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슬픈 유월

史野 2013. 6. 4. 21:54

유월이 생일인 사야는 사실 유월을 무진장 좋아라하는 데 이번 유월은 벌써 이래저래 슬픈 일이 많다.

 

지난 번엔 남친어머님이 입원을 하시더니 이번엔 스님이 맹장수술을 받으셨단다. 또 새깽이들 돌보러 튀내려가야하나 고민중이었는 데 다행히 내일 퇴원을 하신다네.

내 그런 일이 없다가 두 분이 연달아 입원을 하시니 착찹하다.

사야가 있었다면 간호며 음식이며 지극정성이었을텐데 왜 바보같이 굴러온 복을 차버리신 건 지.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수술을 받고 몇일간 죽도 못넘기고 누워계셨다니 생각만으로도 짠하다.

엄마에게도 그러더니 사야는 정말 이게 고질병인가보다. 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뒷통수도 맞았으면서 왜 밉지가 않고 안쓰러운걸까.

하긴 이건 사야가 착해서라기보다 인간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기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백프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기가 살아온 삶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그 슬픈 한계..

 

 

고기공놈이 아이를 잃었다.

사실은 너무나 속상해서 그리고 여긴 사야가 속상한 일을 올리는 공간이니까 쓰려고 했는 데 막상 좋은 일도 아니고 어찌보면 그 놈의 프라이버시이기도 해 참다 결국 올린다.

여기다 임신했다고 대서특필을 했으니 알려드려야할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사야가 써 내려갈 이야기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면 말이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사실은 벌써 두번 째다.

토요일저녁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해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해놓고는 아무것도 손에 안잡히고 막상 수술받았다는 말엔 절망스럽던데 당사자는 오죽했겠냐.

아시다시피 이 결혼에 회의적이었었는데 아이도 금방 생기고 생각보다 두 놈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서 참 대견했었다.

아무리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라지만 연애할때보다도 안싸우고 잘 살더라.

고기공놈도 아버님 돌아가시고 무진장 힘들어 했었는데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생기고 예비엄마도 되니 안정감을 찾나보다, 싶었다

그래 이 놈은 사야랑 달리 무난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겠구나, 안도하고 있었더만 이런 일이 생겼다.

유산 한두명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임신해서 출산할 때까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누구나 어느 정도 맘고생은 하겠지만 안그래도 속상한 걸 마음에 담아놓고 속앓이하는 스타일인 놈이 앞으로 또 얼마나 애면글면하며 지낼까 애가 닳는다.

 

사야도 위태위태하다만 요즘 주변에 왜그리 안좋은 일이 많은 지 안그래도 답답하구만 일요일아침 결국 수술받았단 이야길 듣는데 순간 참 사야인생 뭣같다, 란 생각이 들더라.

도대체 왜 무난하게 지나가는 게 하나도 없는거냐구??

 

그렇다고 절망만하고 있으면 사야는 못산다. 마당에 물주고 오후내내 몇 시간에 걸쳐 고기공놈관련 웹서핑하고 그랬더니 좀 쿨해지더라.

그래 그게 그 놈 삶의 몫이라면 맘고생 좀 해야지 어쩌겠냐 사야라도 독해져서 나약해지는 놈 붙잡아줘야지. 함께 울어줄 수는 있겠지만 함께 나약해질 수는 없는 거니까.

속만 끓이며 지켜만보다 오늘 삼일만에 통화를 했다. 결국 퍼센트지까지 읊어가며 혼자 오버해서 쿨한척했다.

또 어쩌겠니 이게 사야의 살아가는 방식인 걸.

서울이라면 끓여다라도 주겠지만 천안까진 불가능해서 빨리 미역국 끓여먹으라며 전화를 끊고나니 짠하다.   

 

오겠다는 친정엄마도 괜찮다고 마다했다는 바보같은 놈. 사야도 뭐 별다를 건 없다만 징징대도 좋은 상황에서도 너무나 독립적이라 더 마음이 아픈가보다.

당근 무한긍정 사야는 엄마가 되기까지 그 놈이 겪어내야하는 그 시간이 미리 안타까울 뿐이지 그래도 옛말하고 사는 날도 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무나 뚱뚱해진 사야가 맞는 옷이 없어 구입했던 임부용 옷들중 앞으로 배불러 올 고기공놈에게 줄만한 것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그냥 사야가 입어야겠다 

 

위 두 일과 비교 큰 일은 아니다만 역시나 속상한 일이 있다

새로 이사오신 분들이 주차공간에 거대천막을 치셨다. 처음엔 자녀들이 놀러와서 치신 건가 했는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도 그대로 있더라는 거다.

여쭤봤더니 뜨겁다고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으신거라며 여름이 지나면 걷으실거라지만 사야에겐 미관상 혐오시설이라 볼 때마다 아주 괴롭다.

 

거기다 오늘 괴상한(?)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혹 새로운 꽃이 피었나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집 옆에 차가 서더니 누군가 내리는 거다. 사야의 집 특성상 집 주변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이라 사야는 그럴 때마다 무진장 당황스럽다.

사야는 울타리 안 남자는 울타리 밖. 대충 이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는데 보니 다행히도(?) 늘 여기 집풍경에 나오는 앞집 남자더라.

(그 남자랑 사야는 이년 전쯤 그러니까 고기공놈 생일빵하고 안동가던 그 날 대판 싸웠다.)

일단 낯선 사람이 아니었던데다 너무 오랫만이기도 해서 무지장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이 왠수같은 놈이 얼굴도 안보고 간신히 들릭락말락 네 소리 정도만 하고 가버리네

싸움이 어땠는 지를 차치하고라도 그게 벌써 이년 가까이 되는 일인데다 그 일이 후 처음 보는데 그렇게 반갑게 인사하는 사야에게 그리 갈 수 있는 일인가.

순간 이게 뭐지? 싶은 게 기분이 묘하더라. 그냥 쳐다보고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는 그 일초가 그리 어려운 건가?

 

 

이래저래 삶이 참 어렵다.

여기에 앉아 아무것도 안하며 하루종일 내면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리고 이렇게 가끔씩 의문을 던지는 일이 생기다보면 더 어렵기도 하다.

하긴 삶이 쉬우면 다 성인이겠지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고 우기는 사야는  본인에게 부족하고 아직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렇게 표현해야할 것 같다

아직 핵전쟁은 못 겪은 것 같다고.

 

 

 

 

 

 

 

2013.06.04.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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