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생일

史野 2013. 6. 17. 13:33

 

 

엄밀히 아직은 아니다만 생일을 낀 주말인 관계로 저리 고기공놈이 케익을 사들고 나타나 미리 만 마흔 여섯 생일을 축하했다. 

저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이라니, 저 놈 자체가 그냥 선물이었다.

 

결혼식에 보고 처음이니 거의 오개월만이다.

원래는 사람 몇 불러 조촐하게나마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 컨디션도 안좋고 오랫만에 고기공놈이랑 둘이만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스물 네 시간이 넘게 함께 있으며 저 놈이랑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는 게 사는 것 같더라.

그리고 생일이라고 저렇게 나타나 주는 놈이 있는 것도 좋더라.

 

생일이 뭔지 지난 주에 담양내려가 있을 때, 요즘 교회일로 너무 바빠 전화통화 하기도 힘든 승호엄마도 다음 주 네 생일인데 얼굴 함 보자, 하고

어제 올케언니도 전화해 '고모 곧 생일인데 이번 주 서울 함 안와요?' 묻고

막상 생일이 되면 전남편도 무소카놈도 또 다른 친구도 평소 연락을 안하던 그 누군가까지 다 축하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남기겠지.

 

생일은 그래서 좋다

누군가 어김없이 생일이 되면 그걸 기억해주고 축하해주니까.

엄밀히 그건 네가 태어나줘서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고맙게도 그리 아픈 일을 겪었어도 결혼생활이 행복해서인 지 씩씩하더라. 

사실 그 놈을 위로해줘야하는데 그 놈에게 내 투정만 하고 고민거리를 줄줄히 이야기만했다.

그래도 정성스레 육수내서 냉면도 멕이고 냉동고에 아껴뒀던 생선구워 밥도 멕이고 오디도 따서 싸주고 귀한 손님대접은 했다.

 

이 놈이 천안이 아닌 서울만 살아도 사야가 좀 덜 외로울텐데 여주에선 천안도 담양만큼이나 교통이 불편하다.

그 전날도 친정에서 자고 온건데 어제도 언니이야기 들어준다고 늦게까지 있다가 결국 또 친정가서 잤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오고 처음 온건데 그러니까 겨울에 오고 여름이 되어서야 온건데

재밌게도 초록이 무성하고꽃도 피고 뻐꾸기소리도 좋지만 언니집은 장작불이 타고 있는 겨울이 더 낭만적인 것 같다나.

그러면서 올 겨울에도 여기 난로앞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

 

그러게 이 집을 겨울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일단은 담양에 자주 내려가 있어볼까 하는데 막 피기시작하는 꽃들을 보니 또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진다.

 

어쨌든 미리 받은 생일선물덕에 오랫만에 따뜻한 주말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듯 하고 무슨 이야길 해도 마음편한 사람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 놈과 나도 이제 한해 한해 세월이 쌓여가네. 십육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슬프게도 경사모 삼인방중에서 그 놈 하나 남았다만 그래도 하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2013. 06.17.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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