 더 엄밀히는 저 여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르게 말해 사야란 인간은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다는 오만이기도 했다.

 

이번에 그 오랜시간 담양에 있으면서 사야에게뿐 아니라 남친에게도 사야랑 다시 합하는 게 좋은 건가를 처음으로 고민했다.

작년에 정신과샘이 당신도 그와 살면서 노력하지 않았다, 라고 했을 때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수긍했는데 이제야 그게 뭘 의미하는 지 가슴으로 알겠다

 

 

우짜든둥 결론은 버킹검이라고..ㅎㅎ 또 과제는 결심이고 어쩌고가 아니라 위에 언급한 아주 현실적인 문제다.

도로변 그것도 삼거리에 위치한 그 집은 사야처럼 소리에 민감하고 사생활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살 집이 못된다.

거기다 매일 지나다니는 개장수며 울 온동네의 움직임은 다 감지하고 짖어대는 울 새깽이들도 감당이 안된다.

 

월세도 아니고 연세가 백만원에 이년계약인데 집안에 화장실 설치하고 밖에 울타리 설치하고 어쩌고 수리비 수백만원을 들이고 들어간 집이니 가능한한 오래살아야하는 집도 맞는데 일주일, 열흘 사야가 살아보니 사야는 도저히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라구..ㅜㅜ

늘 말한다만 사야인생에 후회란 없으므로 이 모든 선택을 하며 일어난 모든 것들을 당연히 감당해야하고 남친이랑 다시 잘된다고 해서 남친과 새깽이들이 이 여주집으로 돌아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으니 더 문제다.

아니 담양집의 그 많은 짐이 여주로 온다는 건 문제가 아니라 재앙수준이다..ㅎㅎ

 

그래 이번엔 다시 여주다.

미칠 것 같아 내려갔으니 또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이 집이 있어 정말 좋다.

돈만 많으면 천년만년 이 집을 지키고 담양에 새로운 집도 알아보고 그러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또 맘대로 안되지.

아 이 집은 그건 꼭 아니다. 솔직히 매일매일 무슨 꽃이 피고 얼마나 피나를 확인하고 싶은 집이기도 하니까..

 

사진도 삽입하고 그럴렸는데 지금은 이미 술이 취해 버렸다.

워낙 셋방살이를 많이한 탓일까 아님 너무나 떠돌았기 때문일까

집은 그냥 집일 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이 집이다' 란 누군가의 말을 거의 신봉(?)하고 살았었는데

아닌 것 같다. 사야에게 이 집은 아까 친구놈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숨으려는 그 사야에게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따뜻한 엄마품, 사야동굴, 앞으로도 사야가 가꿔가야할 사야만의 공간 뭐 그런 것 같다.

 

힘들면 갈 곳이 헤어진 전 남친밖에 없는 사야에게 또 남아있는 공간

그 불편한 남친의 공간을 떠나왔어도 사얀 이 글을 올린 후 또 남친에게 전화를 걸겠지만..

그래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현시점의 사야인생에서 돌아올 사야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아이러닉한 건지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만 일단은 참 행복한 일이다.

 

 

 

 

2013.07.02.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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