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수다가 필요한 밤

史野 2013. 5. 29. 23:06

아 정말 오늘은 누군가를 만나서 류현진선수의 피칭에 대해 수다를 떨었어야 하는 데, 야구 모르던 전 남편에게조차 한 시간은 수다 떨 수 있는 양이었는 데..ㅎㅎ

 

어쨌든 정말 놀랍다.

야구를 좋아하긴 했어도 잘 아는 편은 아니었고 그것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이런 감정이 다시 살아날 줄은 몰랐는 데 오늘 류현진의 피칭을 보니 감동 그 자체더라.

물론 사야야 예전에도 빵빵 터지는 야구보다는 투수가 잘하는 완봉승, 타자를 잘 내보내지 않는 투수싸움을 좋아하긴 했다만 오늘 본 이 선수의 피칭은 참 오랫만의 흥분이었다.

 

여기 여러번 썼었는 데 사야는 군상상고시절의 조계현을 참 좋아했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 타자들을 이래저래 요리할 때의 그 긴장감이란

조계현선수에게 시집가고 싶었다니까..ㅎㅎ

 

야구를 모르던 신랑은 아무 움직임도 없이 다 멀뚱히 서서 저게 뭐냐고 투수전이 제일 싫다던 데, 축구를 좋아하는 그 남자 입장에서 그게 뭘 말하는 지는 안다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투수전 만한 건 없다는 거야 당근 사야 생각.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독일의 한 철학자가 몇 년전 인가 축구를 원시시대의 한 형태이자 재현 뭐 비슷한 표현을 한 적이 있는 데, 축구를 비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야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그럼 축구보다는 야구가 인간의 문명상태로 볼 때 더 발전된 양식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었다.

 

근데 오늘 경기를 보니 정말 그런것 같다..ㅎㅎ

원시적이거나 순수함 뭐 이런 것과 비교하면 당근 야구는 축구랑 비교 여러모로 너무 정교하다

 

사냥을 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원시인들의 모습 그러니까 뭐 구석기시대 이런 걸로 비교한다면 야구는 정착하고 농사짓고 하던 신석기 시대랑 비교할 수 있지 않을 까.

아 거창해지려는 게 아닌데 또 빗나간다만 그만큼 류현진이 오늘 너무 멋졌다는 거다.

 

사야야 한국선수가 외국에 나가 잘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닌데다 애국심 고취나 한국 야구의 위상 뭐 이런 거 다 상관없는 사람이다만  진짜 잘하더라니까

사야보다 스무살 정도 어린 데 정말 최대의 집중을 요하는 그 상황에서 너무나 잘하더라.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사야같은 사람이야 잘 모르겠지만 사야가 감동하는 건  그 어린(!) 놈의 정신력이다.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난 놈이더라. 경기를 보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탈 갑인 인간이더라니까.

 

인간성도 좋다던 데 사야야 그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지금은 패스.

운동이나 음악이나 등등 무조건 잘하기만 하면 되냐구?

당연하지. 둘 다 형편없는 인간이 부지기수고, 일단 하나를 저 정도 잘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해도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본인이 이를 악물고 노력해야하는 지를..

그래서 사야는 뭔가를 정말 잘하면 그가 뭘 했건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얼마전에 썼듯이 사야는 그를 모른다. 박찬호도 몰랐는 데 오죽하겠냐만 예전에 오빠네 식구들이 독일까지 와서 박찬호의 성적을 챙기며 궁금해 하던 그 마음이 뭔지는 어렴풋이 알겠다.

 

 

어쨌든 사야는 오늘 멋진 영화 한편을 본 기분.

겨우 경기 세 개 봤다만 사야는 앞으로 류현진이란 놈(!)의 팬이 되주기로 했다.

백투구수가 는 넘는 걸 모두 지켜보며 사야가 느낀 건  '얘야 그 나이에 넌 무슨 일을 겪은 거니?  겨우 그 나이에 어찌 그리 엄청난 상황에서도 쿨 할 수 있는 거니? 너를 그리 강하게 키운 건 뭐니?' 묻고 싶어지더라지.

 

여러 상황상 요즘 대한민국의 스물여섯 살은 예전 열 여섯 살로 살고 있는 데 그래 류현진은 오늘 그 저력으론 마흔 여섯 살인 사야에게도 도전장을 내밀더라.

그 꽉찬 야구장에서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중계되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상황에서 오늘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건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기 까지 하다  . 아니 사야로선 경이를 넘어 안타깝다니까.

 

야구를 알아서가 아니라니까, 사야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류현진은 오늘 너무나 아름다왔다.

사야에겐 그랬다.

참 보기 좋구나

완봉승의 문제가 아니라, 아 저기 피터지게 노력하는 한 인간 근데 '어린' 인간이 있구나

넌 내게 어찌 살았는 지도 묻는 구나..  그래 넌 참 강하구나.

 

아 사얀 근데 이런 말을 여기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함께 나누며 그게 뭘 의미하는 지 총체적으로 이해 할  그 사람이 필요하다구.

근데 슬프게도 앞으로 사야 인생엔 절대 없다는 걸 이제 인정한다구.

 

그걸 안다면서 여전히 징징대는 구나...

 

 

 

 

 

 

2013.05.29/ 여주에서..사야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유월  (0) 2013.06.04
사야의 아늑한 집  (0) 2013.06.02
그래도 살아진다.  (0) 2013.05.27
자업자득  (0) 2013.05.24
사야의 푸르른 정원  (0) 2013.05.22